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부모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는 "부자" 부모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부자"가 될 가능성이 희박해서....'부모'가 되는 것도 그닥 관심이 없다.
무한한 사랑을 주고 믿어주는 부모, 자식에게 올바른 윤리관을 심어주는 부모..이런 건 기본 중의 기본이라 당연한 것이고, 그냥 나는 부자 부모가 되고 싶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부모.

내가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매우 세속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여져 그 후로는 언급을 잘 안 했다. 왜 '부자' 부모라고 하면, 자애로운 부모 - 도덕적으로 성숙한 부모라는 느낌은 쏙 뺀 채, 세속적인 부모라고만 받아들일까. 난 그거 다 해주고 싶은데. 이런저런 경험을 하는 기회를 열어주고 그 경험을 통해 성숙해서 잘 베푸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내 자식이 '나는 돈을 못 버니까 무능력한 사람' , ' 난 직업이 없으니 나쁜 인간' 이라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한 번 태어난 인생 -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나누며 살다가 갔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라서.




평소에도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학원으로 자녀 뱅뱅 돌리는 것 안 하고, 물적 욕망 없이 행복을 찾아 잘 사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요즘 부모들이 자녀에게 이것저것 보여주고 싶어 해외 여행에 데려갔더니 애들이 스마트폰에만 시선을 고정하고는 경치 한 번 안 봐서 속상해하더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친지 때문에 1년에 한 번씩 한 달 이상 유럽에 장기 체류를 하는 그 친구가 먼저 한 말이, 본인 경험상 "여행지에 가서 애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은 결국 돈을 더 쓰는 거더라" 이거였다. 아이들도 본인 의지가 아닌 부모들이 계획한 여행에 끌려와서 불만이 많은데... 결국 뭔가 그들에게도 솔깃한, 휘황찬란한 걸 해주면 아이들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수 밖에 없더라는 것. 나도 그말에 용기를 얻어 '나도 돈 잘 쓰는 부모가 되고 싶다'라고 했다. 그 친구는 아마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돈만 써서 결국 자식 인생 망치는' 그런 부모는 되고 싶지 않다-라는 내 속마음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내 자식은...돈을 잘 벌지 못 해도 그저 태어나서 뭔가 끊임없이 배우고 느끼고 탐구하면서 살 수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더라도 자녀와 부모의 매개체는 결국 '돈'인 것 같다. 뭔가 서글프지만.


예를 들어...
홀로 되신 한쪽 어머니는 아들 결혼 시에 재산을 많이 물려주고 '대를 이은' 그 아들이 남편의 빈 자리를 조금 채워주기를 기대한다. 늘 근교여행을 같이 떠나던 남편만큼은 안 되어도 아들도 한 번쯤은 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아들은 보통 어머니의 쓸쓸함에는 관심이 없다. (그건 대부분 딸의 몫) 그런데 아들 부부에게는 골프장에 데려가주는 재력의 장인 장모가 있다면...그들과는 주말에 종종 골프를 위한 근교 여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들에게 재산 다 내어준 빈털터리 엄마는 오매불망 아들이 언젠가 한 번 같이 놀러가주겠지...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주말에 아들의 발걸음은 골프연습장으로 향한다. 지금 현재 돈을 가진, 돈을 잘 쓰는 사람 주위에 사람이 모일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도 자식을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은 결국 부모가 돈을 더 쓰는 것일 수 밖에 없는지...


모든 경제적 난관을 초월한, 끈끈한 정으로 똘똘 뭉친 아름다운 인간 관계도 물론 많겠지만
인간이 만남을 가질 때는 필수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무엇을 먹든, 무엇을 하든....
나도 무직 생활이 길어지면서 친구와 자주 만나기가 많이 어려웠다. 내가 커피 등등 사기는 하지만, 친구에게 밥을 늘 얻어먹기도 민망한 일이라.
(그래서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많이 안 벌고 있기는 하다)

돈이 필수적 가치는 아니지만 인간 대 인간의 만남,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적어도 윤활유는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윤활유 이상일 수도 있고....

그래서 난
부자 부모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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