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동동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약간 쌀쌀한 오늘 날씨에도 아주 짧은 바지를 입은 작고 귀여운 처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옆의 남자 (친구? 남자인 친구?)에게 뭔가를 보채는 걸 보았다.
귀여운 처자들의 특권이자 그 나이때만 할 수 있는 특권.
아앙 해줘 해줘. 해주면 안돼?

'저런 몸짓으로 원하는 걸 쟁취하는 사람들이 있지..'.라는 생각을 하던 동시에
저건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행동임을 깨달았다.
나는 '귀여운'은 안 되어도 '작은' 처자이기는 한데, 왜 한 번도 안 해보았을까.
오빠 ~ 오빠~ 하면서 선배에게 매달리는 그런 나의 신입생 시절은 어디로 스쳐지나 갔을까.
한 번 해보지도 못 한 채, 발을 동동거리는 아이들이 뜨악해보이는 나이로 훌러덩 넘어가 버렸다.

예전에 일주일 동안 나이가 열 살 이상 차이나는 여학생들이랑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 난 그들의 나이를 망각하고 '이렇게 뭘 모르는 게 많은 애들도 처음이다'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경악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나도 십여 년 전 그들 나이에는 몰랐던 것들이었다.


며칠 지나니 그 중 작고 귀여운 한 명의 행동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는데, 가장 어렸던 그 아이는 세상의 모든 유머를 처음 듣는 아이같았다.
예를 들자면"바보는 바다의 보배, 천재는 천하에 재수없는 놈~"식의 삭고 삭은 웃기지도 않은 고전 유머가 나와도, 발을 동동 구르며 웃다가 테이블 위로 엎어져 어깨를 들썩거렸다.

"천재는 천하에 재수없는 놈이래... 흐흐흐 아 어떡해...박팀장님...진짜 웃겨~~"

그걸 뜨악하게 바라보는 나와 다른 여자의 표정이 남자 어른 눈에 들어왔나 보다.
그 어른이 누군가에게 슬며시 하던 말을 난 들었다.

"쟤가 귀여워서 남자들 관심을 끄니까 다른 여자애들이 질투한다"고.

후후. 난 내가 열네 살 차이나는 여자아이와 질투 유발 대결을 할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남자 어르신의 생각은 달랐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질투해야 할 게 있었다면,
그 아이가 남자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게 아니라
그 아이는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난 그 나이 때 까닭없이 우울했고, 세상 다 산 사람 같았고, 뚱했다.
대학교 1학년 때"넌 할머니같이 말을 한다."라는 얘길 들었다.
그렇게 멍청하게 그 시간들을 보내고, 아이일 때 아이답지 못 했던 것에 대한 미련이 남아
이젠 어른이 되었는데 아이처럼 살고 싶어한다.
여전히 책임이 면제되는 대학교 1학년처럼 살고 싶어한다.

지금이야말로 발을 동동 구르며"나 좀 그냥 편하게 살게 해주면 안돼?"하고 그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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