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아쉬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아쉬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여전히 나에게 없는 습관




거의 20년 전에 싱가포르에 친구와 갔을 때, 도서관에서 여행 가이드북을 빌려서 갔다. (당연히 스마트폰 이런 거 없던 시대)

그리고 센토사섬 바닷가에 갔는데...




저기 보이는 불빛이 인도네시아인가봐...
물론 물도 맑지 않고 휴양지 기분도 안 났지만 바다 풍경을 즐기기 위해 가이드북을 깔고 앉아 친구랑 얘기를 나눴다. 기분 좋음.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가이드북을 바닷가 바위 위에 그대로 두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
🥵🥶

예산 아끼려고 일부러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결국 내 돈 들여 새 책을 사서 도서관에 반납함. ㅜ.ㅜ 
왜 하필 이런 실수를..?!? 라고 생각. 



----
며칠 전에 엄마랑 벚꽃놀이 갔다가 벤치에 앉으면서 가방을 뒤적여서 찾은 종이를 깔고 앉았는데, 그걸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에휴..
여전하구나.
앉았다가 일어선 자리 다시 한 번 살펴보지 않고 그대로 일어나는 거.
내가 뒷처리를 안 해서 누군가가 그 종이를 대신 치워야 했을 걸 생각하니 좀 미안했다. 주문 목록 같은 거라서 거기에 내 이름이 써 있기도 했고;;;;

이번에는 그냥 버려도 되는 종이 조각이라 괜찮았지만 싱가포르 때처럼 불이익이 날 수도 있으니, 야외에 앉을 때는 앉았다가 일어날 때 앉았던 자리를 한 번 살펴보는 습관을 만들어야 하는데...




'노화'를 알게 된 곳





늙었구나... 새삼 느끼게 한 곳 , 헬싱키.


당시에는 너무 피곤해 누워만 있고 싶고, 생소한 지역에 처음 도착해서 당황했던 것도 그랬고... 그게 노화의 징후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도시가 신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더 피곤한 ...그런... 익숙한 것에만 반응하는 그런 삶.


이제 한 달이 지나 돌이켜보니, 나의 태도 자체가 내가 생각하던 '늙은 분들'을 닮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자각하게 됐다. 그래서 헬싱키는 깨우침을 준 도시가 됐다.

헬싱키가 좋았던 점의 하나는 나 혼자 모든 것을 결정했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내 주위에는 북유럽에 다녀온 친구가 거의 없어서 조언해줄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모든 결정을 내가 내렸다. 그게 그렇게 좋았다.

하지만, 내가 남의 말을 안 듣고 내 생각만으로 일정을 만드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정작 말그대로의 '노파심'에서 남의 삶에 자꾸 말을 얹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방이 (나처럼)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그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경험이 더 많아 잘 안다고 자신하기에' 나의 이야기를 안 듣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사람들도 '늙었기' 때문이었다. "내 경험이 더 많아. 넌 가만히 있어" 바로 내가 어릴 때 생각하던 그 '어른'의 모습이 이제 '우리'가 된 것이었다.


여러 가지 조언을 들을 때, 나도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데 왜 그렇게 다들 조언을 해주는지 궁금했었다. 그러면서도 나도 남에게 쓸데없이 조언을 하고 있었다. 나도 경험있다면서...

남의 이야기 중에 솔깃한 것은 접수했지만 ' 내 경험치가 더 낫다'고 생각해서 흘려보내는 게 많았는데 ....나도 남들에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들도 내 말을 귀담아 안 듣고 있다는 느낌이 왔다. '나도 살만큼 살았어. 응응 알았어. 다 안다구. 알아서 할게.' 동년배의 속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본인도 남한테 주제 넘게 참견할 땐 하면서도, '내 경험이 더 많아'이러면서 남의 말은 절대 안 듣다가 오히려 더 고생하는 것. 나만 그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친구들도 다 그러고 있었다. 남에게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도 '자존심에' 내 방법으로만 하고 싶은 것, 나는 그걸 노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우리도 늙었다.

더 무서운 건, 이제 계속 남의 말 듣기 싫은 나의 꼬장꼬장함과 타인의 꼬장꼬장함을 느끼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부수적 정보



테니스 새 시즌이 시작되려 하는데도
예전같은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서 그저께는 '황혼기'라는 글을 썼지만
이벤트 대회를 위해 아부다비에 머무르는 선수들의 소셜 미디어를 보니 테니스 대회의 또다른 매력이 다시금 상기됐다.


프로 테니스 대회는 "world tour" 라는 것. 
남자 프로 테니스 협회(ATP)도 예전에는 atpworldtour.com 이라는 인터넷 주소를 내세웠었다. 요즘은 atptour.com으로 줄였지만.


테니스 선수 팬질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전세계 여러 나라로의 여행을 눈으로나마 따라다니게 되고 풍광 구경을 하게 된다. 직접 관람을 결심하게 되면 역시 덩달아 세계 여행이 가능해진다.(나는 대회 관람을 위해 도쿄와 방콕에 다녀온 적이 있다.) 국내 테니스 관련 일을 잠깐 했을 때도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김천, 문경 같은 도시에 가볼 수 있었다.



ATP tennis TV를 보다가 캡처한 풍광 사진



내년초 호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2022 투어 대회 이전 
이벤트 경기가 아부다비에서 열리는데, 내일 그 경기를 위해 주최측 제공 숙소에 머무르는 한 선수의 소셜 미디어 속 리조트 사진을 보니, 또 다른 세계다. 

 


Rixos Premium Saadiyat Island 




Rixos는 터키 사업가가 시작한 브랜드이고 중동을 기반으로 세계로 확장하고 있는 모양인데
역시 "기름 부자" 국가에 있는 호텔들은 세인트 리지스나 리츠 칼튼 류의 중후함과는 또다른 화려함이 있다. 이런 단어 싫지만... 그냥 가장 적합한 단어... '돈지랄'의 세계가 엿보인다고 할까.







내가 테니스 응원에도 시들해졌나?? 팬질의 황혼기인가?? 싶다가도 이런 부가 정보를 얻게 되면 '아,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있었지.' 싶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점점 더 멀게만 느껴지는...

대여섯개 이상의 다양한 식당 내부 사진이 보이는데, All-inclusive resort라고 하니 매일 3끼를 이 식당 저 식당 가보면서 먹는 재미가 있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정보 조사를 더 해보니 뷔페 식당만 무료이고 개별 메뉴 주문을 할 수 있는 각각의 식당들은 추가로 돈을 내고 - cover charge - 들어가야 한다).

이런 리조트까지 와서 빈부격차를 또 느껴야 하겠네😜  3끼 모두 뷔페만 가느냐와/ "올 인클루시브라고 해서 왔는데 무슨 커버 차지가 또 있어?" 라며 열내지 않고 "아, 그래?" 하면서 거리낌없이 다양한 식당에 가서 추가 지출을 할 수 있느냐로.




뭔가 다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생김과 동시에
코로나로 인해 날아가버린 꿈이 생각나기도 한다.

