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행 대한항공 결항








10년 만에 나름 '출장'이란 걸 가게 됐다.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니고, 명예직(?)에 가까운 일이지만
아무튼 제주도에 놀러가는 것은 아니니, 출장.
바퀴 달린 가방도 은근 거추장스러워서 그냥 배낭에 4박 5일쯤 예상하는 옷들과 세면도구
DSLR 카메라, 작은 가방에 랩탑 컴퓨터 등을 넣고 집을 나섰다. 모바일 체크인을 미리 해놓고, 그냥 비행기 출발 30분 전에 공항에 도착하는 정도로 시간의 여유를 별로 두지 않고 움직였다.
늘 혼자 다니다 보니, 공항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도 매우 아까웠기 때문.


짐을 부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에 모바일 보딩패스를 들고 곧바로 탑승장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출발 비행기 상황 표시판에 내가 타야 할 비행기만 "수속 중단 - Hold"라고 떴다.
비슷한 시간대에 다른 비행기는 모두 "탑승중".

탑승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신분증 검사를 하는 직원에게 "수속 중단"은 뭔가요? 하고 물어 보니 "그런 건 항공사에 가서 물어보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직원들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상황 같은데... 어쨌든 모바일 보딩 패스가 있으니 그것으로 탑승장에 진입. 대한항공 앱에도 별다른 공지사항이 뜬 것은 아니고.


대한항공이 최근 메인 사이트와 앱을 대대적으로 개편했지만, 내가 타고 갈 비행기가 현재 어느 공항에서 출발해서 어디쯤에 있는지, 몇 분이나 딜레이 될 것인지 모두 표시되는 미국 항공사 앱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항 대처를 전혀 할 수 없는 대한항공 앱. 
하루에 뜨는 국내선 비행기 발착 수는 미국 항공사가 훨씬 많은데도 모든 노선 비행기가 다 추적이 된다.


06:00pm에 인천공항에서 내가 타고 갈 비행기 정보를 열어보면,
샌프란공항에서 11:00am에 출발해서 4:19pm 도착 예정으로 인천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앱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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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검사를 끝내고 내가 탈 게이트 앞에 가니, 출발이 20여 분 남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조용했다. 그때가 3시 8분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2시 50분 대한항공 비행기가 아직 출발을 하지 않고 있었다. 김포의 날씨는 좋았는데... 하지만 이런저런 지연 방송이 나오더니, 곧 그 비행기와 그 다음 비행편인 내가 탈 KE1241 결항이 결정되었다.

대한항공을 다녔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수속 중단'이라고 나오면 비행기가 안 뜰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내가 타기로 되어있던 8번 게이트 앞에 가니, 승무원이 카운터에 가서 문의해보라며 게이트 문을 열어 도착층으로 나가는 계단을 알려줬다.

ㅎㅎ 처음하는 체험.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던 게이트를 통과해 컨베이어 벨트가 돌고 있는 도착층으로 직행.
아마 국내선이니까 이 과정이 이렇게 간단했던 듯. 국제선이었다면 복잡했겠지.


탑승 수속 층에 가보니, 적체된 인원들이 늘어나 바글바글 했고, 몇 번 카운터로 가보라 저기로 가보라 이런저런 소리가 나오다가, 드디어 누군가가 방송을 시작했다.
일단 2시 50분이랑 3시 30분 비행기만 강풍으로 결항 결정이 났으니, 이 두 비행편의 승객들은 각각 몇 번 카운터에 와서 탑승 대기 순번표를 받으라고 했다. 좌석 상황이 나쁘지 않아, 나중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다 태워서 갈 수 있다고 했다.




283번이면 대체 언제 가는 건가.
내가 목요일에 꼭 도착해야 하는 출장은 아니어서 나는 그냥 '나를 다음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 자리에 집어넣어 줬으면 좋겠다'라는, 가장 저렴한 표를 구입한 사람의 처지에 걸맞지 않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아래층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배낭을 이동할 때만 잠깐 메는 것이지, 그걸 계속 짊어지고 서 있어야 할 상황은 생각 안 해봐서 그냥 배낭으로 무거운 짐을 꾸렸는데 대기번호를 받느라 줄을 서는 내내 메고 있어서 어깨와 등이 아플 지경.

카페에서 좀 있다가 출도착 조회를 해보니, 오늘 제주행 모든 오후 비행기 결항 공지가 떴다.
'앗, 이건 아니잖아.





다시 서둘러 탑승 수속 층에 가서 걸어다니다가, 운좋게 일처리 잘 하시는 친절한 직원을 만나서 줄도 안 서고 내일 4시 비행기표로 바꿨다. 이미 그때 공항이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중이었고, 나중에 조회하니 내일(금요일) 좌석이 하나도 없는 걸로 나오던데 그때 그 직원과 마주치지 않았으면 금요일 비행기표도 못 구해서 내 출장이 꽝!이 되었을지도.

늘 뉴스에서나 '제주 출도착 비행기 전편 결항, 탑승객 공항에서 우왕좌왕' 이런 기사만 보다가
직접 겪게 되니 신기했다.
일이 그리 바쁘지 않았고, 내가 다시 돌아갈 집이 있는 서울이니 다행이었다.
공항에 주저 앉은 사람들 중에 외국 관광객이 가장 불쌍했다.
일부러 돈과 시간을 들여 온 것일 텐데...이번 주말 내내 제주 날씨 예보는 별로다.


내일 오후에는 무사히 출발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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