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에선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 된 것 같다.
특히 기본적으로 남앞에 서야 돈을 버는 직업 - 연예인, 정치인, 그리고 대학교수나 의사 중에서도 방송의 맛을 본 뒤 출연에 열올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신뢰가 가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최대한 기억나는, 가장 최초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나눈 건 26살 때쯤 아주 오랜 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였던 듯 하다. 그때 그 '인간 상호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 친구는 내가 어디서 엄청난 타격의 실연을 당하고 온 것으로 짐작하는 듯했다. 🤔
언젠가 이 블로그에, 나는 사진으로 일상을 내세우는 사람보다는 글로써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식의 내용을 쓴 적이 있다. 그래도 긴 글은 고민과 오랜 시간끝에 나오는 결과물일 테니, 그 사람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일 거라 생각해서. 그런데 요즘은 또 글을 잘 써도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가지 않게 됐다.
잘 생각해보니 그런 불신에는 독일 테니스 선수 사샤 즈베레프의 기여도(?)가 꽤 높은 것 같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민한 테니스 선수 부부의 터울이 큰 막내 아들로 태어난 97년생 즈베레프는 러시아어, 독일어 외에도 미국에서 훈련을 하면서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 테니스 코트에 라켓을 후려치는 행패를 많이 부리곤 했지만 경기 후에는 on-court 인터뷰도 늘 재치있게 해냈고, 그래서 테니스 저널리스트가 '즈베레프는 언어로 표현하는 걸 타고났다'는 트윗을 하기도 했다. 본인이 존경해온 선배 선수가 은퇴할 때 인스터그램에 길게 쓴 헌사 등등 글도 너무 잘 써서 서글서글한 미소에 막내 아들로 부모/나이 차이 많은 형의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테니스 코트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을 뿐 코트 밖에서는 정서가 안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트위터 같은 곳에 단어 몇 개로 감정 표현을 잘 하는 것은 아르헨티나 선수 델 포트로를 뽑을 수 있겠고(사실 그는 주로 스페인어로 써서 나는 영어로 번역된 버전으로 이해하는 것이지만 몇 단어 안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집어넣는다. 물론 그의 홍보팀이 대신 썼을 수도 있다😅), 긴 글은 즈베레프가 잘 쓴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겨우 23살의 나이에... 러시아인 전 여자친구에 대한 데이트 폭력과 폭언에 대한 증언, 이미 헤어진 독일인 전 여자친구의 임신 등등 사건이 줄줄이 터지면서 그 '사랑 받고 자란 서글서글한 막내' 이미지는 홀딱 깨지고 말았다.
애초에도 즈베레프는 훈련 상습 지각으로, 유명 코치들이 질려서 단기간에 그만 두기로 악명 높아서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했었는데 역시 나쁜 사람은 '한 가지만 하진 않는다'.
여자친구 폭행은 즈베레프가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기에 확정난 것은 없지만 그 과정에서 즈베레프가 "이미 법원에서 허위로 판결"했느니 뭐니 하면서 슬금슬금 거짓말을 끼워넣고 있기도 하고
(https://twitter.com/_ankaramessi/status/1431378320810258434?t=RGYazEJTRi_DaJEemQDHqA&s=19),
헤어지고 나서야 임신을 알게 된 다른 전여친도 "인터뷰에서는 임신 중인 아기가 소중하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다 같은 내용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연락 온 적 없다" 라는 내용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서 즈베레프를 공개 비난하기도 한 것을 보면, 즈베레프가 거짓말을 잘 한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아무리 헤어졌다지만 임신중인 내 아이의 아빠인데다가 사회적으로 훨씬 더 지지 기반이 큰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서 그 여자분이 얻을 것은 별로 없으니.
소셜 미디어 비난 후 결국 관계를 회복해, 나중엔 딸의 탄생 뒤 종종 딸과 잘 지내는 사진을 전 여자친구가 공개하긴 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안티들도 많이 생겨서, 즈베레프가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 "왜 하필이면 쟤가...?"😔 하면서 지워버린 사람들도 많았다.
역시 세상엔 별놈 다 있구나... 싶고, 그렇다고 뭐 그 선수가 내 일상에 해를 끼친 것은 없으니 상관없이 살고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요즘 '멋진 글 쓰는 사람' '긴 글 잘 써서 자기 생각 조리있게 풀어내는 X'도 못 믿겠다 - 라는 생각이 커진 데에는 즈베레프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든다.
+ 예전에 우리 아파트 맞은 편 집에서 부부싸움끝에 아내가 우리집으로 피신오고 그 남편이 쫓아와서 우리집 문을 마구 걷어찼던 일이 있다. 나중에 그집에 가 볼 일이 있었는데 거실에 걸려있던 행복해 보이는 가족 사진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귀여운 강아지까지 데리고 온가족이 전세계로 테니스 응원을 다니는 즈베레프 가족 사진을 보면 늘 화목해보였다. 승부욕에 라켓 부수기를 할 지언정, 정서적으로는 안정되게 컸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걸 보니... 단단히 결속된 가족의 존재조차도 그 사람의 인성을 보장해주진 못한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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