중동 기름부자 항공사의 1st class 좌석을 위해 마일리지를 안 쓰고 놔뒀었는데
그런 항공사들 중에 중요한 목적지/경유지가 아부다비이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향해 가던 시절에도 마일리지는 1등석 편도를 탈 만큼은 가지고 있었는데, 아부다비 <-> 인천 A380 기종 운항 소식이 들려서 '에잇! 생일날 그냥 나를 위한 선물로 비행기만 타고 아부다비 하루 만에 갔다가 와볼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마일리지는 있지만 아부다비 숙박비는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 
그래도 인생에서 그런 좌석 한번쯤 타보는 것도 경험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그런 낭비를 감행할 만큼 대범하지 못해서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일이 됐고 
그리고 
코로나가 왔다.
한동안은 비행기도 뜨지 않았다가 운항은 재개되었지만, 대신에 수요가 줄어서 A380 대형 항공기 대신에 아부다비-인천에는 중대형 B787 항공기만 오고가는 실정이 됐다. 내가 목표한 1등석은 대형 항공기에만 있는 바로 그 좌석인데... 😭

심지어 중동 기름 부자 항공사라도 대형 항공기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지, 코로나 이후 공항에 얌전히 세워져 있었던 그 비행기들 모두 앞으로 상황이 나아져도 운항 계획이 없다고 한다. 항공사 보유 기종 소개란에 A380이 이미 빠졌다고 한다. 매각될 듯.

비행기 기종 자체가 안 뜨니, 내가 꿈꾸던 그 좌석 탑승 기회는 이제 아예 사라져버린 것.
머리 속에 '그냥 왕복으로 비행기만 타고 갔다올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미친 척 실행했어야 하는 일이었나보다. 🥺

나는 대부분의 마일리지를 미국 항공사에 가지고 있는데 (융통성이 크고 프로모션도 많아서 탑승시 요구 마일이 한국 항공사에 비해 굉장히 탄력적임) 코로나 이전 시점까지는...각 항공 동맹의 내부 협업과 실시간 좌석 조회 기술이 점점 좋아져서, 미국 항공사 앱에서 파트너 항공사 비행편도 모두 조회가 됐고 세계 여러 도시에서의 출도착이 모두 예약이 됐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창궐하기 얼마 전 시점에 갑자기 한미 왕복 항공권을 '4만 4천 마일' 웹 스페셜로 내놓는 탄력성을 보여주며 설레게 했었다. 한국 항공사의 4만 마일로는 동남아 정도 가는 것이 전부인데.

마일 발권 장벽이 낮아져서 종종 밤마다 그렇게 여행 계획 한번씩 짜보며 상상하는 것도 재미였는데, 마일 놀이의 절정이 오려던 그때🙀 코로나가 당도하면서 다시 예전으로 다 돌아갔다. 코로나 이후로는 파트너 항공사끼리 원활히 서로 나눌 좌석 자체가 줄었고 항공 여행에 제약이 많아지니 미국 항공사앱으로는 이제 미주 여행이나 검색될까말까 한다. 검색 기능이 도로 퇴보했다. 코로나로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종종 앱에서 손가락으로 톡톡 여기저기 가보는 재미도 사라졌네.

아쉽다.


그저께는 테니스에 대한 열망도 줄었나 하고... 늙은이같은 글을 썼었는데
오늘은 또 다른 테니스 선수의 소셜 미디어 속 사진으로 인해, 코로나로 잊고 있었던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드넓은 1등석 좌석은 사라졌으나 🛩 다행히 Rixos 호텔 브랜드가 Accor에 속해 있어서, 지금 160유로 상당 Accor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조금은 위안이 된다. 물론 저 리조트에서 1박에 €160는 문고리 한 번 잡아보고 돌아나와야 할 수준이지만 😆 그래도 상상하는 데 부담이 조금은 줄잖아...







흔적




2004년 5월, 중국을 떠나기 하루 전날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 가장 고학년이었던 중3 아이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시내에서 만나 놀자고 했다.

2004년초의 톈진은, 서울의 명동 같은 쇼핑가 거리의 끝자락에 새로운 쇼핑몰들이 들어서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로서는 매우 세련된??

멀티플렉스 극장도 새로 생겨서 거기서 Cold mountain - 냉산/렁샨 😊 도 보았고 ,학생들이 나에게 석별의 정으로 철판구이 요리도 사줬다. 당시 너무 깨끗하고 힙(?)한 분위기의 몰이 드디어 생겼는데, 이제는 두고 떠나야한다는 아쉬움.


ㅡㅡㅡ


2019년, 15년 만에 톈진 다시 방문.
그 마지막 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쇼핑가의 끝까지 걸어가봤다. 아마 여기쯤에 새 쇼핑몰들이 들어서고 있었던 거 같은데..
비교적 새 건물인 쇼핑몰은 없네? 여기 아닌가?





내 기억 속 반짝반짝했던 새 쇼핑몰들은 없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 그쪽 거리 상권은 쇠퇴하고 있었다.

아 이쯤 맞는 거 같은데...왜이리 썰렁하지? 예쁜 몰들은 어디 간 거야? 벌써 헐렸나? 아니면 여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근처 낡은?망한?건물에 ᆢ영화관 정상영업중ᆢ이라는 간판이 하나 있어서 일단 찍어놨다.

세상에ᆢ ᆢ
15년의 세월이 이렇게 무서운 거였구나.
내 기억 속 그 새 건물과 세련된 그 쇼핑몰이 이렇게 낡아서 망한 걸까?
며칠 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랑 애들 가르치던 학원에 가봤을 때는 너무 그대로여서 놀랐는데 대체 여기는?!


확실치는 않아서 의문을 품고 여행에서 돌아온지 2년째.
벽장에서 중국의 서류 정리함을 발견했다.





하하😉 영화표도 남아있다.
영화표에 나온 완다영화관이라는 이름과, 다른 영수증의 주소로 비교해볼 때 2년 전 내가 반신반의하며 사진을 찍어뒀던 그 낡은 쇼핑몰 건물이 15년전 그리 반짝반짝했던 새 쇼핑몰+영화관 건물이 맞는 듯하다.

세상에 15년이 이렇게 무섭군. 대체 이 거리는 왜 망했을까? 2004년초엔 지나가면서 우와우와 여기 봐라 했던 곳 같은데.

시네마천국에서 토토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치네마 빠라디소가 헐리는 걸 보는 기분이네.🥺

자료를 더 찾아보니 
2004년에 문을 열었다가 지금은 망한, 내가 기억하는 이 몰이 톈진의 완다플라자 1세대라고 되어있다. 지하철이 개통되고, 초거대 몰들이 문을 열면서 상권이 동쪽으로 이동했다고.


건물 낡듯 시간이 흘러 나도 그렇게 늙었지.



------
2021년 12월 추가. 

이 글을 썼던 21년 5월만 해도 중국 지도에서 완다영화관은 영업중으로 보였는데...
12월에 다시 찾아보니 7월경 재개발 계획이 발표되었고, 이제는 완전히 헐고 다른 건물 4동을 새로 짓고 있는 듯 하다. 동쪽으로 이동한 상권의 중심을 서쪽으로 다시 끌어오기 위한 새로운 계획. 현재 건설중인 지하철 4호선역도 개통되어 완전히 이미지 변신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와, 진짜로 치네마 빠라디소 보듯이 2004년 그 깨끗했던 새 건물이 그새 수명을 다해 헐리고 그 자리가 완전히 없어지는 걸 보겠구나. 
기분이 이상함. 

내가 2003년에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전통의 강자였던 백화점들은 2019년에 가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중국을 떠나던 해 - 2004년 초에 반짝반짝 새로 생겼던 백화점들이 먼저 헐려서 없어지다니...

중국을 떠날 무렵... 떠남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무기력함과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 속에서 하나의 희망이었던 게 그 새로 생긴 건물들을 탐방하는 재미였다. 거기서 옷을 하나 사고 '결국 직장인의 애환을 달래는 것은 쇼핑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던 곳이기도 했다. 당시엔 톈진 시내에 1-2곳 밖에 없었던 스타벅스도 그 건물에 새로 문을 열어 유행의 최전선에 있던 동네였는데... 

