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들 무리에 섞여 통역으로 일할 때였다.
나를 주로 괴롭히던 한 아저씨A 등쌀에 넌더리가 날 지경.
팀워크가 중요한 일이었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팀보다 자기 아들 선물 사는 일에 더 관심 있던 그 아저씨A. 익일 배송도 잘만 되던 택배가 그때따라 사흘이나 뒤에 오는 바람에, 고가의 그 택배 물품을 얼마나 신경써야 했는지.
그 팀의 대표는 늘 나보고 이 아저씨A는 말이 너무 많으니 그 말 다 들을 필요 없다고 중간에서 자르곤 했다.
그 날도 이 아저씨A는 이 행사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의 명단을 요구해서, 내가 구해다가 telegram으로 보내줬다.
잠시 뒤,
늘 차분하고 말을 별로 하지 않던 아저씨B가 나에게 갑자기 자기도 참가자 명단을 달라고 한다.
"그거 A에게 이미 줬어."
"그래도 나에게 보내줘. 나의 전화번호는...."
나는 뭔가 이들 사이에 이상 기류를 감지하고, 그냥 아저씨B의 번호도 텔레그램에 등록하고 그에게도 명단을 보내줬다. B옆 10m 이내에 있었던 A에게 말하고 자기들끼리 텔레그램 메시지 받는 것이 나에게 번호 알려주고 새로 친구 등록하는 것보다 덜 번거롭고 시간이 훨씬 덜 걸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A 대신에 나를 찾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둘이 같은 팀이고 서로 금방 주고 받으면 될 텐데, 굳이 나에게 다시 부탁하는 것은 둘 사이가 안 좋다는 증거?? 서로 말도 하기 싫다?? 맨날 팀 대표도 아저씨A 말 듣지 말라는 걸 보면 A는 팀에서 왕따인가봐...'
나는 나름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팀이긴 하지만 내가 뭔가 모르는 게 그 밑에 흐르고 있겠지.
내가 며칠째 A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정적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저씨 B에게서 텔레그램 메시지가 왔다.
"미안하지만, 은행에 좀 같이 가 줄 수 있겠어? 나 외국에 송금할 일이 있어."
아저씨B의 첫 부탁이었기 때문에 그냥 흔쾌히 해주겠다고 했다.
아저씨A와 달리 아저씨B는 상당히 온화하고 미안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거주 등록을 했거나 직장이 있는 외국인이 아닌, 그저 한국에 방문 중인 사람이 한국 은행에서 해외송금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결국 은행에 이틀 동안 가야했지만 아저씨B는 매우 미안해하며 나에게 고마워했다. (아저씨A는 감사 인사도 잘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 일을 했을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며칠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아저씨A 왕따설'이라는 내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잘 생각해보니, '참가자 명단 추가 요구'는 팀내 불화 때문이 아닌, 내 번호를 얻기 위한 아저씨B의 큰그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저씨B의 출신국가는 해외 송금이 매우 어려운 나라였고, 아저씨B 역시 팀워크보다는 '한국에 온 김에 송금'이라는 목적 달성때문에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런저런 통역을 가장한 잡무가 하기 싫었기 때문에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아저씨B는 나와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참가자 명단"을 빌미로 나와 텔레그램 연결에 성공했다는 게 더 맞는 판단인 것 같다. 게다가 참가자 명단이 그렇게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끔
눈치를 잘못 채고, 인과 관계를 함부로 판단하면
잘못된 결론에 이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다 숨은 이유가 있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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