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의 연속, 새크라멘토 라이트 레일(Light Rail)



2000년에 새크라멘토 근처 랜초 코르도바라는 작은 동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2015년, 다시 새크라멘토를 방문해 시내에 숙소를 정했지만, 딱히 할 일은 없었고 예전 지나쳐 간 그 동네를 별목적없이 그냥 다시 가보기로 했다.
구글 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라이트 레일 골드라인을 타고 40분 걸려 랜초 코르도바까지 가기로 결정.
바둑판처럼 구획된 새크라멘토 시는, 그냥 지도에서 알려주는 대로 걷다보니 라이트 레일(노면 전차)가 서는 곳이 나왔다.
 
토요일이었던 이 날은 정말 인적이 드물었고, 혼자서 티켓 판매기 앞을 서성였다.
'한 번 타는데 $2.5....난 어차피 왕복을 해야 되니까 $5.... day pass가 $6이니 그냥 이걸로 살까? 갑자기 어디선가 내렸다가 타고 싶을 수도 있으니...'
그리고 뒤에 설명을 보니, 버스 탈 때도 사용할 수 있는 듯 했다.



 
정류장에는 다음 전차가 도착하는 시간을 안내해주는 전광판이 있다.
쭈뼛쭈뼛 주위를 돌아보다가, 보통 인도 높이보다 높게 위치한 전차 탑승구가 있는 걸 발견했다.

 
(전차 사진은 찍지 못 해서 위키피디아에서 데려온 사진. "Sacramento Light Rail" by Steve - Flickr: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Sacramento_Light_Rail.jpg#mediaviewer/File:Sacramento_Light_Rail.jpg 위 사진은 블루라인 전차.)

 
'아, 차체가 높아서 저기서 타야 하나봐. 또 어리숙하게 눈 앞에서 차 놓칠 뻔 했네.'
역시 쭈뼛쭈뼛 그 탑승구로 올라가니 뭔가 계속 어색한 이 느낌. 왜지?


전차가 도착하니 차장이 내려서 탑승구와 전차 사이에 발판을 놓아준다. day pass를 차장에게 보여주니 '뭐 이런 애가 있나?'라는 묘한 표정과 함께 "너 어디 가니?"라고 물어본다.
구글 지도에서 본 걸 겨우 기억해내, "진판델 스테이션"이라고 말하니, 그제야 '그래 맞아, 타라.'라는 표정을 보내준다.

타고 나서 40분을 가는 동안...아무도 표를 사지도 않고, 아무도 표를 검사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말이라 그런가???
암튼 그래서 표를 내민 내가 특이해보였나 보다. 아, 이 가난한 여행자가 $6를 새크라멘토 대중교통 발전을 위해 기부하기로;;;;;
게다가 내가 올라탄 탑승구는 몸이 불편한 사람과 휠체어, 유모차 등을 위해 따로 만들어놓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멀쩡한 내가 거기서 차를 탔으니 더 이상해보였을 수 밖에. 이 전차의 차체가 높기는 하지만, 그냥 인도에서 탑승할 수 있다.
 

위의 영상에서 나오는 뎅~ 뎅~ 소리를 늘 내면서 달리는 라이트 레일은 시내를 아주 천천히 달리는 여유만만 교통 수단.
내부는 정말 다양한 '인종과 개성의 전시장'이었다. 대체 평범해보이는 사람은 타지 않았다. 조그만 체구에 거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내가 자꾸 쪼그라드는 알 수 없는 느낌. 여기가 동양인 많이 산다는 캘리포니아 맞아?? 그래도 미국 여행하면서 차도 없고, 운전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이 시내 전차 덕분에 쉽게 랜초 코르도바까지 다녀왔다.

진판델 스테이션에서 내려, 목표했던 곳까지 20여 분 걸어갔지만 오래 전 기억이 너무 흐릿해, 내가 다녀갔던 곳이 이 곳이 정말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마다 개성으로 앞마당을 꾸미고, 말로만 듣던 garage sale을 하고 있는 진짜 미국 주택가를 걸어본 것도 그냥 잔잔하게 기억에 남은 경험이었다.
반 고흐 그림 생각나는 이런 나무도 목격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타려고 했던 버스가 눈 앞에서 지나가는 걸 봐서, 비싸게(?) 주고 산 day pass를 제대로 써볼 기회를 또 놓쳤다. 이 패스를 그래도 한 번이라도 써주기 위해 버스를 기다려볼까 생각도 했는데, 이런 인적 드문 동네의 버스 운행 간격은 분명히 1시간일 것이므로, 포기.ㅜㅜ
다시 열심히 걸어서 진판델 역으로.
전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8th&Capitol stn에서 내려서 캘리포니아 주 의사당 건물 주위를 잠시 구경함.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외양을 가진 사람들의 사는 모습 구경하면서 천천히 왕래하는 수단, 새크라멘토 라이트 레일. 의자가 마주 앉게 되어 있어서 시선 관리 잘 해야 된다.
남자로 태어나신 것이 분명한데, 곱게 화장하고 긴 원피스 입고 핸드백 들고 타신 분도 봄. 성 정체성을 새로이 찾은 분인 듯 했다. 북캘리포니아의 동양인은 모두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는 건지... 이 전차에 동양인이 진짜 없어서 오히려 이 분이 나를 관찰하는 느낌이 왔다. 눈이 자꾸 마주쳤지만 계속 쳐다보면 안 될 것 같아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 편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벌칙으로 분장 당한 것 같이 어색한 분은 처음 봐서 그랬던 듯. 미국에 오래 산다면 이 모든 것이 익숙해지겠지.

다음에 혹시 다시 가면, 그냥 돈 안 내고 타볼래 ㅎㅎ (걸리면 벌금 왕창??)



2015.03.0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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