그리고 결국 떠나게 됐을 때, 마지막날 지인들과 환송의 의미로 식사를 했던 게 그 건물이라서 꼭 추억삼아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2019년 재방문 때 너무 낡아서 다시 들어가 볼 수 없었던 것도 충격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흔적도 없는 곳이 되었다니. 

이제는 2019년에 삐뚜름한 사진 한 장 남기고 그 쇠락한 광경을 목격하고 올 수 있었던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게끔 상황이 바뀌었다.












기록의 힘





외국에 총 2년 8개월 정도 살아봤는데, 향수병에 걸린 적은 아직 없다.
5년쯤 살아보면 당연히 변하겠지만...그리고 내가 나이가 더 들었다는 사실도 변수가 되겠지.

그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뭔가가 그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이 있었는데, 그 순간은 기억하지만 그때가 언제쯤이었는지는 확실히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싸이월드 기록을 보니, 그 시기에 대한 글이 있네... 
다시금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며...




2004.02.18 12:36 

간만의 눈물

여기 타국에 와서 뭔가가 그리워서 울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 대상은 우습게도 십 여년 전에 기르던 개였다.

한 달 전에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데,
차창 밖으로 개 한 마리가 지나갔다.
그런데 그 개와 전혀 닮지도 않은 우리집 개 "재롱이"가
갑자기 생각나면서 한 번 다시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미 죽은 게 확실한 그 개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사를 가면서 그냥 살던 집에 놔두고 갔는데
수 개월 만에 그 집을 다시 방문했을 때,
멀리서도 우리 가족의 냄새를 알아채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면서 반가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렇게 반가워하던 모습은 상당히 강렬한 기억이었나 보다.
그런데 오늘은 드디어 사람 때문에 울게 되었다.
내일 군대가는 동생에게 전화를 하다가 그냥 눈물이 나서
대충 잘 다녀오라는 말만 하고 끊어버리고 말았다.
난 내가 군대에 가야만 하는 상황을 절대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남자였다면 나라도 면제 받기 위해 뭔짓이라도 했을 것 같다.
불쌍해....

댓글2



  1. ㅊㅇ경
    미야..나두 우리집 강아지 생각난다. 다롱이...ㅠ.ㅜ
    2004.02.26 03:23 
  2. ㅊㅅㅇ
    미야야 미안, 이 와중에도... "용밥"이 눈에 띄어서 순간 웃음이 살짝 새어 나왔어. 미안미안^^
    2004.02.27 12:23 

햇살이 쏟아질 때는 그 햇살을 모름



작년 4월에 '공기 나쁜' 톈진 가서 찍은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해놓았다.




워낙에 공기가 안 좋은 곳이라, 내가 있었던 5박 6일 내내 날씨가 안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톈진에서 이 정도면 아주 그냥 햇살이 쏟아지는 청명한 날씨였던 거다.

그날 찍은 사진을 보니, 색감이 밝다.
다른 날은 많이 우중충한데....

몇 개월을 그리워하다가 결국 실현시킨 여행,
몇 개월 동안 궁금해했던 장소.
이렇게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구나. 일요일 오후.
정작 걸어다닐 땐 몰랐는데.


15년 만에 한 번 다녀와보니, 지하철도 생기고 버스 노선도 익숙하고... 식당 직원들도 모두 친절하고.
다니기에 어려움이 없어서 다시 한 번 갈까 생각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이 다가와서 아쉽다.


내가 햇빛을 받고 있을 때는 그게 햇빛인지 몰랐구나.


04/21  13:13

통과 의례?




2007.12.30 17:16 


줄어든 나의 향수
줄어든 나의 치약
사라진 나의 클리넥스
사라진 나의 펜
사라진 나의 새 이어폰...
 
3주 동안 민박을 한 결과, 행방이 묘연한 것들이 많다.
 
짐이 워낙 많아서 어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에
확실히 문제 제기는 못했지만 정말 사라진게 확실하다면
이건 분명 절도 행위다.
 
내가 민박을 한 집은 스리랑카 민박계의 허브(?) 같은 곳으로 이번에 온 6명 민박을 모두 주선한 집이다.
 
18살 ,15살 이쁜 딸들이 있어서 모든 단원 사이에서 유명한 집이지만 나는 이제 '도둑들'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
 
현지인과 쉽게 친해지고 현지의 삶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민박이 오히려 불신만 심어놓은 것 같다.
 
매일 아침 자물쇠를 채우고 외출해야 할 때 사실 난 슬프다.
 
마지막 날도 짐을 모두 싸 놓고 혹시나 해서 자물쇠가 없는 큰 이민 가방에는 흰 색 리본을 묶어놓았다.
 
오후에 내 짐이 사무소로 왔을 때 흰색 리본이 풀려있었지만 30KG에 육박하는 내 짐이 너무 무겁기에 2층 방에서 끌고 내려오다가 풀렸겠거니 했다. 하지만 내가 한 쪽 손잡이에만 걸어 놓은 네임택이 양쪽 손잡이 모두에 걸려 있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다.
 
젠장!
그래도 믿어주려고 했는데 왜 주인 없다고 짐을 뒤질까?
 
예전에 이 집에서 민박한 애도 옷 한 벌이 없어졌다고 했다.
 
현지인들에 대한 경계심을 키운 이 집이 밉다.
그래도 여기에 적응하기 위한 통과의례라 생각하고 넘어가야 되는건지...






Stuck in a moment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남긴 중국 생활,
지나고 보니 상당히 감사한 것 중의 하나는....
중국의 저렴한 물가와 턱없이 부족한 준법정신(!) 덕에
시내 대형 서점에서 쉽게 집어들 수 있었던 불법 복제 CD들이다.
2-3천원 정도의 가격으로 살 수 있던 ء2cd 모음집 ㅎㅎ.

덕분에 Queen, U2의 베스트 모음집을 아무런 경제적 부담없이 😅
접할 수 있었고, 그들의 노래를 지금 들으면 언제나 중국에 살던 시절이 생각난다.

최근 u2의 내한 공연 후기를 몇 개 보다가
그들의 노래 중 stuck in a moment you can't get out를
제일 좋아했었던 생각이 난다.
중국에서 쉽게 그 cd를 집어들지 못했다면, 아마 몰랐을지도 모를 노래.


새삼 '물가'와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 ㅎㅎㅎ
특히 나처럼 돈 버는 재주 없고, 돈 안 벌고 생명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는....


한가지 아쉬운 건,
2004년쯤에도 이 곡의 마지막 가사,
" it's just a moment, this time will pass."에
엄청 위안을 받곤 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시간은 여전히 지나가지 않았고
난 여전히 'stuck in a moment' 느낌이라는 거다.





돌아가는 길




우리 고양이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시 보고 싶고.... 하지만 다시 볼 수 없는 존재 - 집주인 개들, 테디와 타이니.





처음 스리랑카 집에 이사했을 때는 우측 숫놈 개가 나만 보면 짖어서 너무 무서워했었다.
집주인이 이사를 가버리고, 그 3층 규모 집에 나와 이 개들만 남았을 때, 
종종 피자 배달을 시켜먹었는데 이 개 땜에 무서워서 배달부 문을 열어주기가 어려웠을 정도.

