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연대기



나는 카카오톡을 2011년에 시작했으니, 이제 8년차다.
그동안 나의 신변에는 변화가 하나도 없었는데,
지인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변천사를 보면 그들의 인생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카카오톡 사진을 통해 그 사람이 인생의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어느날 연인들과 함께 한 사진이 등장하다가, 갑자기 턱시도와 웨딩 드레스 또는 한복을 입은 사진으로 바뀌면 청첩장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결혼 초기 여기저기 놀러다니며 부부 둘이 찍은 사진이 등장하다가, 어느날 D-29 같은 숫자와 함께 초음파/만삭 사진이 등장하고, 그 다음 수년간은 사진이 98% 통일된다. 자녀 사진.

여자 지인의 카톡 대화명은 자녀의 성장에 따라 자녀의 등교가 시작되면 하나씩 둘씩 바뀌기 시작한다."길동맘"  "신사임당(율곡맘)". 둘째도 등교가 시작 되면 이름이 추가된다. "길동-귀동맘".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서의 구분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육아는 엄마 담당이기에, 남자 지인의 대화명이 "이원수(율곡파)" "길동-귀동파파"  로 바뀌는 것은 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받은 상장 사진이나 영어유치원 다니는 자녀가 영어로 삐뚤빼뚤 쓴 편지가 등장한다. 아직 내 친구의 자녀들은 중학생 정도인 것이 최고령(?)이지만 언젠가 자녀가 서울대라도 진학하면 서울대 정문 사진을 떡 하니 본인 프로필 사진에 넣는 부모도 있다고 들었다 😂


너무 예쁜 내 새끼, 내 아이의 사진으로 채우기도 바쁜 카톡 프로필 사진이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도 부부 사진을 본인 프로필 사진에 넣는 부부가 있을까 궁금하다.
나이가 드는 것을 거스를 수 없듯이, 카톡 프로필 사진의 변화도 거스를 수가 없었다. 모든 친구들이 연인 -> 부부 -> 자녀 사진 순서로 이동.
가끔 가족사진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가족 모두 같이 "해외"여행을 다녀왔을 때이다. :) 신기하게도 국내여행을 다녀오면 여전히 여행지를 배경으로 한 자녀 사진이 프로필이지만, 해외여행을 가면 얼마동안이나마 배우자의 얼굴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보통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나에게 소중했던 순간, 남들이 좀 봐주었으면 좋겠는 것들, 이것이 '나'임을 나타내는 사진을 등록하게 된다. 자식은 내 몸에서 나온 '분신'이기에 자녀의 사진이 곧 내 사진이지만, 험난한 파고를 같이 넘고 볼꼴 못볼꼴 다 보며 십여 년을 살아낸 뒤에도 여전히 내 남편 내 아내의 얼굴이 가장 자랑하고픈 대상이라면, 그건 진정 '낭만적'인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같이 경험없는 미혼자 입장에서는 (순진하긴 ^^). 

내 자식은 내 몸에서 나온 내 사람이기에 어떤 짓을 해도 결국은 이뻐할 수 밖에 없다. 언제나 자랑하고픈 또다른 나. 그 존재의 결점까지도 나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고 언제나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존재.

하지만 이질적이었던 한 인간과 같이 살면서 오랜 세월 단점을 보고 난 뒤에도 그 배우자를 내 사람(such as "Call me by your name, I'll call you by mine") 으로 기꺼이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행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녀와의 만남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긴다. "아무 것도 아닌 나에게 이렇게 소중한 자식이 태어나서 그 존재가 나를 의지하고 이렇게 무한한 사랑을 준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이것 역시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이다.


친구들 목록을 주르륵 살펴보니
한창 육아중인데도 자녀 사진이 아니라 신혼 때처럼 부부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쓰는 또래 친구는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남편/아내를 포함한 "가족"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만든 딱 두 명이 눈에 띈다.
그런데 그 두 명은 각각 프랑스인, 인도네시아인과 결혼한 친구라는 점.

프랑스인과 결혼한 친구가, 자녀 중심인 한국 가정보다는 프랑스는 좀 더 부부 중심의 가족 관계라고 하더니 (두 돌 안 된 아기도 부모와 다른 방에 재우던 그 친구집에 직접 가본 적 있다) 실제로 그게 프로필 사진에도 나타나는 경우였나보다.


("관찰"한 소감을 적은 것이지, "가치 판단" 느낌은 안 주려고 노력했는데
혹시라도 자녀 사진이 카톡 프로필이신 분이 읽었다가 기분 나빠질 소지가 있는 글인지 걱정된다. 이럴 때면 그래도 두어 명의 친구가 솔직한 감상을 적은 댓글을 달아주던 싸이월드 블로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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