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곳



2004년부터 2006년까지 TV 9시 뉴스팀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가장 마지막 부분에 "국제팀" 뉴스가 하나 들어가는데 (그날 세계에 큰 일이 없어도 그냥 하나는 꼭 넣는다) 어떻게든 뽑아내려다 보니, 가장 자주 나왔던 것은 "이라크 차량 폭탄 테러로 XX명 사망" 이 기사였다.

늘 나오는 기사라서 다들 둔감해질 정도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저렇게 자주 폭탄이 터지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지? 안타깝다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2007년, 다수인 불교계와 소수인 힌두교계가 내전 중이었던 스리랑카에서 2년을 살게 되었다. 어느 정도 주의를 듣고 가긴 했는데, 우리가 도착한지 하루 만에 실제로 큰 폭탄 테러가 터졌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번화가 옷가게에서 발생한 사고라서 사망자가 십여 명이나 나왔다.


랑카 정착 초기에는 빡빡한 여러 프로그램에 따라서 움직였었는데,
다음 행선지로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 옷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다.







누군가의 생사가 갈린 현장을 사진이나 찍고 있던 것은 무례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이 사건을 잊었겠지.
10년 전의 일이라서...당시 나도 긴장했었는지, 아니며 덤덤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2년을 지내면서 든 생각은 "아니 저렇게 폭탄이 자주 터지는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 라는 걱정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별 의식을 안 하게 되고, 어쩌면 그냥 운명에 맡기게 된다.

내가 자주 타고 다니던 154번 버스 정류장 옆에 그 버스에서 폭탄이 터져서 윗부분이 시커멓게 불탄 사진이 붙어있었지만, 그냥 덤덤하게 그 버스를 끝까지 이용했다.

내가 수도 근처 내 집을 떠나 (몰래) 다른 도시에 놀러갔었던 어떤 날에는 아주 허름한 형태의 전투기? 비행기? 한 대가 수도 상공을 날아서 긴장이 고조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원래 자기 근무지를 이탈하면 꼭 보고서를 내야 하는데, 대부분의 단원은 모두 무단 이탈을 했었다. 나는 범생이(?)라서 늘 보고서를 내고 근무지 이탈을 했었는데, 그때 거의 유일하게 보고없이 내 근무지를 비운 날이었다.  비상연락이 돌던 그때, 근무지 이탈이 걸릴까봐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이 도시 저 도시에서 폭탄이 터지면 걱정은 되지만, 한편으로는 다들 "야, 그 도시에서 터졌으면 당분간 거기서는 안 터져. 거기 놀러가도 안전해." 이러곤 했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엄마께서 영국에 가실 때도 런던 테러가 자주 났었지만, "엄마, 테러가 한 번 난 곳은 얼마간 발생하지 않아. 그냥 다녀오세요." 이랬었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을 금하거나, 유사 시 수도로 일시에 집결하는 훈련을 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모두 무사히 2년을 보냈고, 나의 임기 종료를 6개월 쯤 남겨두고 내전은 종식되었다. 그래서 마지막 6개월은 비교적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전세계에서 테러가 빈번한 요즘, 한때 나도 테러가 흔하고 큰 건물에 들어갈 때는 꼭 검문 검색 과정을 거쳐야 하는 나라에 살았었다는 게 갑자기 기억났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세계 사람들이 스리랑카 테러는 잘 몰랐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파리에서 테러가 나서 사람들 소셜 미디어가 "pray for Paris"로 물들었을 때, 그걸 비웃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시리아 같은 곳에서 매일 사람이 죽어도 "pray for Syria" 이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다들 파리 가지고 난리냐? 허세다. 그런 내용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인지도나 친밀도, 방문 경험....그런 것에 비추어 보면 프랑스와 시리아는 비교가 되지 않으니까.

지구 반대편에서 다시 많은 사람의 생사가 갈린 사건이 발생한 이 순간에도
옛 기억이나 들추고 있는 태평한 나.....
하지만 한국 밖의 누군가는, "저렇게 전쟁 위협이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


여성참정권 획득을 위해 다소 과격한 시위를 했었던 분들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저 분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여성 투표권의 도입이 더 늦어졌을 수도 있겠다. 여성의 '이성'을 억압하던 시대에 결연히 나선 그분들의 희생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서프러제트 여성 지도자가 나와서 "그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기에 우리는 이제 (과격)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고민이 되기는 했다. 저 논리는 결국 ISIS와도 같은 것이 아닌가. 물론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은 불특정 다수의 인명 피해는 없도록 하기 위해 조심했기에, ISIS와는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어떻게든 주의를 끌어 목적을 성취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목적은 결국 같은 것 아닐까.

아...복잡하다.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도 죄없는 사상자가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위의 스리랑카 테러 때에도 폭발 때문에 화상을 입은 아이가 너무 괴로워서 "엄마, 저를 이만 보내주세요" 했다는 기사를 분명히 읽은 기억이 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과 목적이 같지 않기에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어떻게 하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원만한 타협을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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