왼쪽 암컷 타이니는, 선배 단원들이 넘겨 준 짐에서 나온 '육포' 한 번에 나의 포로가 되어 나를 졸졸 따라다녔지만
수컷은 나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어느날 집주인 딸이 놀러왔길래, 수컷이 온순해진 틈을 타서 나도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그 뒤로 수컷도 내 친구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수컷 테디는 나를 싫어한 게 아니라 내가 자기를 너무 무서워 하고 피하니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딱 한 번 쓰다듬어 주니, 이 오해를 풀고 친해졌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상처받을 일이 있어도, 이 친구들 덕에 마음이 풀리곤 했다.
인간끼리는 상처를 주고받아도, 동물은 그게 아니라는 걸 절절하게 배웠다.


 
어느날 내가 1박 2일 행사를 마치고 온 밤, 나를 늘 마중 나오던 두 마리가 나오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암컷만 나타났다. 너무 무서웠다. 테디의 실종.
집주인은 내가 문을 열어 놓고 다녔다고 약간의 의심을 했지만, 나도 혼자 사는 여자인데 무서워서 문을 열고 다닐 일이 있냐고 했다. 사실 그 집 대문은 너무 헐겁게 잠그는 문이었지만....
며칠 뒤, 수컷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했고 집주인은 암컷도 새로 이사 간 집으로 데려갔다.
그것으로 그들과 이별.


2년 전에, 내가 찍어놓은 테디와 타이니 사진 10여 장을 보다가, 용기를 내어 집주인의 딸에게 이메일을 썼다.
사진을 첨부해서.
집주인 가족은 너무 반가워하며 답장을 해줬고, 집주인 아저씨는 어찌 찾아냈는지, 나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도 했다. 그래서 그 뒤로 다시 소식을 주고 받고 있다.

나랑 같이 살 때도 이미 10살 넘은 개들이었던 이 부부. 암컷도 진작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래브라도 컵케익을 키우고 있다고.....

난 그때 컵케익이 래브라도종의 애칭이거나 하위 분류 종을 지칭하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말캉말캉한 강아지들을 인절미, 찹쌀떡...이런 식으로 부르듯이.
하지만 오늘, 집주인 아저씨 페이스북에서 이름이 '컵케익'인 래브라도의 실종 소식을 들으니 철렁하네.







10년 여 만에 이 집은 또 반려견 실종이네.... ㅠㅠ
컵케익은 만난 적도 없지만, 이 강아지는 제발 집으로 돌아왔으면.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온다면서, 사람을 위로하는 그림이 있는데,
우리 고양이도 물론 보고 싶고, 내 반려견은 아니었지만 테디와 타이니도 다시 보고 싶어.....






이런.....




약 1년 전쯤 쓴 글 중 일부.



"하지만 나는 싸이월드, 구글 블로그, 페이스북에 각각 다른 내용을 쓴다.
뭐 일상이 거창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어느새 각각 다른 내용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3년 전에 그렇게 낯설었던 구글 블로그가 이제 가장 편해져서

가장 마음 속 이야기는 여기에 쓰게 된다는 것을.
어쩌면 절친들이 찾아오지 않아서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친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 더 솔직할 때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싸이월드는 그냥....미련이 남아서 예의처럼, 습관처럼, 끼적이는 내용들.

그리고 페이스북에는 어쩌면 사회 생활하는 내 모습이 남아있다. 페이스북 친구는 대부분이 스리랑카 학생들이라, 나는 거기서 '착했던 그 선생님'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싸이월드는 딴 생각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내가 혼자 좋아하고 살다가 한 방에 걷어차이고 이혼한 전남편 같고,
구글 블로그는 혼자 남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다가 결국 내 옆을 지키게 된 새 남자친구,
페이스북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사귀는 친구 느낌이다.

아픔을 남기고(?) 헤어졌지만 북적북적 부대끼던 옛 시절을 못 잊어, 여전히 서로 예의차리고 안부 묻는 ex남편 싸이월드.

슬슬 정은 붙어 가지만, 친구가 너무 없어 인간 관계의 폭이 좁은 새 남자친구 구글 블로그.
남에게 소개하고 싶기도, 숨겨놓고 싶기도 한 남자친구.

그리고, 함께 있으면 뭔가 자연스런 내 모습이 나오면서도 동시에 가식적인 내 모습 연출도 해야 하는 것 같아서 갸우뚱하게 되는 international한 친구 페북이."






Ex남편 사망 😱
정이 다 떨어졌더라도, 이렇게 영영 소식이 끊기게 되면 결국 아쉬운 법인데...



이런 데 신경 쓸 인력이 없어서.... 지금은 10월인데 내용이 봄에 멈춘, 슬픈 싸이월드 정원




bump into




내가 고양이의 주의를 끌기 위해 내는 "찍찍 psst psst" 소리가 있다. 내가 이 소리를 내면 길 가던 고양이 중 진짜 90% 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한 번 돌아본다. 해외에서도 통함😾. 냥이들은 곧 내가 별 거 아님😂을 확인하고 가던 길을 간다.

 
오늘은 저멀리 걸어가는 고양이를 불러봤다. "찍찍". 
얘는 걸음을 멈추더니 냐옹거리며 나에게로 걸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줄 게 없네. 햇볕 아래서 몸뒤집기를 하던 이 고양이는 이내 내가 앉은 벤치로 올라와 내 뒤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이렇게 경계심없는 고양이는 처음 본다.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니라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게 아쉽. #DoIknowU?




그 고민을 너만 하는 건 아냐





새카만 머리카락과 함께 태어나는 아기도 있지만 나는 태어났을 때 거의 대머리였다고 한다.  지금도 머리숱이 매우 적은 편인데 엄마는 "너 이 정도라도 머리카락이 난 것만 해도 신기하다" 하실 정도.

그리고 왼쪽 위 뒤통수에 '가마'가 있어서 거기서 머리가 갈라지는데, 머리숱이 없다보니 그 부분이 유난히 도드라진다. 머리를 질끈 묶으려해도 그 부분의 두피가 마치 원형탈모처럼 드러나 보여서 거울 두 개로 뒤통수를 보면서 빗으로 살살 빗어 드러난 두피를 "덮어줘야" 한다.







야경 감상 중... 더워서 대충 머리 묶으면 이렇게 뒷머리가 듬성듬성 🙄





오늘 길을 걷다가 나와 똑같은 고민에 직면하신, 한 여자분을 봤다.
그 분을 계속 보면서 걷게 된 건, 그 분이 쉴새없이 머리카락을 넘기며, 정리하며 길을 걸어가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 분은 나와 반대쪽, 우측 뒤통수 위쪽에 가마가 있었다. 그 분도 거기서부터 머리카락이 갈라져, 두피가 드러나 보였고, 그 부분을 포함 정수리 머리숱이 적은 편이라 약간 휑~ 해 보였다. 그래서 그분도 연신 머리카락을 정리해 쓸어 넘기며 그 부분을 "덮으면서" 걷느라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내 뒷모습이 저렇겠구나.

거울 두 개를 이용해 보지 보지 않으면 보기 힘들었던 내 뒷모습이 내 눈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
동병상련의 감정이 밀려왔다. 저 분이 무엇을 계속 신경쓰는지 나는 안다. 
세상 어디에든,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있구나....


한편으로는, 그 분이 연신 머리를 만지고 있었기에 길에서 내 눈에 들어왔다.
그냥 걷고만 계셨으면 그 분의 빈약한 머리숱은 나도 눈치채지 못할 거였다.

대부분의 열등감이나 약점은, 남들이 눈치채기도 전에 내가 먼저 반응해서 들키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더 두드러지는 거.

내가 잘못해서 내 머리숱이 적어진 것도 아닌데,
너무 의식하지 말고, 그냥 다녀야겠다.
남들은 아무도 내 머리 안 쳐다보는데, 그냥 나혼자 머리숱 신경쓰고 있는 거겠지.






