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던 예전 한국 사람들.
그 끄트머리는 아직 60-70대 노인에게 남아있으며
그 자식 세대는 아직 고통받고 있다.
마음에 상처가 많은 "딸들"이 쓴 글을 많이 읽어보았다.


단순히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딸은 시집 가면 남의 집 사람',  '혼사 치를 때는 딸 가진 게 죄인, 여자가 불리하다', '아들이 낳은 손주만 우리 새끼' .... 이런 취급을 받으며, 관심이든 재산이든 덜 받고 자란 딸들...

아들인 것이, 딸인 것이...그렇게 차별 대우의 근거였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결국은
그냥 딸을 덜 좋아했던 것이다. 그래서 덜 챙겨준 것이고.
아들이라는 이유로 그저 더 좋았던 것이다. 그 시대 부모들이 좋아하는 '대를 이었다' '도리를 다했다' 이것 말고도, 그저 아들을 더 사랑했던 것이 맞다.

'우리 나라 전통 문화가 그랬는데 어쩌겠니' '남들처럼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는 핑계.
그저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잘해주는 것은 본능이다.


그 시대 어머니들에게 최고의 성취는 아들은 낳은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냉랭했던 시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살림 한 번 안 도와주던 남편이 아들을 낳고 몸조리를 하는 동안 살림을 도와줬다....이거 상당히 큰 거다.
그래서 동시에 아들과 함께 긍정적 감정이 연합되고, 뿌듯한 존재가 된다.
나에게 이런 성취감을 가져다 준 존재이니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내 아들.

딸을 낳는 순간(특히 딸 출산이 두번째 이상일 때) 느꼈던 아득함과 죄송함, 시부모와 남편의 냉대.... 그것은 조용히 마음 속에 남아, 부지불식간에라도 딸을 밀어내게 된다. 이번 출산은 '실패'이고 다음에 다시 '성공'에 도전해야 한다는 부담....


본인이 여자라서, 딸이라서 불필요한 존재로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결국은 딸을 덜 좋아하고, 덜 아껴서 그랬던 것이다.

그런 차별을 행했던 부모조차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라는 생각에 갇혀 자신도 그럴 리 없다, 난 공평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저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감정이 이입되고, 마음이 가고, 돈이 더 가는 게 맞다. 그게 자연스런 행위이다. 손가락이 똑같이 아픈데 '넌 씩씩해서 의지하고 믿었으니' 덜 챙겨주고 덜 감싸주는 건 없다.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에게 돈을 쓰듯, 사랑이 식으면 데이트 비용을 아까워하듯, 마음이 가는 곳에 돈을 쓴다.

부모도, 자식도,
마음 속 깊은 자기 자신을 몰랐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 하면 나도 고통스럽지만, 내가 안 좋아하는 사람의 고통은 잘 와닿지가 않는다. 관심이 없다.

'사랑'과 '돈'은 생존에 거의 필수적인 요소인데
그렇게 중요한 '돈'을 수억대 술술 써도 안 아까운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게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다. 돈을 좀 써야 되는데, 뭔가 계산을 하게 되고 나에게 무엇이 돌아올지 손익을 계산하게 되고 내 자존심을 더 생각하게 된다면, 덜 사랑하는 존재이다. 어떤 사람에게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것이 강아지이든, EXO이든, 괴상한 취미이든, 돈 쓰는 게 아깝지 않게 된다.

'늙으면 아들 집에서 살 거니까 아들네 집에 돈을 더 줬다'라고 변명한다. 이것 역시 "아들이 더 좋다"라는 것과 같은 얘기이다. 어떤 사람이 인생의 말년을 싫어하는 존재와 함께하고 싶을까.  마지막은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존재와 함께 하고 싶을 것이다.


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안 좋아했던 것"
그저 안 좋아해서 딸은 대충 성년까지 키워놓으면 알아서 시집가겠지 하는 것.
아들은 더 좋아하니까 내가 책임지고 장가보내고 집 사주고 보살펴주고 내가 늙어서 돌아갈 곳이라고 믿는 것.
아직도 있다.


옛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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