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의 함정

휴대폰에 웬 충청도권 번호가 찍혔다.
그냥 받아보니, 보험사 직원

"고객님, XX 카드 쓰시지요~
저희 XX생명에서 XX를 보장해드리십니다아~
그래서 저희가 전화를 드리셨구요~
고객님이 XX상황일 때 카드값을 저희가 내드리십니다아~~"


보통 무슨 신용카드 가입하면 공짜 보험이 따라온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여태까지 보험증서 한 장 딸랑 날아왔을 뿐이지, 전화로 가입 동의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직원이 과도하게 경어를 아무데나 넣어서(심지어 본인을 계속 높이고 있었다!) 사용하는 말투는 매우 거슬렸다. 

그냥, 네,네, 동의해요. 그러구 끊으면 될 것도 같았지만
상황파악은 자세히 안 되었고, 자료를 보내준다기에, 자료를 읽고 동의하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계속 보장 내용 설명만 하고, 녹음하니까 대답만 하랜다.
공짜 대중교통 상해보험이야 흔하지만, 내가 사고로 카드대금을 지불 못 할 시에 보험사가 카드 대금을 내준다는 보험을 왜 신청도 안 했는데 가입시켜 주지?


결국은 그 쪽은 같은 내용을 너다섯번 설명하다가 화가 나서 끊었고,
나도 짜증이 났다.
콜센터 직원은 '뭐 이런 무식한 여자가 있나...백번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들어.'이랬을 거 같다.

"저희가 얼굴을 보면서 하는게 아니니까 본인 확인이 필요하십니다~~"

나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묘한 톤을 가진 무차별적인 언어 포화를 맞자니 갑갑했다.
'대체 뭔 소리여??'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콜센터 직원이 얼마나 힘든지 방송에서 자주 봤다.
얼굴이 안 보이기 때문에 고객이 험악해지는 편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센터 직원들은 친절해야 하니 참아야만 한다.

어떤 사람이 XX 회사 콜센터에 항의전화를 하는 경우, 사실 잘못은 XX 회사에서 일을 하는 직원이 한 경우가 많은데, 고객은 다짜고짜 콜센터에서 전화받는 일만 하고 있는 직원에게 고함을 치는 경우도 많을 거다.
(사실 콜센터는 외부에 하청을 주는 일도 많다고 들었다. 글로벌 기업은 인도에 콜센터가 많은데 이것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도 잘 나와있다.)

나도 괜히 콜센터 직원에게 피해를 준 거 같다.
나는 반복되는 일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매일 수백 명에게 전화를 걸어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그분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내용이 모호해서 이해가 안 가는 건 안 가는 거다.
쩝. 어쩔 수 없었다구.
 
그런데
얼굴이 보이지 않음. 또는 익명성.
이거 참 무서운 거다.
요즘은 인터넷 기사 자체보다도 댓글이 더 흥미있는 것 같은데,
세상 참 이상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런 키보드 워리어가 그냥 일상에게 얼굴 마주 대하면 그냥 순하고 좋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속마음이란...참 무서운 거니까.
예전에 나우누리가 있었을 때, 내가 다닌 대학교의 자유게시판과 익명게시판의 양상은 참으로 달랐다.
익명게시판의 글들은 너무 무서워서(?) 내 주위 학생들이 속으로는 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놀랍기만 했다. 
내 눈앞에 있는 밝게 웃는 한 사람과 키보드 앞에서 익명성을 내세워 험악한 말을 내뱉는 한 사람이 동일인물이라면
어느 것이 그 사람의 본모습일까?
 
난, 익명게시판의 험악한 모습이 본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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