옛날 사람



올림픽 배구 예선 경기를 잠깐잠깐 보고 있으니...

예전 임도헌 선수가 어느새 국가대표 감독이시네.


중학생 때 우리 학교 교생선생님이셨는데 ㅎㅎㅎ

아주 가끔 우리 체육수업 시간에 얼굴을 비췄었고,
당시에도 아주 유명한 선수라며 교무주임(??)이셨나 그런 선생님이 멀찍이서 자랑스럽게 이 교생을 지켜보시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선수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지 ㅋㅋ



지금이야 폰 카메라 때문에 일상의 모든 순간이 사진으로 남지만...

내가 중학생때는 기껏해야 필름 카메라였던가 ㅎㅎㅎ 그나마도 아무도 학교에 가져와서 찍는다는 생각은 안 했던 거 같다.

아마 요즘 중학교에 유명 운동선수가 교생으로 가면 다들 사진 찍고, 소셜 미디어에 사진 올라가고 난리가 나겠지만, 나의 중학 시절 교생 선생님들은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네. (그나마 고등학교 때 교생 선생님들은 사진을 찍었던 거 같다)

증거가 없으니, 대학원때 남자 동기에게 "우리 학교에 임도헌이 교생으로 왔었다!" 했더니 믿지 않더라는 .....
'인증'과 '영상'이 필수인 요즘 시대를 살다가, 인증 하나 남지 않은 추억을 생각하니.... 새삼 내가 옛날 사람 같다.

다시 올 수 있어요?


💨2008.07.16 16:34 



랑카 코이카 단원이 우리 집에서 삼사십 분 정도 떨어진 마을의 학교에 작은 교실을 하나 짓고 opening ceremony를 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내 뒤에 앉은 "랑카 초딩"들이 나를 꾹꾹 찔러 다른 한국인 선생님들의 이름을 자꾸 물어보았다.

'친절한 ㅁㅇ씨' 혹은 "친절해 보여야 하는 봉사단원 ㅁㅇ씨"는 모든 질문에 대답해주었고, 마침내 초딩들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내 이름이 스리랑카 말로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것을 알게 된 초딩 남학생들은 내 이름 한 번씩 불러보고 놀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름 가지고 남 놀리는 것은 어딜 가나 초등학생들의 특징인가 보다.

"아삐 셀람 꺼러무" (같이 놀아요)
"씽두 끼여무" (노래해요)

친절한 ㅁㅇ씨는 결국 땡볕이 쏟아지는 운동장에서 날렵한(?) 스커트와 바닥이 딱딱한 샌들을 신고, 나홀로 초딩들 사이에 둘러싸여 '땅따먹기'를 하게 되었다.
단 한 곡 부를 줄 아는 랑카 동요와 자장가까지 불러줬다.


순간 포착을 잘한 동료 단원의 사진. 어떻게 저리 입을 활짝? 😆



"오야 랏써나이"
(당신은 예뻐요...여기는 피부만 희면 무조건 미인이다;;;)

햇볕이 너무 강하고 땀이 주루룩 흐르도록 더워서 정말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즐겁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올 수 있어요?"
"언제 와요?"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난 여기 와서 무얼 하는 걸까?
왜 나의 여러 행동이 가식적으로 느껴질까?





inscrutable




2013.07.15 03:04


2012년 9월에 이론에서 벗어난 "실기"를 경험하기 위해 태국에서 열리는 테니스 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운좋게 그 테니스 대회 전체를 관장하는 supervisor's office에 배치 받아서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오피스에서 9일간 신나게 테니스 경기만 관람하다 왔다.


한국이었다면 커피 한 잔, 복사 한 장, 자기 손으로 안 할 정도의 급은 되는 아저씨들이었지만 테니스계 supervisor들과 심판들은 대부분 유럽 사람이다 보니 남이 그 일을 해주는 것을 불편해했다. 너무 심심해서, 아니면 너무 일을 안 하는 거 같아서 커피 만기 싫어하는 나조차 "커피를 줄까?" 하거나 복사를 도와주려할 지경이었는데.. 그러면 다들 손사레를 치곤했다. 니 일이나 하라며...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런데 솔직히 경기 끝나면 스코어 적으러 아래층 내려가는 것 외엔 '내 일'이 없었다. ㅎㅎ 그래서 맨날 경기나 보다가 왔지 뭐.



이 사무실에는 수퍼바이저 mr.S와 영국인 레프리, 이탈리아인, 아일랜드인, 이집트인, 미국인, 프랑스인 체어 엄파이어가 있었다. 다들 유머 감각이 넘치고 뜬금없이 노래 부르고, 농담하고...티비 중계에서 보던 근엄한 심판의 모습과 너무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예선 경기만 주로 심판을 보던 태국인들도 있었는데, 다들 한국 테니스 대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아시안들끼리만 통하는 감성과 'asianglish'가 있어서인지 즐겁게 친분을 다질 수 있었다.


체어 엄파이어와 대회 수퍼바이저를 겸할 수 있고 그랜드 슬램 대회 결승전까지도 심판을 볼 수 있는 gold badge를 가진 심판은 전세계에 25명 정도라고 하는데, 이 태국 대회에만 그 골드 배지 심판 5명이 왔다. 


이들은 전세계에 (테니스 대회는 1년에 11개월 동안 대양주, 유럽, 미주, 아시아, 아프리카...등을 차례로 돌면서 매주 세계각지에서 열린다) 본인이 계약된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도시의 공항에 도착하면 주최측이 픽업을 나와서 특급호텔로 데려간다. 그리고 11시쯤 테니스 코트에 와서 하루에 두 게임 정도의 심판을 보고 나머지 저녁 시간을 즐긴다. 올해 은퇴한 베테랑 골드 배지 심판이 1년에 25주 정도만 심판을 본다고 3년 전에 인터뷰한 것을 봤는데, 그 정도만 일해도 가계(?)가 유지될 정도로 보수 수준도 괜찮은가 보다. 


매주 거처가 바뀌는 직업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나는 일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거의 최상급의 직업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돈 주고 비행기를 타지도 않을 것 같지만, 매주 세계 여러 도시를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항공사 마일리지 프로그램 등급도 무지 높다. 다들 가방에 거의 항공사의 최상급 티어 태그를 달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ㅎㅎ

암튼, 서론이 길었는데...

수퍼바이저, 심판들...다들 매주 여러 문화권의 새로운 사람을 마주쳐서인지, 다들 너무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었다. 그런데, 난 학교에서 배운 영어 외에는 어떤 실용적인 영어 교육도 받아보지 않았고, 타인과 능수능란하게 영어로 오래 대화하는 환경에 놓여본 적 없었기 때문에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미소만 짓고 있다는 동양인의 본분에 충실할 따름이었다. (--;) 외국인들과 일하기 위해서는 농담따먹기 스킬이 필수 조건 중의 하나임을 알았다. 자봉들만 심심한 게 아니라, 경기 사이사이에는 심판들도 심심하기 때문에 자봉들이 그들과 놀아주는 것도 일이었다.


