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남겨놓지 않았다면 잊었을 이름들, 경험들 - 3



16 Nov.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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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 훈련 과정 도중 여주에 있는 오순절 평화의 집에 봉사실습을 갔다.
지체장애아동 여러 명이 모여있는 곳.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이곳이 그나마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한다는 말은 한눈에 보고 믿을 수 있었다.

그날은 그 곳의 아동들이 건강검진차 X-ray를 찍으러 바깥 병원에 나가는 날이었다.

장애등급에 따라 나뉘어진 아이들 방에 들어가서 한 명씩 데리고 나와서 책임지고 버스로 이동하고 사진까지 찍은 다음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하루 이런 봉사에 심한 회의가 들었고,
한 번도 이런 경험이 없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이들을 감싸안고 내려간다는게, 나의 가식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저 보여주기 위한 봉사.

내가 처음에 맡은 '대남'이라는 아이. 
안아주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내내 안고 있어야 했는데, 아마도 상체는 거의 나만하게 큰 아이인 것 같았다. (나는 상체가 유달리 말라서...) 나중에 팔에 근육통이 생겼을 정도로 무거운 대남이를 내려놓으면, 모든 손잡이가 달린 문을 열려고 뛰어가서 정말 불안불안했다.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려 했던 그 아이를 돌려보내고 다음에 맡은 아이는 덩치가 더 컸다. 제대로 자랐으면 거의 나만했을 것 같은 미란이라는 아이. 

제대로 몸을 못 가눠서 처음에 봤을 때도 눕혀진 상태였는데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두 좌석을 차지하고 누운 상태로 내 무릎을 베고 갔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고 웃었다.
장난을 걸면 너무나 좋아라했다. 
내가 웃으면 따라 웃었다. 내가 내는 소리를 따라 내려 노력했다.
가식을 떨지 않기 위해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버스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나즈막히 불러주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우연의 일치인지, 정말 따라하는 건지 미란이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무슨 이유로 이 아이는 평생을 이렇게 보내야만 하는 걸까. 

그뒤 미란이와 어린 아기들이 있는 방에 남게 되었다. 미란이는 이름을 불러주고 장난을 걸면 웃는데, 매일매일 봉사자들이 있는게 아닐 것이므로 대부분의 나날을 외롭게 있을 게 분명했다. 안타까웠다.

그래도 그렇게 돌아갔으면 이날 하루는 내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내가 이날을 기억하게 만든 아이는 '초희'이다.

아마도 다운증후군이라 버려졌을 이 아기는 너무 작고 얌전했다. 어느 순간 나에게 우유병이 들려지고 이 아기에게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너무나 얌전하게 우유를 잘 받아 마시던 이 아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순간 느꼈다. 아기에게는 꾸준히 눈을 맞춰줄 '모성'이 필요하구나...하고...
이렇게 꾸준히 눈을 맞춰주고, 일관성을 제공하고 애착을 제공할 상대가 없으니 이 아이는 어떻게 자라날 것인가. 매일매일 바뀌는 '엄마'는 이 아기에게 얼만큼의 안정감을 제공할까...

어디서 주워들은대로 트림을 시키기 위해 아기를 안고 서서 방을 빙빙 돌아다녔다. 아기는 신기하게 트림을 했고 내가 계속 눈을 맞춰주니 아기가 드디어 웃는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휴..
이런 하루 봉사가 정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아기는 계속 눈맞춰줄 모성이 필요할텐데...
약간 회의적이었던 이 봉사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그날 하루를 무의미하지 않게 만들어준 초희.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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