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흘러흘러




일명 '소셜 미디어'....
내가 가장 분주한 시절을 보낸 곳은 싸이월드 블로그가 아니었을까 한다.

2008년경 부터 아무 생각없이 끄적였는데
2013-2014년쯤부터 내 관심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기 블로그가 되었고
모르는 사람도 찾아와 댓글을 달아주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인터넷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네이버]인데
내가 관심있어서 글을 꾸준히 쓰던 주제에 대해서는, 네이버에 그 단어를 치면
내 블로그가 가장 먼저 검색되어 나왔었다. 내 블로그는 네이버 블로그가 아닌 싸이월드 블로그인데도...

그래서 그 단어가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는 날이면 어떤 때는 수천 명 방문자가 찾아오기도 했던 블로그.
나중에는 아무 성의없이 끼적거린 글인데도, 자연스레 검색 첫 페이지에 나와서 천여 명이 읽고 가는 바람에 조금은 글 쓰기가 부담스럽기까지 했던 블로그.


2015년 가을,
십여 년 만에 외국에서 친구를 만났다. 내 생활을 궁금해 하는.
그 친구가 성공적인 직업을 갖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는 이뤄놓은 게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친구 "매일 밤 늦게 잔다고? 대체 그 늦게까지 뭘 하는 거야?"
나    "........"


그때 입 속에서 꾸물꾸물 "야, 네이버에 XX(국제적으로 유명한 일임) 한 번 쳐봐. 내 블로그가 제일 먼저 나올테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블로그의 공개는 내 생활상의 공개이기도 해서 꺼려졌다.
그 친구가 말로만 내 생활을 궁금해했을 뿐, 내 블로그를 안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며칠 후, 그 친구에게 네이버에 XX 검색해보라고 말 안 하길 진짜 잘했다고 생각하게 된 일이 생겼다.


싸이월드 블로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싸이월드의 개편으로 '싸이홈'이라는 이름으로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이상한 형태로 통합되었고, 네이버 검색에서는 사라지게 되었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
친구에게 차마 말을 하진 못했지만, 속으로는 '그나마 내가 7년간 한 일 중에 뭔가 꾸준히 해서 티가 나는 일은 블로그 뿐이었구나.' 라고 생각한 순간에, 그 결과물은 사라졌다. 매일 3-400명이 찾아오던 블로그엔 싸이월드 개편 이후로 3,4명의 방문자가 찾아왔다.



방문자가 줄어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몇 주간 싸이월드에 접속 자체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속내를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심심? 초조? 우울?해졌다.

그래서 결국 구글 블로그로 이사를 감행했다.
이곳은 이제나 저제나 조용하다.
네이버는 구글 블로그를 등한시해서 네이버를 통해 방문자가 유입되는 일도 드물고
한국인은 구글 검색 자체를 별로 안 하기 때문에 구글을 통한 유입도 드물다.

한때 나의 싸이 블로그에 댓글을 많이 달아주는 애독자였던 친구에게 이곳 구글 블로그를 만들었을 당시에 주소를 알려주면서, 그 친구가 그때처럼 댓글을 많이 달아주고,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느낌을 갖게 되길 바랐지만
그 친구는 싸이월드에도 발길을 끊었고 여기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3년 전 이맘때, 싸이홈이라는 데에 끄적여 놓은 글을 보면, 바뀐 싸이도 낯설고 새로 옮긴 구글도 낯설다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엄청 심적으로 외로웠었지.


나는 아직도 싸이홈도 하고, 구글 블로그도 하고, 페이스북도 한다.
한국 사람 사이에서는 인스터그램이 대세라서, 그냥 인스터그램에만 주로 일상을 소개하고 다른 매체에는 똑같은 내용+인스터그램 주소만 그대로 링크해서 올려놓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싸이월드, 구글 블로그, 페이스북에 각각 다른 내용을 쓴다.
뭐 일상이 거창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어느새 각각 다른 내용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3년 전에 그렇게 낯설었던 구글 블로그가 이제 가장 편해져서
가장 마음 속 이야기는 여기에 쓰게 된다는 것을.
어쩌면 절친들이 찾아오지 않아서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친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 더 솔직할 때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싸이월드는 그냥....미련이 남아서 예의처럼, 습관처럼, 끼적이는 내용들.
그리고 페이스북에는 어쩌면 사회 생활하는 내 모습이 남아있다. 페이스북 친구는 대부분이 스리랑카 학생들이라, 나는 거기서 '착했던 그 선생님'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싸이월드는 딴 생각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내가 혼자 좋아하고 살다가 한 방에 걷어차이고 이혼한 전남편 같고,
구글 블로그는 혼자 남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다가 결국 내 옆을 지키게 된 새 남자친구,
페이스북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사귀는 친구 느낌이다.

아픔을 남기고(?) 헤어졌지만 북적북적 부대끼던 옛 시절을 못 잊어, 여전히 서로 예의차리고 안부 묻는 ex남편 싸이월드.
슬슬 정은 붙어 가지만, 친구가 너무 없어 인간 관계의 폭이 좁은 새 남자친구 구글 블로그.
남에게 소개하고 싶기도, 숨겨놓고 싶기도 한 남자친구.

그리고, 함께 있으면 뭔가 자연스런 내 모습이 나오면서도 동시에 가식적인 내 모습 연출도 해야 하는 것 같아서 갸우뚱하게 되는 international한 친구 페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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