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수염(맹장염) 수술을 스리랑카에서 했다.
(http://mori-masa.blogspot.kr/2015/10/appendectomy-in-sri-lanka.html)
그러나 수술 직전까지도 통증이 그다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합병원이 있는 콜롬보에서 놀고 있었던 날에 마침 첫 통증이 시작되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 못하고 오후에 내가 사는 수도권 근교도시로 그냥 돌아왔었다.
(그래봤자 집 <-> 병원은 차로 40분 정도 ?? 걸림)
저녁이 되자 아무래도 열도 나고 몸이 이상해서 다시 콜롬보에 나가 있기로 했다. 어쨌든 보통 때와는 증상이 달라서 병원에서 가까운 단원 집에라도 가 있으려고.
한국에 있는 의사 친구에게 전화해서 설명을 들으면서 맹장염일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남들이 말하던 대로 그렇게 많이 아프지는 않아서 반신반의하던 중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어떤 봉사단원이 꾀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사무소에서 혼나는 걸 봤기 때문에 병에 대한 확진도 없이 덥석 입원하기도 꺼려졌다.
그러면서도 일단은, 가방에 3박 4일 분량의 속옷과 화장품 등등을 챙겼다.
동시에 열 나는 몸과 아픈 배를 부여잡고 내가 한 일은......
거실 물걸레 청소였다 ㅎㅎ.
'혹시라도 입원하면 집에 돌아올 때는 다른 친구들이 같이 집에 와줄 텐데 집이 평소처럼 더러우면 큰일 나;;;;;'
고통보다 인간의 체면이 우선한다는 것을 실감한 사례 ㅋㅋ.
당시 내가 살던 드넓은 집은 스리랑카의 제1도시와 제2도시를 잇는 도로(Kandy Road)변에 있었고, 집주소도 캔디 로드였다. 한국으로 치자면 '경부고속도로 619번지' 쯤이라고 할까. `2-4차선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쉴새없는 차량 통행으로 늘 먼지가 날아들었고, 타일 바닥으로 된 거실은 물걸레 청소를 해도 하루면 더러워졌다.
어느새 스리랑카에서 가장 지저분한 집에 사는 단원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나는, 응급실에 가는 지경에도 망신을 피하기 위해 드넓은 거실 청소를 했다.
다음날 나는 맹장염 진단받은 뒤 수술을 받았고, 그 다음날 문병 온 같은 동네 봉사단원에게 우리집 열쇠를 주면서 고양이 밥 좀 챙겨주라고 했다. 그 단원은 집에 도착한 뒤 전화를 해줬다.
"고양이는 잘 있어요. 근데 이 집, 전에 몇 번 왔었지만 오늘이 제일 깨끗한데요???? "
아픈 와중에도 필사의 노력으로 청소를 한 게 통했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