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가로스/파리 여행 후 짧은 생각



* 인증/자랑은 인류의 본능이다.
롤랑 가로스 경기장은 관람을 위한 그 수직적 높이 때문에 내 아래 앉은 사람들 좌석이 그대로 내려다 보이는데, 다들 경기장에서 찍은 사진 페이스북/인스타에 올리고 경기 틈틈이 댓글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다. 국적 나이 불문인 듯. 중년 이상으로 보이는 분들도 경기 중에 소셜미디어 확인 많이 하더라. 매치 포인트나 세트 포인트에 돌입하면 대부분 영상을 찍는다.

* 직관이라서 놓치는 상황도 오히려 많다.
4강전에서 꽤 큰 선수 부상이 있었는데 내 좌석쪽 사각지대에서 벌어져 TV로 보는 것보다 오히려 늦게 알아차림. TV 중계는 마이크로 현장음을 잡기 때문에 선수의 고통이 소리로 시청자에게 그대로 전달됐는데, 현장에선 그것까진 몰랐음. 그때까지 너무나 얄밉게 잘 하던 상대방이었고, 행실 때문에 애증이 교차하던 선수였는데 부상앞에서는 그런 미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현장에서 알게 되고 나선 (나 자신이 신기할 정도로) 너무 슬프고 마음 아팠다. 
직관이라 해도 좌석의 위치가 중요한데 4강전 내 자리 같은 경우도, 부상을 일찍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베이스라인 뒤로 물러나 공을 받는 선수가 잘 안 보이는 자리였다. 나달이 우승한 2022년 호주오픈 매치 포인트를 보면 공이 떨어지는 곳과 가까이 앉은 관중들로부터 순차적으로 환호가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경기장 안에서도 각자 다른 시간에 결과가 접수되는 것이다.

* 프랑스 공중파 TV는 롤랑가로스 저녁 경기 중계를 안 한다.
파리에 있다고 해서 모든 롤랑가로스 경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료 채널을 구독하지 않는 한, 호텔에서 TV로 볼 수 있는 것은 그나마 day session 경기 뿐이며 나달:조코비치 경기일지라도 night session은 중계하지 않고 정규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이 경험 덕분에 이번 CNN 인터뷰에서의 나달 답변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여자 경기를 왜 (main match인)나이트 세션에 많이 배정하지 않냐고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여자 경기가 데이 세션에 더 많이 배정되니 더 많은 시청자가 볼 수 있어 공평하지 않느냐" 라는 내용. 프랑스 티비는 롤랑가로스 저녁 경기를 중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됐기 때문에 이 답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됐다. 입장권을 구매하거나 유료 채널을 구독하지 않는 한, 파리에서는 나이트 세션에 대중이 접근하기가 어렵다.



* 프랑스 빵이 맛있는 건... 기분 탓이다.
파리 여행와서 행복감과 사랑에 충만해지신 블로거 많이 봤는데 다들 빵이 "어쩜 이런가요" "호텔 조식 크르와상도 남달라"라고 해서 기대했다.
하지만 뭐가 다른진 잘 모르겠던데... 내가 애초에 빵을 그리 좋아하진 않아서일 수도 있고.
프랑스 빵이 유난히 맛있는 건 현재 당신의 기분이 좋기 때문입니다.🤗


* 의외로 조용한 파리 호텔
내가 예약한 호텔은 대부분 풀부킹이 되었고 체크인할 때도 꼭 몇 팀은 마주쳤고, 또는 사람이 많아서 심각하게 오래 대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호텔 방 안에 들어가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풀북은 거짓말이고 꼭 호텔에 나만 있는 것 같은 느낌. 파리 근교 호텔 9개 정도를 옮겨다녔는데 대부분 그랬다. 방음 공사를 잘 하는 건지, 조용히 숙박하는 건지.. 다들 조식 때가 되면 어디서든 다 나오긴 하더라만 :)
10m² 방 넓이에 옆방 티비 소리가 다 들리던 마지막날 호텔을 빼면 다들 너무나 조용해서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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