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안 미궁....




저번 달에 최고조의 스트레스를 제공했던 일...
잊혀지기 전에 경험담으로 남겨볼까 함 ㅎㅎㅎ

공식 국가 대항전(오후 3시)를 48시간 앞둔 시점.
이란팀에서 Jersey에 뭔가를 프린팅하고 싶단다...
3일 전 한국에 입국한 사람들이..... 진작 말하지,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당시 팀이 머무르던 호텔이 백화점과 붙어있었기에
이란 코치는 백화점 스포츠의류 매장 가서 프린팅 알아보라며 한가한 소리를 한다.👾







이 국대 셔츠를 들고 다니며 보여줬지만, 국내 백화점에서 (한국식 용어로) '마킹'해주는 데는 당연히 없고...
팀에서 이런 잡무를 담당하는 이란 매니저는 영어가 완벽치 않아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처음에는 선수 이름을 프린팅한다는 줄 알았다.
ㅠ.ㅠ

나중에 슬로베니아인 감독을 만나서야 Goldstone이라는 스폰서 이름 아래, 페르시아어로 된 문구를 추가로 넣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란 팀 매니저는 아주 쉬운 일인양 하루면 충분하고, 자기는 이미 한국에 여러 번 와봤으니 업체만 알려주면 동대문, 남대문 어디든 혼자서 갈 수 있다고 한다;;;;;  영어도 유창하지 않은 이란인이 한국인 업체 사장이랑 혼자 무슨 수로 소통해서 "페르시아어"를 인쇄하려고??




"하얀 저지에는 빨간색, 빨간 저지에는 하얀색 페르시아어만 넣으면 된다구~~ 쉬워~~"


이것은 이란팀이 사전에 준비해왔어야 할 상황이고, 주최국 한국에게는 책임이 없으니 사실 무시해도 이란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전혀 경험이 없는 문외한이었고,
당시에 일을 도와주시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 대리님이 있었는데
아마도 셔츠 프린팅 의뢰 많이 해봤을 그분의 도움으로 일단 일은 진행하게 되었다.


.ai 파일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는데, 이제 시합은 42시간 내로 임박했는데
메일 좀 보내보라고 해도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이란 매니저들... 그들은 ai파일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나도 ai 파일이 뭔지는 모른다 ㅎㅎ)
저녁식사 시간이었던 8시 반부터 재촉을 했는데, 밤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한국분에게 파일 꾸러미를 보냈고, 작업 가능한 ai파일을 확인했다는 답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인 중에 아랍문자 - 페르시아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이 까만 문자를 빨간색, 하얀색으로 바꿔주면 되냐고 하니 이 방향이 아니라고 한다.



Mr.Teimour의 필체



이 방향이라고....직접 써서 보여줌.
위의 파일을 좌우 반전, 혹은 뒤집어서 찍어야 맞다는 것은 알겠는데...
중간 단계가 너무 많다보니 소통이 안 된다.
이란인 →  영->한통역 →  스포츠매니지먼트 대리 →  마킹 업체 → 스포츠매니지먼트 대리→  한->영통역 → 이란팀.
정말 한국인 페르시아어 구사자를 하루만이라도 어디서 빌려오고(?) 싶었다.


이제야 짐작하게 된 거지만
내가 톡으로 한국 대리에게 "이게 원하는 방향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찍어서 보낸 문자는
"이런 방식을 원하지 않는다"로 해석이 된 것 같았다.
(영어도 원활히 안 통해서 괴로운데, 한국어 배달 사고까지 ㅎㅎ)

일러스트 프로그램 같은 데에서 좌우만 뒤집어주면 되는 일이었는데
오해가 얽히면서 "그러면 제대로 된 파일 보내라" "잘 써서 보내주면 최대한 비슷하게 그려주겠다" 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14개국이 모여서 대회를 하는 마당에 이란팀의 민원만을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라
스포츠 회사 대리가 다른 일을 해가면서 틈틈이 일을 진척시켰다.
아침에 파일 반전을 두고 여러 차례 톡이 오고간지 7시간 만에야 원하는 방향과 색상, 크기를 얻을 수 있었다 ;;;; 그때 이미 경기 시간은 24시간 내로 임박.

최종적으로 이런 식으로 넣으면 되겠냐고 업체 측에서 아래와 같은 사진 파일이 오니, 그제야 이란팀은 안심하는 눈치. 준비도 안 해와서는 참 당당하게도 요구한다 ㅎㅎㅎ







일단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이 이곳 수원시가 익숙치가 않고, 아무 업체에나 순서를 무시하고 빨리 해달라고 밀어넣을 수는 없는 일이라 대리님이 아는 곳을 이용해서 프린팅을 하다 보니 하남까지 퀵 배송을 보내게 되었다.

경기 시작 20시간 정도 앞두고 한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 셔츠 80벌 모두를 다른 도시로 보내려니, 나에게 밀려오는 스트레스도 커졌다. '경기 시작 시간은 임박하는데 유니폼이 없으면?? 몰수패?! 기권패?!'


이것을 진행하는 40여 시간 동안 잠들기가 힘들고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내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달했지만
다행히 유니폼은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문제없이 경기장으로 곧바로 배달되었다.
이 업체에선... 글자 좌우가 뒤집혀 있어도 뒤집혔는지 못 알아보는 문자 프린팅을 할 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런지...😆

나흘 정도 트레이닝복만 입고 후줄근하게 연습하는 것만 보다가
첫 경기.... 처음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이 차례로 도열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그들은 누군가 그 셔츠를 위해 이렇게 맘고생을 했다는 것을 모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작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지인들에게 당시에 이 상황을 하소연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한 셔츠가 바로 이거라고 증거 사진을 남기기 위해 처음으로 모바일폰으로 선수들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나름 자기 나라에서는 국가대표 스타 선수(왕자병?)들일 텐데, 그동안 자기들 보고도 사진 한 번 찍지 않던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을 수도? ㅎㅎ






이 사진 말고 바로 다음에 찍은 것을 보면, 사진찍기 좋아하는 선수 몇몇이 내 쪽을 보고 베시시 웃음을 보내고 있다.

속으로 생각했다. '너희들 찍는 거 아니고 유니폼 찍고 있거든?' 다들 아재처럼 보여도 나보다 많이 어린 '애'들이다. ㅎㅎ



 Goldstone은 어디에???


나중에 경기 화면 보니, 심지어 본국에서 영어로 스폰서 이름 새겨오지 않은 골키퍼 유니폼에도 한국에서 꼼꼼하게 페르시아어 광고 문구 다 넣어줬구만;;;;;


그래도 또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것 또한 추억이고
이 사진 외에는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아서
그래도 얼마간 동고동락(???)했던 선수들 사진이 거의 없다.



페르시안 미궁 속 이 고난은....
사진을 원래 잘 찍지 않는 나에게
티셔츠 사진이라도 찍을 겸 그래도 사진 좀 남겨놓으라는 신의 계시였나??
위에 나온 사진들도 모두 메신저로 바쁘게 정보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남겨진 것이다.📱📸📲


%결국지나고나면다추억
%두 달 정도 뒤에 저 페르시아어 내용은 لاستیک برتر "우월한 타이어"라는 걸 알게 됨 🚜 (Goldstone이 타이어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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