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모든 것이
좋아하는 것과 그냥 그런 것, 싫어하는 것 등으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
주위에 어떤 물체이든, 사람이든, 아주 크게 나누면
'좋아하는 것'과 '안 보이는 것'으로 나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싫어하는 것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흔히들, 좋아하다의 반대말은 싫어하다가 아닌 무관심 無關心이라고들 말한다.
원래 여기서 '關관'은 관계의 관인데... 내가 생각하는 무관심의 '관'은 觀- 볼 '관'이라고 할까.
觀心이라는 단어도 존재해서, 그 뜻은 [마음의 본성을 살핌]이라고 하는데, 無觀心....마음(중심)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생각도 없는.....
청소를 등한시하는 사람은 동거하는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기 마련인데,
그 사람들의 행동의 이유는 게으름 + 그냥 너저분한 살림들이 "안 보이는 것"이라고 판단하면 편하다.
그런 사람들과는 좀 치우고 살라고 몇 년을 싸워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보이는 너저분함이 그냥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 더러움이 불편하지가 않은 것이다. 인간을 시력 좋아지라고 들들 볶을 수 없듯이, 태생적으로 안 보이는 걸 좀 보라고 들들 볶을 수도 없다. 지저분함이 안 보이는데 뭘 치우란 말인지. 그들과 싸우지 말고 포기해야 편하다.
타인이 나를 싫어해서 했던 행동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 중에
그냥 내가 "안 보여서", 나의 고통이 "안 보여서" 했던 행동도 많을 것이다.
어떤 여자분의 글을 보았다.
본인에게 오빠의 자녀와 개월수가 같은 한 돌짜리 아기가 있고 친정 가족모임을 갖는데,
친정엄마가 자기 아이(외손주)가 옆에 있는데도 한 번도 안아주지 않고 오매불망 입구 쪽 앉아서 아들의 도착만 기다리더니, 오빠의 아이(친손주)가 도착하자 곧장 품에 안고 내려놓지 않더라는 내용이었다.
딸 되신 분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이해가 간다. 딸이 속상해서 직접 전화해서 따졌더니, 엄마로부터 "친손주랑 외손주가 같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우연히 글을 보았을 뿐 내가 이 사람들을 잘 모르긴 하지만, 나는 그냥.... 이 친정어머니는 외손주가 "안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손주 만날 생각에 설레어.
외손주가 몸서리처지게 "싫고"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외손주가 옆에 있어도 다른 손주 생각하느라 "안 보여서" 한 번 안아주지도 않고 친손주만을 기다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아프지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처럼 안 보이는 것을 노력해서라도 보아달라고 투정할 수는 없다.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만 보이고, 그것의 단점은 안 보이고 그런 과정은 참 신기하다.
모든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좋아함'도 그렇고, '사랑'의 속성이기도 하다)
나는 솔직히 '종교'에도 이런 속성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것들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참 많다.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그래서 뭔가를 좋아한다, 좋아하기로 결정한다...라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이다.
삶의 태도 대부분을 좌우한다.
어떤 영화를 본 이후로... http://mori-masa.blogspot.com/2018/06/do-you.html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뭔가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가끔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보다 그 사람이 나를 한 사람으로 '좋아'해주는 게 더 고맙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냥 어떤 의무감에서 나온 사랑을 받기보다는, 그냥 정말 좋아해주면 좋겠다.
친정엄마가 자기 아이(외손주)가 옆에 있는데도 한 번도 안아주지 않고 오매불망 입구 쪽 앉아서 아들의 도착만 기다리더니, 오빠의 아이(친손주)가 도착하자 곧장 품에 안고 내려놓지 않더라는 내용이었다.
딸 되신 분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이해가 간다. 딸이 속상해서 직접 전화해서 따졌더니, 엄마로부터 "친손주랑 외손주가 같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우연히 글을 보았을 뿐 내가 이 사람들을 잘 모르긴 하지만, 나는 그냥.... 이 친정어머니는 외손주가 "안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손주 만날 생각에 설레어.
외손주가 몸서리처지게 "싫고"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외손주가 옆에 있어도 다른 손주 생각하느라 "안 보여서" 한 번 안아주지도 않고 친손주만을 기다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아프지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처럼 안 보이는 것을 노력해서라도 보아달라고 투정할 수는 없다.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만 보이고, 그것의 단점은 안 보이고 그런 과정은 참 신기하다.
모든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좋아함'도 그렇고, '사랑'의 속성이기도 하다)
나는 솔직히 '종교'에도 이런 속성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것들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참 많다.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그래서 뭔가를 좋아한다, 좋아하기로 결정한다...라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이다.
삶의 태도 대부분을 좌우한다.
어떤 영화를 본 이후로... http://mori-masa.blogspot.com/2018/06/do-you.html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뭔가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가끔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보다 그 사람이 나를 한 사람으로 '좋아'해주는 게 더 고맙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냥 어떤 의무감에서 나온 사랑을 받기보다는, 그냥 정말 좋아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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