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은 다름





물이고 뭐고 아무 것도 제공 안 하는 파리 3성 호텔만 다니다가
4성 호텔에 갔더니 물병이 놓여있어서 반가웠다. 냉장고나 클리넥스 제공 등등은 물론이고.
역시 돈의 차이.

하지만 물을 마시려고 하니 이 커다란 유리병은 밀봉되어 있지도 않아서 그냥 열렸고
내부에는 뭔가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사진을 찍었으나 사실 사진에는 잘 안 나옴)






사실 십수년 전에도 태국 호텔에서는 유리병에 든 생수를 제공했었고
그 병도 그리 깨끗하진 않았다. 그래서 한국인들 사이에선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하진 말라는 말도 있었기에 이런 유리병이 낯선 건 아니지만...
뭔가 꺼림칙.

대체 이 물은.... 뭐지?
앞의 사람이 남겨 놓고 간 건가? 수돗물?!?!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물을 한 병 사오기도 했지만 컵라면 등을 끓이기엔 부족했기에
(3성 호텔엔 커피 포트도 없으므로 4성 이상의 호텔에 가서 커피 포트가 있을 때 무조건 컵라면을 끓여 먹어야 짐이 줄어든다!) 1층 프론트 데스크를 지나면서 "물이 깨끗하지 않고 병이 열려 있었다. 물 한 병 새로 줘." 라고 하고 올라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고, 우리 층을 청소하시는 분과는 "water"단어 조차도 통하지 않았다. 프랑스어 'eau'는 단어가 너무 짧아 오히려 소통이 안 됐다. l'eau? eau? 번역기를 통해 겨우 소통이 되어 새 물을 받았지만 여전히 뚜껑은 열려 있고 병 안에는 침전물이 있다. 

무늬만 4성이지, 그냥 수돗물 받아다 주나봐....  





최근에 우연히 찍어둔 사진을 다시 보다가, 물병에 적힌 내용에 대해 번역 앱을 써봤다. 


Castalie est une alternative durable aux eaux en bouteille! Microfiltrée sur place grâce à nos fontaines, son goût neutre est plébiscité par de nombreux chefs. 
Boire l'eau Castalie, c'est aussi éviter la pollution de notre environnement liée aux contenants et au transport entre la source et le lieu de consommation. 
La planète vous dir merci. 
Et nous aussi! 


요약하자면, 
이 브랜드는 지속 가능 환경 보호를 위해 그 자리에서 정수해서 유리병에만 담는 물로...
잘 여과된 이 물의 중성적인 맛은 여러 유명 요리사의 호평을 받았다고 자랑한다. 
물을 (공장에서) 생산해 운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환경 오염까지 줄인 물이니까, 지구가 우리에게 "고마워!" 라고 할 거라고 써져 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이 castalie 회사 사이트에 가봤더니 "우리 정수기는 염소(chlorine)와 잔류 물질들 잘 걸러내는 전문가"라고 자랑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물에 잔존물들이 얼마나 많던지...
사실상 호텔에서 정수기는 사용하되, 유리병 세척은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나 싶었다. 아니면 어차피 물병이 밀봉되어 있지 않은데 급하게 수돗물을 담아왔다 해도 알게 뭐야...

가늘고 긴 병이고 입구도 좁은데 어떻게 세척하는지 의문이고, 코로나 시대에는 내 앞에 이 병을 쓴 사람이 병에 입을 대고 마시지 않았는지 그것도 의심해야 한다.

병에 줄줄이 설명을 써놨지만, 한마디로 '공장에서 만들어온 플라스틱 생수 대신 정수기를 통과한 물을 예쁜 유리병에 넣어줄테니 그걸 마시자' 는 이야기인데
환경 보호도 좋지만 현실에는 벽이 있다.
저 좁은 유리병 세척은 어떻게 제대로 하는 걸까? 세척을 진짜 제대로 하려면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환경 오염이 생기지 않을까?? 
가정에서는 몰라도, 여러 사람이 거쳐가는 공공 시설에선 이런 병이 부적합하다고 느꼈다. 환경 보호와 위생은 동시에 가능하지 않은 건가?

하지만 플라스틱 생수병을 언제까지고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니...이제 저렇게 재활용된 병에 마시는 게 표준이 될 지도 모르고, 호텔에 가더라도 개인 물병 지참을 요구받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싶다.




⬆️파리의 다른 4성 호텔에서도 큰 유리병에 든 생수를 제공했는데 여기도 뚜껑은 밀봉 상태가 아니었고 뭔가가 둥둥 떠다님.


하긴, 모든 건 그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입을 대는, 공장에서 나온 플라스틱 물병은 그렇다고 깨끗할까?
우리가 매일 입에 집어넣는, 식당의 수저들은 과연 깨끗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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