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는 부산이 왜 Pusan이라고 써있었는지, 미국에서 자란 교포 언니가 "너희들의 Jesus 발음은 틀렸어" 라고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몇 년 잠시 한국어교육에 몸담은 결과, 이제는 안다.
한글의 어떤 초성은 실제로 그런 발음이고, 외국인에겐 푸산, 피빔밥, 치저스(cheesus)로 들린다는 것을. 특히 '비빔밥'은 그 단어에 들어간 'ㅂ'이 모두 각각 다른 소리가 나는 단어라고 한다. 실질적인 발음이 "피빔빠ㅂ"인 셈이라서.
그래서 외국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받아쓰기가 엉망이다. "남차진구, 진절한 사람"....
아마도 대부분이 "ㅊ"소리로 들리거나, ㅈ/ㅊ의 소리 차이를 솔직히 구분 못하지만 대충 때려잡아서 둘 중의 하나를 돌려가며 적는 것 같다.
나도 영문과지만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기에, 한국어학과 3년 졸업하고 떠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렇게 써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종종 한국어 대학 "강사" 경력 수년 차에 돌입한 제자들이 여전히 "참미(장미)" 같은 단어를 써서 오는 것을 보면 이걸 어쩌나 싶다.
어려운 단어라면 그렇게 써도 이해하겠는데, 친구나 장미 같은 것은 거의 처음 해당 언어를 배울 때 나오는 기초 단어들인데도 여전히 제대로 못 쓰는 것을 보면 노력이 부족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귀로 들을 때 그렇게 안 들리는 것을 어찌 적나요?'도 핑계가 될 수 없는게, 영어만 해도 가장 기본 단어인 'daughter'를 들리는 대로만 쓴다면 'daughter'라고 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배우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그렇게 쓰는 셈인데, 가끔 한국어 학습자 중에 "아, 소리 나는 것이 실제 쓰는 것과는 다르구나" 라는 의식적인 노력 없이 들리는 대로 대충 쓰는 학생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 프랑스어 같은 경우에도 Bordeaux 같은 도시 이름을 '제 귀에는 이렇게 들리는데요?' 라면서 bordo 이렇게만 써놓고 만다면 소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은 달달 외워서 쓰는 수 밖에 없다.
기초만 잡아주고 그냥 현지인들에게 남겨두고 온 한국어 교육이 그래서 가끔 무책임하게 느껴져 미안할 때가 있다. 현지 교사가 ㅈ ㅊ 발음을 구별해서 내지 못하고, ㄴ받침과 ㅇ받침 소리 구별이 안 되고, 동대문과 돈대문을 차이나게 발음하지 못하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제대로 듣고 배울 것인지.
한 번은 현지 교사 본인이 구별해서 발음을 할 수 없으니 자체 제작 교재에 "한국어의 'ㅓ'와 'ㅗ' 발음은 같다"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기겁해서 고쳐준 적도 있다.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이렇게 알고 있었다니.... 외국어를 -특히 그 발음을- native speaker가 아닌 사람에게 배우는 것은 정말 한계가 있겠구나.. 하는 걸 새삼 느낀다.
교육 초기에 학생이 '치곱'이라고 적어놓은 것을 보고 한참 동안 이게 뭘까 궁금해한 적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직업'을 그렇게 적은 것이었다. ㅈ ㅊ 발음을 구별 못 하고, ㅓ ㅗ 발음을 구별 못 하는 것이 결합된 사례.
그리고 한국어 교육의 최대 난제 중 하나가 은는/이가 사용 구별인데, 이건 진짜 어릴 때부터 아무렇지 않게 한국어를 써온 사람만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 같다. 말과 글로 아무리 설명해도 안 되고, 10년 가까이 교단에 선 외국인 강사도 여전히 틀린다. 심지어 한국 근대 소설집을 번역해 자국어로 출판할 정도인 외국인 실력자도, 그 책의 고국 출판을 소개하는 글을 이렇게 시작했다. "제가 번역한 책은 ☆☆☆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여기에선 당연히 "제가 번역한 책이 ☆☆☆에서 출간되었습니다."라고 소개해야 맞다. 이런 것을 볼 때면 언어는 그저 그 나라에서 어릴 적부터 살며 몸으로 흡수하는 것만이 방법인가 싶기도 하다. 후천적인 노력으로는 접수가 안 되는 그 '어감'.
나 또한 한국에서 한국인에게 영어를 배웠으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어 발음과 문법 실수가 존재한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영어로 소통할 일이 종종 있었을 때,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한국인 동기들이 나에게 하던 말들에 그런 뜻이 있었겠구나 싶다. "딱 누나 정도의 영어 발음..." , " 그 자리엔 영어가 너무 유창한 사람은 오히려 어색해요, 누나 정도 실력이 적당할 듯"
들을 때는 묘하게 기분이 좀 나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걔들에게는 장미를 '참미'로 발음하고, 동대문이라고 해야 하는데 '돈대문'이라고 발음하는 수준인 내 영어 발음이 귀에 딱딱 꽂혀서 그랬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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