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알바처럼 테니스 관련 일을 했을 때,
춘천에서 열린 주니어 테니스 대회에 간 적이 있었다.
경기 시작 전에 심판과 선수들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 것은
그냥 보도 자료용, 홍보용으로 찍거나 요식 행위인 줄 알았고
사실 관중도 없는 작은 대회에서는 그냥 지나쳐도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빠지면 안 되는 필수 과정이었나 보다.
미디어 관련 일을 맡아서 늘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시는 분으로부터
혹시 나에게도 카메라가 있으면 코트에 가서 사진을 찍고 오라는 다급한(?) 부탁을 받았다.
본인은 지금 다른 코트에 가 있느라 바쁘다며...
코트에 가보니, 다들 사진사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새.
그래서 이 사진을 찍지 않으면 경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필수 과정이라는 걸 알았다.
(사실 근처에 누군가 폰카메라 가진 분도 많았을 텐데, 굳이 디지털 카메라 가진 사람을 찾았던 걸 보면 뭔가 규정이 있는 듯??)
왼쪽은 한국의 정윤성 선수, 오른쪽은 호주의 Jake Delaney 선수.
주니어 테니스 대회 결승전이었다.
결과는 정윤성 선수의 6:1 6:1 승리.
이 사진을 찍기 전에는 다들 경기 시작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어서 사진이 꼭 필요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중에 이 사진을 따로 제출하도록 요청받지는 않아서 (뭐지??)
정말 나만 가진 공식 사진이 되었다.
그래서 당시 나이 16-17세이던 이 선수들이 대형 스타가 되어서
나만 갖고 있는 이 햇병아리 시절 '대결' 사진이 뭔가 가치를 발하기를 기대했지만 🤗
5년이 지난 현재, 정윤성 선수는 297위로 아직 투어 레벨 경기 경험이 없고,
Delaney는 1000위권대로 챌린저 아래, ITF circuit 경기를 뛰고 있다.
주니어 시절 세계 랭킹이 나쁘지 않은 선수들이었던 것에 비하면, 성인 무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
물론 18세에, 여자 테니스 같은 경우는 15세에도 투어급 우승을 하는 선수도 있지만
십여 년을 챌린저 레벨만 돌다가, 30대가 되어서 결국 투어 1승을 쟁취해내는 선수도 있듯이
이들에게도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참, 사진을 보니 저 빨간 유니폼이 기억나네.
저런 대회 종사자에게 나눠주는 것 치고는 보기 드물게 품질이 좋았던 제품.
11월에 열린 경기라서 그런지 두터워서 따듯했다.
보통 저런 류의 상의에는 대회 이름을 뒤쪽 등에 크게 써놓아서 다른 데에선 입기 힘들 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저 옷은 아주 작은 글씨로 허리 아래 부분에 보일들 말듯 새겨져 있다.
그래서 심지어 뉴욕까지 진출 ㅎㅎ
이옷을 입고 미국 여행을 다니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냥 밤에 추우면 입어야지 하고 가져간 옷이었는데
허리케인 북상으로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여행 기간 동안 다시 '유니폼'이 됨.
2019. 11. 10.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