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잘 알거나 응원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실제로 경기를 본 적이 있는 선수라서 몇 글자 남긴다.
2014년 7월, 대회 막판으로 흐르면서 상대적으로 입장이 널널해진 곳을 찾아 이동하다가 보게 된 경기, 윔블던 여자 복식 8강전.
좌측 선수가 로베르타 빈치, 우측 선수가 사라 에라니. 모두 이탈리아 선수
2012년 롤랑 가로스 결승전 진출자인 사라 에라니가 더 유명했기 때문에
사실 사진 찍을 당시에는 사실 로베르타 빈치는 잘 몰랐다.
이 경기 승리 후 계속 승승장구, 이해 윔블던 복식 우승으로 이 두 명은 복식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로베르타 빈치가 단식으로 유명해진 것은 2015년 US open.
당시 서리나 윌리엄스가 한 해가 4개 메이저 대회 모두 우승하는 '캘린더' 그랜드 슬램을 노리고 있었고, 서리나는 US open 강자였기 때문에 캘린더 슬램은 유력해보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랭킹 40위권의 로베르타 빈치가 준결승에서 윌리엄스를 꺾고 메이저 결승전에 생애 최초로 진출했다. 정말 당시에 누구도 상상 못했던 대이변이었다.
여자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대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테니스 경기에는 상성이란 것이 있어서...
빈치는 결승전에서 만난 한 살 위 이탈리아 언니 플라비아 펜네타에게 패배.
메이저 대회 준우승을 최고의 커리어로 남긴 채 2018년 35세 나이로 은퇴하게 되었다.
어쩌면...만약에....그랬다면..... 이런 가정은 모두 무의미하지만
플라비아 펜네타는 서리나 윌리엄스에게 매우 약해서 7전 7패의 상대전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빈치가 윌리엄스를 꺾어준 덕분에 상대적으로 쉬워진 결승전에서 펜네타가 빈치를 꺾고 생애 유일의 메이저 트로피를 손에 넣게 되었다. 그리고는 깔끔하게 트로피 받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은퇴 선언.
현재는 이탈리아 테니스 선수와 결혼해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20살에 첫 우승을 하는 게 아니라, 산전수전을 다 겪은 뒤 30대 전후해서 메이저 첫 우승을 하게 되면 곧바로 은퇴를 하는 여자 선수가 종종 있었다. 각종 부상으로 선수 생활이 고생스럽고 전세계 투어로 정착이 힘든데, 늦은 나이에 정점에 오르게 되면 아마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날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정상에서 은퇴를 택하는 것 같다. 32세에 첫 메이저 결승에 올랐던 빈치가 그때 우승을 했더라면 일찍 은퇴한 것은 빈치이고 오히려 펜네타가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을지도....
위쪽에 더 작게 나온 선수가 플라비아 펜네타, 통산 582승을 기록하고 은퇴한 훌륭한 선수이다. |
테니스 대회를 보다 보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선수 한 명이 파죽지세로 8강 4강에서 강적들을 다 정리하고 올라와서
정작 결승에서는 패배하는....
토너먼트 대회의 어떤 특징이기도 하다. 강적이 몰려있는 draw에 속해서 개고생(?)하며 무적의 포스를 보이다가
상대편 draw에서 올라온 선수랑 붙어보니 그냥 싱겁게 패하기도 하는...
강적들을 상대하느라 힘을 많이 쓰기 때문에 결승전이 오히려 무기력하게 끝나버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역사에는 우승자의 이름만 남는다.
이래서 조 편성 운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런 안타까움 때문에 내가 빈치를 더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본인은 후회없이 아름답게 은퇴식을 치렀다.
은퇴 헌정 영상에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에서 착안한
"veni vidi Vinci"를 남기고.
이탈리아어로 우승자는 "VINCItore"이다. |
저 멀리 보이는 경기중인 선수 이름이 새겨진 전광판과 파란 하늘 :)
관람 당시 하도 많은 경기가 벌어져, 내가 무슨 경기를 보았는지 기억하기 위해 전광판 사진을 찍어놓곤 했다.
내가 이렇게 상대편 관중석을 찍어서 사진이 남았으면, 저쪽 반대편 누군가가 찍은 사진 속에도 내가 남아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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