반경 500m(?)내에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조그만 동양인이 안쓰러웠는지, 아일랜드 심판 아저씨는 지나갈 때마다 꼭 한마디라도 걸어주었다. 그 아저씨와는 그나마 대화가 잘 됐다. 그리고 처음에는 친해지기 어려웠지만, 유럽의 주요 언어는 모두 구사하는 것 같은 수퍼바이저 mr.와도 막판에는 약간이나마 친해져서 이름을 부를 정도는 됐다. 테니스대회는 보통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꼬박 벌어지는데, 그전 일주일전부터 이미 방콕에 도착해있었던 나는 여행의 피로가 누적되어서 목요일에 하루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서 만난 레프리 할아버지는 '서양 사람들'의 인사 성인 ...믿지 못할 "We missed you"라는 말을 하면서 반갑게 맞아줄 정도로 마지막에 갈수록 다들 정이 들었다.


그런데 그중에도 유난히 힘든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N이다. 뭔가 불만이 있는지 늘 퉁명스러웠고, 서로 굿모닝~ 인사조차 하기 어색했다. 도저히 말을 걸 '건덕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점심 먹고 오길래, 용기를 내어 "Had a great lunch?" 했더니, "Not great, it's OK lunch." 라고 대답했다. '으이그...그냥 인삿말인데 그냥 좋았다고 하면 되는 거지, 꼭 토를 달아야 하나?'


대회 시작 전부터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친해진 태국인 스태프가 나에게 심판들 하나씩 전해주라며 심판 비상연락망을 주고 갔다. 수퍼바이저 외에는 그 연락망이 솔직히 별 필요가 없다는 걸 나조차도 알겠던데, 그래도 다들 고맙다며 그 종이쪼가리를 기쁘게 받았다. 그런데 N은 그 종이를 받고나서 툭 던져버리는게 내 뒤에서 느껴졌다. '아이고...이 아저씨 이제 포기. 친해지려는 노력 이제 그만해야지' 기본적으로는 농담하기 너무 좋아하고 웃긴 사람이었는데 (심지어는 뒷담화나 가십도 좋아하는) 나와는 나머지 며칠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냈다.


마지막 일요일 결승날, 비행기표 시간 상 어쩔 수 없어서 결승전을 끝까지 보지 못 하고 테니스장을 떠나야했다. "E, C, 나 지금 가...고마웠어..." 다들 즐겁게 인사하고 헤어지는 순간이 왔다. 정말 상사로 모시고 계속 같이 일하고 싶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일주일 내내 데면데면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인데 인사를 안 할 수가 없어서 컴퓨터를 보고 앉아있던 N에게 말을 걸었다. 대화조차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어서 mr.N...이라고 조용히 불렀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른 이들은 악수만 하고 끝났는데, 그는 의외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hug를 했다. "토너먼트 기간 동안 애썼어" 뭐 그런 말과 함께. 의외였다. 그냥 인사치레라고 해도.


친하게 지냈던 태국인 자봉 jan언니와도 작별인사를 나누고 테니스 경기장을 서서히 벗어나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다. 잘 끝났다는 안도감이나, 서울이라는 현실로 돌아가기 싫다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70%정도는 요상하게도 때문에 눈물이 났다. 내가 마음을 더 열면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and..노력을 안 하니 당최 늘지 않는 회화 실력에 대한 자책...이런 것 때문이었다.


사실 대회 기간 내내 영어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갑자기 한국인이 하나도 없는 환경에 떨어지니 원하는 말이 입에서 안 나왔고...점점 적응할 줄 알았더니...설상가상 한국을 떠나고 열흘 쯤 뒤부터는 시제가 망가졌다. 머리 속에선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입에서는 모든 동사가 과거형으로 나오는 신기한 현상이.... 마지막날 호텔에서 체크아웃 하면서 직원이 "너 이제 어디로 갈 거니?"라고 물었을 때 "I went to the airport"라고 답이 튀어나오는 식. 😱 제일 멋져보였던 c 아저씨가 너 퍼스트 네임이 뭐니? 라고 물어봤을 때 Hwang! 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하는 짓도 ㅋㅋㅋ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와 내 소심함에 대한 스트레스, 게다가 매일 가야 하는 사무실에 왠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굉장한 스트레스였던 거 같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사람이 그동안 나를 아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닐 것 같은 느낌의 작별인사를 하자, 아마 뭔가가 탁 터졌던 거 같다. 


결승전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을텐데, 내가 혼자 눈이 시큰해져서는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는 건 아무도 관심없었겠지 ㅎㅎ 외국인은 내 문법 따위 신경도 안 쓸텐데, 틀린 영어를 할까봐 소심하게 웃고만 있었던 나를 자책하면서...
----



또 하루, 테니스 관련해서 자괴감에 엄청 우울했던 날....
테니스 대회 취재해서 보도 자료 만드는 일을 잠시 했었는데, 2015년 당시에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된 아래 두 선수를 만날 일이 있었다.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멀리서 또렷하게 찍어야 했기 때문에, 집에서 굴러다니던 DSLR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복식 경기가 끝나고 두 선수와 인터뷰(??)를 약간 하고,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카메라 조작에 서툴렀던 나는 카메라가 갑자기 초점이 맞춰지지 않아서 당황했다. 세 장을 찍어 봤는데 사진이 다 이랬다. 철제 펜스만 아주 잘 나옴.






전혀 카메라 조작을 할 줄 모르고 멀리서 찰칵찰칵 찍을 줄만 알았던 나는, 갑자기 가까운 피사체를 찍어서 그런지 초점이 맞지 않게 된 카메라 때문에 너무 당황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카메라를 조정해보겠다는 말도 못하고, 경험이 너무 없어서인지 이렇게만 사진을 찍고 우물쭈물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행히 경기 중에 이미 찍어둔 사진으로 보도 자료는 나갔다.

이러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 동안 얼마나 자괴감에 빠졌던지.... 제대로 조정할 줄도 모르는 카메라를 들고 다닌 일이나, 그러면서도 배울 생각도 안 하고 몇 달을 버틴 거 때문에.
이 나이가 되도록 전문적으로 능숙하게 하는 일이 없다는 것 때문에.




몰랐던 이유




난 대학교 졸업 무렵까지만 해도, 집밖에서는 잠을 못 자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한 방당 20명 넘게 집어넣는(!) 경주 "여관"시설의 더러운 이불을 보고 
처음 이틀 간은 내 옷을 꺼내 깔고 덮고 잤다. 물론 이불이 원래 부족하기도 했기 때문에 유난스레 결벽증처럼 튀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땐 한 반 학생이 50명이 넘었으니까. 그러나 3박 4일 마지막 밤에는 지쳐서 그냥 숙소 이불 속에 섞여서 잤던 걸로 기억.

대학생 때는 역시 집밖 숙소 기피증으로 인해, 엠티 같은 것도 많이 가지 않았고
만약이라도 가게 되면 내 "주특기"를 이용해 밤을 그냥 새웠다. 그래서 이불이 필요없었다.
나는 원래도 밤을 잘 새지만, 술을 마셔도 끝까지 살아남는 편이었다. 어떤 것에도 머리를 대지 않고 그대로 집에 돌아오는 법을 택했다. 


집 밖 숙소는 왠지 더러운 것 같아, 잠을 전혀 못 자던 것은 해외봉사단 생활을 하면서 자동으로 극복이 되었다.
물론 내 집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문화 생활을 하려면 수도에 꼭 나가야 했다. 수도에 나갈 때마다 묵는 유숙소, 그리고 각 지방에 놀러갈 때마다 있던 각 단원의 집.... 결국 아무데서나 잠드는 생활에 익숙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베개는 왠지 꺼림칙해서 내 수건이나 내 옷을 베고 자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냥 숙소 침구를 믿고 그냥 잔다. 그리고 이젠 늙어서 술을 많이 마시면 곯아떨어지는 나이가 되었다.



