잊어야 산다



이상하게도, 방금 떠오른 일화.

요즘도 그런 단어를 쓰는지 모르겠는데, 어릴 때 정신병원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고 가리킬 때가 있었다. 지금도 구글 검색을 하니 그 단어가 자동 완성으로 뜨기는 하는데, 나 어릴 때처럼 요즘 어린 애들도 이런 단어 쓰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모든 표현을 조심하는 시대이지만 내가 어릴 때 초딩들 사이에서는 '정신병원에 가라' '정박아(=정신박약아)' '기형아' 이런 단어들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말수 자체가 적었고 말싸움을 할 일도 없었던 나는 굳이 "xx아" 같은 단어는 쓰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은 해보지만... 다른 학생들은 다들 별로 생각없이 서로 놀릴 때 썼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무슨 일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친구들과 '정신병원 있을 것임/에서 왔을 것임' 뭐 이런 걸 농담으로 주고 받았나 본데, 내가 그걸 종이에 영어로 크게 써놨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영어를 처음 배웠고, 지금도 그렇지만 모든 언어를 자습으로 익힌다. 학교 교육 외에 어디에서도 배워본 적 없는 외국어. 그래서 영어가 어설펐겠지만 웬일인지 그래도 난 전교에서 뛰어나진 않아도 반에서 1등 정도 성적은 유지하는 학생이었다. ㅎㅎ 🥵

내가 어떻게 썼는지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뭔가 순서가 뒤집혀 있었나 보다. 아마도 hill on the white house 이런 식으로 썼던 듯!?!?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반에서 2등하던 친구가 화살표로 그림 그려서 단어 순서를 바꿔주던 게 아직도 종종 기억난다. 아마 그때 꽤나 부끄러웠어서 이상할 정도로 이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 거겠지. 

그때 내가 반대 입장이었다면 속으로 '얘는 기본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1등을 유지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화살표 그려줬을 듯. 이것은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혼자 넘겨짚어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고백이다. 뭔가 뛰어난 줄 알았던 사람이 실수를 하면 자연스레 속으로 '얜 뭔데 이 실력으로 잘 나가지?' 이런 생각....나는 한다.


갑자기 방금 또 추가로 기억난 게 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점심시간 방송에서 스티비 원더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같이 밥먹던 짝에게 "이거 '나는 방금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라는 가사야"라고 알려줬던 게 기억난다. 😝 내 짝은 '우와 얘 노래 다 알아들어' 라고 했었던 듯. 이게 바로 근본없던 반 1등의 위력. 빗나간 해석을 그냥 받아들여준 친구. 나중에 그런 가사가 아닌 걸 알고 민망했다. 🫠 모든 의미에서, 많이 부끄럽네. 이런 글 쓰는 것도. 그래도 꾸역꾸역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나중에 읽을 때 재밌다.

중국에서, 스리랑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았던 경험이 있지만 그뒤로 그 일을 계속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 때문에. 
학생들 가르치다 보면 틀린 정보를 가르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이 생기는데, 그럴 때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로 대범하게 넘겨야 그 직업을 유지하는데, 난 그게 너무 어려웠다. 
10여년 전 학생들에게 틀리게 가르쳐 줬던 거 아직도 기억 나. 무뎌지질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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