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무서운(?) 곳




2012년 태국에서 열린 어떤 행사에 자원 봉사를 하러 간 적 있다.

나는 어떤 분야에서 "오전"을 맡았고, 다른 한 분은 "오후"를 맡았다. 오후를 맡은 태국 여자분은 나와 교대를 하러 오는 분이라, 잠깐 잠깐 마주칠 일 밖에 없었지만 상당히 독특한 인상을 받았다. 아시아 억양 없이 영어는 완벽히 구사하는 분 이었고, 그 영어 자신감으로 인해 말이 많았고, 뭐랄까....공주병이 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일하던 방에는 포르투갈, 영국, 아일랜드, 이탈리아, 프랑스...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분들이 수근대는 이야기를 좀 들어봐도 그 분들도 그 여자분을 독특하게 여기는 듯 했다.

그 여자분의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일주일 동안 보통 10여 분쯤 마주치는 것이 전부이니 (그래도 어쩌다 밥은 한 번 같이 먹은 적 있군) 별다른 교류없이, 이메일 주소 같은 것도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태국을 다녀온지도 약간 지나서... 그래도 대체 그 분이 뭐하는 분일까 궁금해져서 페이스북에서 이름을 찾아봤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본명이 아니라 애칭같은 특이한 이름을 써서....

아이패드로 슥슥....손가락으로 밀며 페이지를 염탐했다. 공주 왕관을 쓰고 찍은 사진과 여러 셀피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보다 공주병이 더 심하신 분이었구나...' 하는 찰나에 쓰윽... 나도 모르게 "friend request"부분에 터치가 되었다. 허걱!! 이런 일도 있구나... ⇡ 순식간에 친구 신청이 되었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이에, 그분은 페북에 상주하고 있는지 금방 친구 수락을 해줬다.
허거거걱.
이렇게 친구가 되기도 하는구나. 손가락이 미끄러져 친구 신청....

그렇게 어쩌다가 그 분과 친구가 되었고, 서로 어색해서 쪽지를 주고 받는다거나 인사를 나누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본인이 연락처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사람이, 이름으로 검색해서 자기를 찾아서 "친구 신청"씩이나 했으니...그 분의 공주병은 더 심해졌겠지 싶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가끔 '어? 이 사람이 친구 신청 왜 했지?' 하는 관계의 사람이 친구 신청을 해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사람도 손가락이 미끄려졌나 보다'




"의문의 친구 신청" 사건을 겪은 후, 터치식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하는 일은 좀 겁이 나게 되었다. 그런 이유들을 포함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데스크탑으로 페이스북을 즐겨하는 편이다. 데스크탑 페이스북 화면에 우측에는 현재 접속 중인 사람들 명단이 우르르 뜬다.

한때는 그 사람들이 어디에 "like"를 눌렀는지까지 실시간으로 다 떴으나, 너무 사생활이 침해가 되어 항의가 많았는지 이제 그런 건 없다.

어제 데스크탑 화면 우측에 위치한 스크롤바를 내리다가, 커서가 경로를 이탈하면서 어떤 사람의 "접속중" 표시에 마우스 커서가 갖다붙게 되었다. 조금만 더 실수로 세게 터치를 했으면 그 상대방의 채팅창에 안부 인사를 보내는 👋waving at you까지 터치될 뻔 했다.
그러면 상대방의 채팅창이 열리고 나의 안부 인사👋가 보내지는 것이다.

다행히 👋까지는 터치는 안 되고 채팅창만 열렸다. 아무 일도 없음. 깜짝 놀랐다가 채팅창을 닫았다.
채팅창이 그냥 우발적인 마우스 터치로 열리는 일은 몇 번 겪은 일이라, 놀랄 것까지는 없었지만 👋 waving이 보내졌을까봐 철렁했다. 그 사람도 외국 친구였는데, 이제 연락할 일 없는 서먹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평소에 친한 사이였으면 채팅창이 열려도 말 걸면 되니까 걱정할 게 없다. 하지만 이제 멀어진 관계에선 실수로 👋이 보내진 다음에는 상대방도 그것을 보게 되는데, 대체 뭐라고 떠들어야 내가 그걸 보낸 게 궁색하지 않은지 떠오르지도 않는다. ㅎㅎㅎ 심지어 모국어도 아닌 언어로....😅

말그대로 '간담이 서늘'. 데스크탑도 조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구나.

어휴, 또 한 번 철렁 하고 나니
페이스북은 진정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
끊을 수도, 이어갈 수도 없는 인간 관계들이 미적미적 이어져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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