2014 London hostel. 원래는 호스텔 첫 숙박 기념으로 찍어둔 사진이지만,
베개 부분에 내 티셔츠가 펼쳐져 있는 걸 보면 나의 습관을 알 수 있다.😜




집밖에선 잠도 못자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사람에서 
늘 "없는 살림"에 돈을 쪼개 아무 목적없는 홀로 호텔 숙박을 좋아하게 된 나... 그 이유가 뭘까.
그냥 집에서 눈칫밥을 먹는 존재라 아무도 없고, 어떤 방해도 없는 공간이 좋아서 그런게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최근에도 5박짜리 홀로 여행을 즐기고 와서, 다시 집 생활에 적응(?)하려니...
내가 호텔 숙박을 하면서 은근히 즐기고 있던 게 뭔지 새삼 깨달았다.
그건 바로 깔끔한 화장실/욕실이 옆에 딸려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넓은 집이 전혀 아니지만, 아무튼 가족 중 누구보다 내 방에서 화장실이 제일 멀다.
나는 선천적으로 안좋은 장을 타고 태어나서 (예전에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의사가 타고 난 것이니 그냥 적응하고 살아야 된다고 했었다😢) 새벽 설#가 잦은 편인데... 그냥 내 방 옆에 화장실이 있었으면 싶다. 그리고 그 민망한 사운드가 아무에게도 안 들리면 좋겠다 ㅎㅎ.

그리고 나는 샤워를 아주 좋아하는데, 우리집 욕실은 2개가 있지만 둘다 샤워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우리 엄마와 언니는 신기할 정도로 샤워를 자주 안 하는데🤔 비교적 깔끔한 외양을 유지하고 산다. 아마 어릴 적부터 샤워 간격을 길게 가져왔기에 거기에 신체가 적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나머지 두 사람은 욕실 환경 개선에 관심이 없다. 

또한 물욕이 상상을 초월하는 언니의 잡동사니로 인해, 우리집 거실 욕실은 너무나 지저분하다. (한 번에 샴푸를 8가지 종류를 사놓고 돌아가며 씀, 그외에도 안 씻는 사람치고는 잡다한 목적의 세정제를 많이 보유함. 사용기한이 지나면 버려야 하는데, 물건 주인이 그걸 안 하고 또 없어지면 없어졌다고 난리이니... 물건들이 모두 갈 곳을 잃은 채 너저분하게 몇년째 욕실에 늘어서 있음) 찍소리도 못하는 막내로서는 그냥 눈치 보며 매일 한 켠에서 샤워를 할 밖에.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호텔 화장실은 여러 사람의 손길 발길이 닿은 곳임에도, 우리집 화장실보다 깔끔하고 안정감있게 느껴지게 된 것이다.
원하면 금방 화장실 변기에 도달할 수 있고, 1박 2일간 욕조 목욕을 3번 즐기며... 너른 공간에서 여유있게 바디 로션을 바르고... 내가 호텔에 머무는 걸 즐기던 숨은 이유 중 하나가 이거였구나 싶었다.





침대 바로 옆 나만의 화장실.... ㅜ.ㅜ


누군가는 호텔에 돈 퍼붓지 말고, 빨리 제대로 돈 벌어서 좋은 집으로 독립하라고 그러겠지.😥
이 문제는 진짜 '혼자 있는 것'이 중요한 해결책인 것 같다. 만약 파트너가 생긴다 해도, 타인의 화장실 취미는 알 수 없는 일이니... 


---

또 하나의 숨은 이유는 최후의(?) 도피처를 만들어놓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가끔 "저 지금 부부싸움하고 그냥 집 나왔는데, 갈 데가 없어서 제 차 안에 있어요. 어쩌죠? 갈 데도 없고, 친정은 안 되고 다시 집에 들어가기는 싫고...." 이런 글을 볼 때마다 호텔 멤버십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는 게 뭔가 위안이 된다. 부부싸움할 남편은 없지만 🤓. 
정말 못 참아서 어딘가로 혼자 숨어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장 돈 한 푼 없더라도  3개의 서로 다른 호텔 체인에 잘 배분하면 6박 정도는 무료 숙박할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는 게 참 안심이 되네 ...







나달이 늙어간다.




방금 끝난 마드리드오픈 준결승에서 20세 치치파스에게 패배.

나달의 클레이코트 경기에는 종종 나달만의 반짝거림이 있는데, 오늘은 치치파스를 상대하며 별 대책이 없는 평범한 선수로 보여서 패배를 예견해야 했다. 그래도 바라는 건, 2014년 롤랑 가로스 때도 대회 중반까지 나달의 경기가 평범해보여서 '올해는 힘들겠구나' 했는데 어느 순간 반짝임이 살아나더니 실제로 우승해버린 적이 있는데, 올해도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12월을 제외하고 1년 내내 경기가 있고, 대회마다 엄청 많은 운동량이 필요한 프로 테니스. 대부분의 선수가 30대 초반에 은퇴를 해왔다. 페더러라는 괴물(!)이 만37세를 넘어서도 우승을 해내며 30대 초반에 은퇴한 선수들을 머쓱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정말 특별한 선수이고, 사실 정말 체력적으로 힘든 운동이라고 생각된다.

그 테니스 선수 중에서도 나달은 엄청난 활동량과 우주 방어 수비 (사실 어느 시점부터는 조코비치의 수비가 더 뛰어날 때도 있는데 여전히 수비 테니스의 대명사는 나달인 것 같다) 로 유명했고, 그 활동량과 더불어 잦은 부상으로 이른 은퇴가 예견되어왔다.

나달이 서른 살도 되기 전인 2015년경부터 기량 하락이 오면서 나 역시 마음을 내려놓고 테니스를 보고 있었는데, 2017년에 뜬금 부활 (정말 기대하지 않았음) 해서 다시 나달의 테니스를 보는 기쁨을 많이 안겨줬었다.


올해도 호주오픈에서 조코비치를 만나기 전까지는 정말 괜찮았었는데, 조코비치에게 무기력하게 패하더니 클레이 시즌에 들어와서도 예전의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운동 선수를 절절하게 응원해 본 것이 처음이라, 내가 응원하던 선수가 나이 들어가면서 패배가 잦아지는 일을 경험하는 것도 처음이다. 뭔가 짠하면서 마음 아프다.


상당한 휴식 기간을 가지는 다른 프로 스포츠 종목과 달리, 거의 1년 내내 대회가 있는 테니스 관람은 취미로 삼기에 상당히 좋은 대상이라고 생각해서 '제 2의 나달, , '또다른 my favorite'을 빨리 만들고 싶은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favorite 응원 선수가 꼭 필요한 까닭은 아무래도 경기를 보는 몰입도가 정말 다르기 때문이다. 


나달 응원을 시작한 건 2007년 윔블던부터로 기억하는데, 어느 새벽 나도 모르는 새에 생긴 일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새에 생길 뿐, 내가 억지로 좋아하려고 해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나달이 중요 경기에서 패할 때마다 심적으로 너무 큰 영향을 받는데, 나달도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가면서 패배는 점점 잦아지니 패배에 연연치 않고 무던해지려고 엄청 애를 쓰는데 쉽지는 않다. 마음에서 선수 하나를 떠나보내는 것이 쉽지 않듯이, 누군가를 맞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어느 새벽 갑자기 TV 중계 화면 속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온다는 일은 상당히 멋진 일이다.
2007년 7월 새벽 어느 날의 응원으로부터 시작되어, 내가 12년을 꼼짝없이 울고 웃고 했다.








하필이면...


 

한때 내가 살았던 톈진은...15년 만에 가보니 이제 내가 알던 그 톈진이 아니지만
그래도 상상했던 범주 내에서 변했다.


