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톈진에서 
살던 아파트와 일하던 학원 다음으로 궁금했던 곳.
图书大厦( Book building ) 건물.

고층 건물에서 그중 1-6층을 모두 서점으로 쓰는, 이름부터가 도서빌딩인 곳.
15년 전에는 놀러갈 곳이 별로 없어서 백화점 두어 군데와 이 서점만 늘 왔다갔다 했었다.

이 서점에 갈 때는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버스 정류장이 애매한 곳에 있어서, 버스에서 내린 뒤 늘 10차선 대로를 무단횡단해서 찾아가야 했다.
당시 중국에는 신호등이나 건널목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걸 지켜서 건넌다는 개념은 그닥...

언제나 두려움에 떨며, 주위에 중국인이 있나 살펴서 그들이 건널 때 잽싸게 따라 건너야 편하게 건널 수 있었던 그길.

옛글을 좀 참고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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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6 01:26 

아련함


天津...
8개월 동안 살았던 그 곳을 떠난지 9개월이 지났다.
가끔 지저분하고 답답한 감옥 같기도 했던 그 곳이 이젠 아련하게
그립다.
그 8개월은 내 삶에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
사진 왼쪽 삐죽한 세모돌이 건물은 랜드마크로 삼기에 좋은 르네상스
호텔 건물.
가운데 높은 건물은 내가 총총 길을 건너 圖書빌딩을 찾아갈 때
기준점으로 삼곤 했던 금빛으로 치장한 건물이다.
항상 뿌연 천진 하늘에선 사실 구름보기도 어려운데 이 사진은 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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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금빛 건물이 여전히 이곳에! 


15년 만에, 이 길을 건너며 
이제 목숨 건 무단횡단이 아니고, 신호에 따라 건널목을 건넌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보았다. 
계속 걸으면서 찍은 사진 치고는 흔들리지 않고 잘 찍혔네.


당시에는 오른쪽 금색 건물과 앞쪽에 세모로 뾰족한 건물만 튀는 높은 건물이었는데
이제는 고층 건물이 너무 많아져 이 건물들은 눈에 띄지도 않는다.

15년 전에는 한국과 중국의 경제 수준 격차가 컸었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한국인처럼 보이면 안 된다'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튀게 다니지 마라' '밤에 다니지 마라' 이런 주의를 줬었다.

어느날 이 서점을 둘러보다가 누군가와 부딪혔는데 그 사람이 서투르게 '미안합니다' 같은 한국말을 하고 지나가서
'내가 한국인인 게 보이나?' 하고 깜짝 놀라서 무서워졌던 일,
그리고 원래는 밤 외출을 안 했는데 어느날엔가 이 서점에서 깜깜한 밤에 나와서 가본 적 없는 뒷길을 걸어 집에 갔던 일 등등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왜 그 길을 걸었는지, 무서움에 덜덜 떨었는지, 아니면 '별 거 아니네'하고 의기양양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



2019년, 야경이 예쁜 톈진에는 밤에 산책하는 사람도 많았고
사실 나처럼 혼자 걷는 여자는 별로 없었지만, 밤에 가족 단위 외출도 많이 보였고 밤길이 위협적으로 보이는 상황은 드물었다. (물론 으슥한 곳은 가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이번 여행 첫날 숙박한 곳은 오래 전엔 '그쪽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 소리를 들었던 江 동쪽이었다. 예전 8개월 동안 살면서 딱 한 번 넘어가보았던 그곳을 이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며, 그땐 왜 그런 소리를 들었을까 궁금했다.





15년 전에는 왜 그렇게 중국 사람을 무서워하며 살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미 모든 걸 겪어 본, 한국인 선배들의 충고 때문이었겠지만.


당시에는 상점 점원이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유럽배낭여행을 많이 다닌 내 또래에 비해선 난 유럽보다 미국을 많이 방문한 편인데
늘 친구들에게 "미국은 땅이 넓어서 사람들의 알 수 없는 그 여유가 좋아"라고 말하곤 했었다. "역시 넓은 데 살아야 여유가 생겨. 그런데 중국의 경우를 보면 또 그게 다 맞는 건 아니네" 이런 말도 덧붙이면서.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마주친 직원들은 하나같이 모두 친절했다.
자신있게(!) 아는 말 하나만 해서 중국어로 주문했다가 그 다음에 쏟아지는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눈만 똥그래지는 나를 보고도 모두 참을성있게 서비스를 제공해주었다. 다들 신기할 정도로 급하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
한국 식당은 혼자 온 손님을 좋지 않은 자리에 배정하고, 4인석에 앉으면 눈치를 주는데
기본적으로 식당들의 크기가 큰 중국 식당은 늘 큼직한 4인석에 나를 안내했다. 그것 역시 너른 땅에서 나온 여유 같았다. 


          닷새 스쳐가는 여행객은 그저 모든 게 아름답지만, 오래 살다보면 다시 인간이 무서워질까.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문화가 발전하면서 그들이 부드러워진 걸까.
아니면 내가 15년 전에 너무 마음의 문을 닫고 산 걸까.



* 중국에 오래 살았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시점에 이미 성인이었던 중국인과 그 시기를 거쳐 자라난 세대 중국인은 무척 성향이 다르다고 한다,
정말이지, 2019년 닷새간 만난 중국인들의 여유와 친절은... 놀라운 변화였다.




댓글

  1. Hotel Alerts: The hotel is previously named Renaissance Tianjin Downtown Hotel and is re-branded as Clarion Hotel Tianjin as of May 1s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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