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저 테니스 대회의 매력






내가 테니스 중계를 집중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그랜드 슬램 대회, 그것도 '결승전'만이었다.

관심이 시작될 즈음, 스리랑카에서 집에 TV와 인터넷 없이 살고 있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메이저 대회 결승전만 챙겨보면서 시청을 시작했다.
언제나 웅장하고 깔끔하고 통일성 있는 이미지를 유지하는 TV속 4대 메이저 대회들.
그래서 모든 테니스 대회가 그렇게 화려하고 우아한 줄 알았다.


첫 ATP 투어 관람은 500 대회.
낡았지만 비오는 날에는 지붕도 닫히는 1만석 규모의 경기장, 有明テニスの森公園에 있는 有明コロシアム


깨알같은 앤디 로딕과 이토 타츠마

처음으로 대회가 진행되는 내부까지 들여다 본 것은 ATP 250 대회





시드를 받은 4명의 선수들에게는 개인 방까지 배정되어 있었던 타일랜드 오픈.

Hospitality에 일가견이 있는 나라라서 그런지,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벌벌 기면서 대접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항에 선수들 한 명씩 도착할 때마다 주최측이 나가서 태국식 화환을 걸어주고 호텔까지 모셔온다. 승용차 여러 대를 마련해놓고 방콕 시내 인터컨티넨탈 호텔부터 방콕 북쪽 경기장까지 선수들 개개인을 실어날랐다.(30~40분 거리) 자원봉사자들도 여러 분야에 수십 명을 뽑았다. 요소요소마다 지키고 있는 안전요원 자원봉사자까지 합치면 백 여명도 넘는 인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ATP투어 250 대회보다 아래 단계인 서울 '챌린저' 대회에 처음 가보게 됐는데, 사실 처음에는 조금 놀랐다. 시설도 낡았고, 선수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고, 250대회에서 자원봉사자 수십 명이 하던 일을 직원 4-5명이 다 해내고 있었다. 셔틀 버스 한 대가 정해진 시간에만 선수들을 실어나르고. 스코어 전광판은 언감생심, 선심들이 손으로 바꾸는 종이가 전부.

몇 해가 또 지나, 지방에서 열리는 주니어 테니스 대회에 가봤더니 이것은 또한 별세계.
체어 엄파이어는 언감생심, 주심 - 볼퍼슨 - 남들이 넘겨주는 스코어판 - 따위는 없고 선수들이 머리 속에서 직접 포인트 계산을 해가며 공을 줍고 뛰고 던지고 치고 다 한다. 몇 게임이 끝날 때마다 선수들이 직접 가서 스코어판을 바꾼다.

중간에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가는 대체 지금이 몇 대 몇인지조차 알 수 없는 경기들이 동시에 여러 개가 열리고 있었다.
다리 밑에서.




아마도 나는, 보통의 선수들이 겪는 것과 반대의 길을 겪은 셈.
어린 선수들은 이렇게 직접 포인트 계산을 하고 공을 주워가며 경기를 치르다가
참가할 수 있는 대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본인의 랭킹이 올라가면서, 공을 주워주는 볼퍼슨도 생기고 전광판도 생기고
그랜드 슬램 대회도 뛰고, 마침내 자신만의 방도 생기고 차도 생기고 하는 것이겠지.


경기장의 시설과 자원 봉사자의 친절, 그 많은 인파에 비해 쓰레기도 없는 성숙한 관람 문화, 이 모든 것을 둘러싼 분위기까지 완벽했던 윔블던 

 

처음에는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챌린저 대회인데 이번 르꼬끄 서울 오픈에 가보니, 챌린저 대회만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참가하는 대부분의 선수가 90년대 생인 것에 놀라고, 이들이 나중에 얼마만큼 자라게 될지 기대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전에 챌린저 대회 토너먼트 데스크에 있었을 때, 외국선수들에게 "내년에 서울에 또 와요~"라고 인사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긴 했지만 그때 봤던 그 선수가 올해에도 여전히 챌린저 대회를 돌고 있는 것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들 모두 꾸준히 성실히 노력하는 중이고, 이곳이 그들의 직장인 것이었다.

250, 500대회보다 벌이가 시원찮을지 몰라도, 자신이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 하는 일을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직장. 그리고 또 언젠가는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어도 괜찮고, 이렇게 소소히 지구 여행을 즐겨도 괜찮고.

2012년 서울 챌린저에서 봤을 때 늘 재미있는 동물 그림 반바지를 입고 다니던 알렉산드르 쿠드리야브체프 (러시아) 선수가 기억에 남았었는데, 올해에도 또 왔다. 멀리서 반바지를 보자마자 알아챘다. 다음에 또 가게 되면 사진을 남겨야지. 이 사람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괜히 반가웠다.
예선 때 가서 사진을 남긴 몇 명의 선수들.


한체대 김지하 선수. 2014년 하계대학연맹전 3학년 남자 단식 우승자
92년생 나정웅(1286위). 작년 전국체전 개인 단식 우승자.

일본 선수.




올해 호주오픈 주니어 준우승으로 유명해진 고등학생 홍성찬.
아직 고등학생이기에 오늘은 미국 대학 챔피언에게 실력이 못 미쳤지만, 아직 어리니 더 발전할 수 있는 선수.
착용한 모든 나이키 로고들이 잘 부각되었네 ㅋㅋ 모자 부분만 좀 더 잘 나왔으면 나이키 종합 선물세트 될 뻔.



91년생으로 안 보이는, 중년 동호인 같은 걸음걸이의 매튜 바튼(호주, 338위) 예선부터 뚫고 올라가 현재 서울오픈 16강.



20살 크리스토퍼 오코넬(호주, 500위) 예선 1회전은 호주 동료의 기권으로 부전승, 2회전에서 호주 동료 오마르 자시카를 꺾었지만, 3회전에서 호주 동료 매튜 바튼에게 패해 본선 진출 좌절. 국제 대회 참가하러 멀리 왔는데 여기가 호주인지, 한국인지 모르게 호주 친구들만 만나다가 끝난 예선.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전경기 무료 관람이니, 선수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챌린저 대회만의 매력을 느끼는 것도 좋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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