가장 크게 변한 곳은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바로 건너편이었다.
정말 하나도 개발 안 된 허름한 동네가 있고, 나무 판대기 위에 그대로 고기(정육)를 내놓고 팔던 '장터'가 있던 곳이
이젠 썰렁하지만, 그래도 현대적인 상가가 있는 상업지역이 된 것이었다. 

그 비교 인증을 하려고 예전 사진들이 (15년 전 찍던 '필름' 사진을 스캔한) 있는 싸이월드에 들어가 봤다.
중국에 8개월 살면서도 남긴 사진은 그렇게 많진 않았지만, 그 십수 장 중에서도 하필이면 그 "동네"사진만 에러가 나서 "파일이 없습니다" 라고 나온다. 사진 파일 없이 내가 적은 글만 보이고... 





무슨 일일까.
하필이면 딱 내가 제일 보고 싶었던 두어 장.
그것만 사진 파일에 문제가 생김.

과거의 모습은 잊어달라는 뜻일까.
🤔



lean against...

 

우리 집은 화장실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가끔 호텔같은 데 가면, 넓은 화장실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변기가 있는 경우도 본다.
(사실 이 사진은 그렇게 넓은 화장실의 예시 사진은 아니다. 호텔에서 변기 사진을 구태여 찍지는 않기 때문에 실제로 구조가 맘에 들었던 화장실 사진은... 저장된 게 없다)



어제 새벽에 고통스런 복통에 시달리며 한참 만에 화장실에서 탈출하고 나니, 우리집 화장실이 좁아서 변기 옆에 벽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갑자기 복통으로 비몽사몽 변기에 앉아 사투를 벌이다가 힘이 빠져, 옆 벽에 머리를 기대어 겨우겨우 기력을 유지했다.

만약에 규모가 큰 화장실에 있었을 경우, 졸린 데다가 힘이 너무 없는데 기댈 데가 없었다면 옆으로 쓰러졌을 지도....

위 사진 속 호텔은 그리 화장실이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옆으로 머리를 기대기에는 옆 유리벽과 간격이 있어 보인다.

가끔 좋은 호텔 룸 화장실에서 '이런 욕조 크고 샤워 부스 따로 있고 넓고 쾌적한 화장실이 우리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 적 있지만 어제같은 사태에서는 우리집 화장실이 좁았던 게 다행.

한번은, 화장실 크기만 웬만한 호텔방보다 더 큰 스위트에 묵은 적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그날 밤 만취해서 잠들었다가 깨어 여러 번 물 마시고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거리다 보니 화장실이 너무 넓어서 귀찮은 적도 있었다. 화장실이 넓고 쾌적한 게 장점만은 아니라는 🍇신포도 이론 🐺

암튼, 화장실에서 그렇게 기력이 빠져보기도 처음이라 기억에 남는다.





외국 살던 시기에, 안 남겨놔서 후회하는 것들




* 2003-2004년에 중국에 살았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1元 (그때 환율로는 한국돈 130원 ? 요즘은 170원 정도) 짜리 지폐는 위조 지폐가 흔하게 유통되었다. 중국인이 알려줘서 어떤 것이 위조 지폐인지 알고 나니, 나중에는 나도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100위엔, 50위엔 지폐는 위조의 위험성과 위폐를 받았을 시 그 손해의 크기 때문에 가게에 내밀어도 늘 세심하게 살펴본 다음에 받는다. 하지만 1위엔 위폐 정도는 다들 애교(?)로 봐주는 것 같았다. 그냥 유통된다. 살다 보면 계속 위폐가 손에 들어온다. 위폐 유통을 그냥 눈감아 주다니...참 대단단 나라야. 

내 기억으로는, 진짜 지폐는 일련번호가 파란색 잉크로 인쇄되어 있는데, 위폐는 검정 잉크로 인쇄되어 있다고 했나...아니면 그 반대 색이었던가...그런 식이었다. 정말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조악한 위폐도 있었지만 정교한 위조 지폐가 더 많았다. 여기저기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주고 받다보면 위폐는 자주 내 수중에 들어오곤 했다. 이 지폐가 들어오면 기분이 나빠서 그냥 버스 요금통에 접어서 넣어버리거나 한꺼번에 여러 장과 섞어서 지불할 때 쓰곤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큰돈도 아니고 그저 130원 짜리인데 기념으로 몇 장 들고 귀국할 걸 그랬다...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 1위엔짜리는 지금도 어떻게든 구할 수 있겠지만, 위조 지폐가 다시 내 수중에 들어올 일이 있을까 싶어서 😁 게다가 요즘 중국 사람들은 현금도 거의 안 쓴다던데...




* 스리랑카에서 내가 살던 집은 엄청 크고 아무 생물이나 드나들 수 있는 동물의 왕국 같은 집이었다. 도마뱀, 쥐, 진짜로 내 주먹만한 왕거미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근처에 있었으면 기절했을 듯) 바퀴벌레, 우리 고양이가 잡아와서 섭취한 다람쥐 등등 별별 구경을 다 했다.

언젠가는 집을 이틀 정도 비우고 돌아와보니 내 침실에 모기장이 다 떨어지고 쑥대밭이 되어있어서 고양이를 마구 혼냈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우리 고양이 것보다 훨씬 큰 발자국이 침실 여기저기에 찍혀있었다. 그 생물체와 우리 고양이가 싸움을 벌인 모양...도대체 무슨 생물인지 알 길이 없으나.

2층이지만 거의 3층 높이의 내가 살던 공간 베란다에 세탁기를 두었는데, 그 공간에는 철창은 있긴 했지만 동물은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철창이었다, 어느날에는 내 세탁기 위에 거의 인간의 것과 크기가 흡사한 💩이 차분히 놓여져 있던 적도 있었다. 우리 고양이의 dung크기와 모양은 내가 알고 있으므로, 이건 흔히 집에 사는 작은 고양이의 것이 아니라 무지 덩치가 큰 동물의 💩이란 건 그 크기로 짐작할 수 있었다. 2층 이상의 높이에 올라온 걸 보면 분명히 고양이과의 생물체일 텐데 대체 어떤 넘이 내 세탁기 위에 💩싸고 간 거야? 

귀국을 앞두고 짐정리에 정신없던 어느날... 우리집의 매우 높은 벽 윗부분에 가로 방향으로 동물 발자국이 찍힌 것을 보았다. 마치 요런 모양?




대체 뭐지?

스파이더 고양이? 저 높은 벽을 세로로 기어오르는 것도 아니고, 횡단해 이동하는 생물체??


참고로 우리집은 천장이 아주 높았다



나중에 우리 집에 잠시 왔다가 그 발자국의 방향에 감탄하고 간 친구들도 있었는데 아마 이제 그들은 그걸 봤다는 사실을 기억 못하겠지?

당시는 지금처럼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 있어서 인생의 거의 모든 순간이 사진으로 남는 시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디지털 카메라는 있었다, 높은 벽을 가로로 횡단해서 이동한 그 동물의 족적을 사진으로 남겨서 가지고 오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그 사진 보면 다들 놀랄 텐데 ㅎㅎㅎ
(스리랑카 학생들에게 '우리 집에 고양이보다 큰 정체 불명의 생물이 종종 들어오는 것 같다'라고 하면 몇몇이 그 후보로 "몽구스"를 추천(?)했었다.) 



* 나머지 하나는...

http://mori-masa.blogspot.com/2018/03/blog-post_6.html

↑학생의 웃기는 시험 문제 답안 📷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