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둠



머리 속에 갑자기 떠오른 옛일을 적어두는 용도로 여기를 활용할 때도 있는데, 오늘도 하나 적어둬야지.
몇 년이 더 지나면 기억이 안 나거든.

예전에 핸드볼 대회 통역 일을 할 때 
각 나라 별로 
8:00 - 8:50
9:00 - 9:50
10:00 - 10:50

이런 식으로 연습 시간이 배정되었었다.

내가 맡은 Ixxn 팀의 연습이 만약 10시라고 치면 그 연습이 끝나갈 무렵, 우리 팀 다음에 카자흐스탄 팀이었을 경우 정각 10:50분에 카자흐스탄 감독 여자분이 매우 불쾌한 얼굴로 너네 팀 시간은 끝났다며 연습장에 밀고 들어왔다. "Please respect other team's 어쩌고 저쩌고 .." 하면서. 우리 팀은 10:59까지 나가주면 되는 것이지 아무 잘못도 한 게 없는데 그 여자분의 나무라는 듯한 표정을 보면서 늘 밀려남. 

10시 50분에 우리 팀이 연습을 마쳐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10시 50분부터가 카자흐스탄 팀 연습 시간인 것도 아니잖아? 왜 들어오는 거야?
하지만 난 고작 통역일 뿐이고, 영어 담당 여자애들 몇몇 빼고는 Ixxn 팀 임원 중에 영어로 상대팀에 불쾌함을 표시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없고... 팀 임원이 가만히 있는데 내가 나설 순 없지.

인천 경기장에서 서울 경기장으로 옮겨 왔는데 또 그런 일을 겪게 되자, 내가 카자흐스탄 통역을 맡은 분에게 장난스레 말을 걸어봤다. "저분은 저렇게 늘 화가 나 있나요?" "네, 언제나 퉁명스러워요." "힘드시겠어요..." 🫠


대회 막판, 처음으로 우리 팀 연습 시간이 카자흐스탄 팀 바로 뒤에 배정되어 있는 것을 봤다. 으하하.... 이번에는 (게을러 빠진) 우리 임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 혼자라도 "Please respect other team's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50분에 밀고 들어갈거야. 라고 다짐하며 신났었는데...

대회 마지막이라 대충 순위도 정해지고, 날씨도 춥고 연습도 필요없어져서 그런지 카자흐스탄 팀이 연습을 취소했다는 거였다. 

매우 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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