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녀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기죽지말라고 수십만원대의 책가방을 사준다는 기사를 보았다.
갑자기 나의 초딩 시절이 기억났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가로 길이가 더 긴 책가방이 보편적이다가
어느 시점부터 배낭 형태의 세로가 긴 가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도 1학년 때는 가로 길이가 긴 책가방을 메고 다니다가, 어슴푸레 4-5학년의 어느 시점에는 배낭 형태의 가방을 멘 것 같다. 아마 그 가방에는 그때 다니던 학교의 어느 단체(예를 들면 걸스카우트 같은?)의 이름이 써져있었지 않나 싶다.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6학년 시작과 함께 다른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예전 학교의 이름이 쓰여진 그 가방을 멜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1학년 때 샀던 그 가로 길이가 더 긴 옛 가방이었다.
올림픽도 이미 끝났는데, 올림픽을 기념하며 금메달-은메달-동메달이 붙어있었던 그 가방은 당시에도 이미 촌스러웠다. 하지만 사실 이전 5년 내내 멘 것이 아니어서 새것처럼 튼튼했던 걸로 기억한다. 부모님도 새로운 디자인으로 사줄까 하고 물어보셨지만 내가 아마 괜찮다고 했을 거다.
배낭 형태의 가방으로 유행이 바뀌어서, 이제는 한 반에도 나같은 형태의 구닥다리(?) 가방을 메는 학생은 드물었다. 60명에 진짜 한 두명 정도. 그 가방을 들 때, 나도 살짝 위축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그 오래 전 나의 자부심에 대한 기억도 20여년 만에 슬며시 살아났다. 내가 이런 촌스러운 가방을 메고 다니는 몇 안 되는 학생일지라도, 내가 이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인데 아무도 나를 무시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6년 묵은 가방을 메고 다녀도 괜찮았었다. 나에게도 그런 자부심이 넘치던 순간이 있었다. 사실 전학 오고 나서부터 6학년 때는 이성으로부터 별 주목을 못 받는 학생이 되었지만, 그 예전 학교에서 보낸 4-5학년 때는 나름 남학생에게도 꽤나 인기가 있었다. 그런 것도 이 어린이의 자부심을 떠받치고 있었겠지. 내가 촌스러운 가방 하나로 평가받을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무엇이든 남보다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된 요즘, 자존감은 바닥을 치려 하지만
그래도 '소비'를 통해 나의 부족함을 메워보려는 성향이 아직 안 생긴 것만은 다행이다.
그런데....
점점 돈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나 어릴 적보다 그악스럽게 더 상업화된 요즘,
내가 그랬다고 해서 내 자식에게까지 촌스러운 가방을 들려보낼 용기는 사실 없다. (나는 물론 자식이 없지만 ....)
"엄마는 공부를 잘 해서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썼다구! 너도 엄마처럼 당당해봐라~" 하면서 내 자식에게 유행을 따르지 말라고 하지는 않을 거다.
나는 나이고, 걔는 걔인데다가 이미 그 당시의 '국민'학교 분위기와는 수십 년의 시간차가 존재하니까.
나는 나이고, 걔는 걔인데다가 이미 그 당시의 '국민'학교 분위기와는 수십 년의 시간차가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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