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홍콩에서 다음 머물 호텔로 가기 위해 버스 노선 검색.
다음에 갈 호텔에서 한 블록 떨어진 대중교통 허브(?)같은 데에 대부분의 버스가 정차하는데, 호텔 바로 건너편으로 도착하는 노선이 단 하나 있기에 일부러 그 버스를 타기 위해 무더운 날씨에 짐을 질질 끌며 약간의 경사를 올라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림.
정류장 주위 풍경을 한 장 찍어둠.
한참만에 온 버스. 짐을 들고 타기에 홍콩 시내 버스는 적합치가 않다. 타자마자 있는 약간의 공간에 서서 가지 않는 한 그 뒤로는 좌석이 한 열에 4개씩 있고 통로가 너무 좁아 짐을 둘 데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맨 뒷 자리까지 겨우 짐을 끌고 가서 착석. 사실 그나마도 나보다 안쪽에 앉은 사람이 나갈 통로를 내 짐이 막고 있는 형세로 앉아 있어야 한다. 버스 탑승 인원이 적은, 낮 시간대에만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한 정거장 이동한 뒤 버스는 멈춰섰고, 기사는 당황해서 왔다갔다 하더니 광동어로 뭐라고 뭐라고 얘기하심. 외국에서 버스 탔을 때 가장 당황할 때가 이런 때인데... 여러 명이 탄 버스에서 나만 무슨 일인지 모르는 상황.
기사 아저씨가 뭐라뭐라 말을 하니 몇 명은 내리고 몇 명은 그대로 타고 있다. 뭘 어째야 하는 건지??
낮 시간대라 버스 안에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만 계셨는데 내 옆자리에 젊은 여자분이 있어서 영어로 물어봤다. 그녀는 내 목적지를 물어보더니 거기 갈 거면 버스 안에서 대기해도 된다고 함.
얼마 뒤, 내가 굳이 타지 않으려고 했던 (도착점이 호텔에서 멀어서) 그 번호의 버스가 왔고, 기사 아저씨는 남은 사람 수를 하나하나 세어서 그 버스에 교통 카드를 새로 찍지 않고도 타도록 인계해 주었다.
아까 나처럼 맨뒷자리에 앉았다가 내 질문에 영어로 답해 주었던 여자분은, 버스를 바꿔 타고도 또 맨뒷자리에 앉았는데 나도 역시 맨뒷자리로 가방을 끌고 오자 자기를 또 귀찮게 할 거 같았는지 뭔가 살짝 나를 불편해하는 거 같은 기색을 내비쳤다. 속으로 '당신 따라 여기 앉는 거 아니거든요?? 내 가방을 둘 자리가 여기 밖에 없어요'라고 생각했다.
대체 이 상황은 뭐야.
기껏 호텔 가까운데 서는 버스 찾아서 탔는데 그 버스는 고장나 버리고, 결국은 먼 데에 내리는 버스 타게 됐네. 허허.
늘 지하철 아니면 페리로 홍콩섬<->본토를 건너다가 처음으로 버스로 건너감. 하지만 예상대로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대체 어디로 가야 호텔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 정류장 주위가 다 공사판이라 지도 앱을 봐도 참고가 안 됨. 나는 어디서든 길을 잘 물어보지 않고 지도를 참고해서 스스로 찾는 편인데 35도 여름 날씨는 평소 내 성격이고 성질이고 모든 걸 무력화시킴.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호텔로 가는 길 물어봐서 겨우 그 공사판을 탈출했다.
작년 홍콩 여행 경험 중에 내가 두고두고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 무더위 앞에선 평소 성격이고 신조고 다 사라졌다고.
아무튼 그 고장나버린 버스를 타기 위해 약간의 언덕을 올라간 끝에 맨 위의 사진 한 장을 찍었고, 나중에 황금 용 한 마리가 사진 속에 있는 걸 알았다. 아니, 사실 '저기 용이 있구나' 하고 사진을 찍어 둔 것인지 나중에 사진을 보다가 '어라 여기 용도 있었네?' 한 것인지는 기억이 확실치는 않다.
그러던 오늘...
이번 주 남자프로 테니스 경기는 브리즈번과 홍콩에서 대회가 열리는 중. 보통 대회가 열릴 때마다 테니스 선수 몇 명을 데리고 그 도시 홍보 영상을 찍는 게 관례인데, 차 타고 홍콩 시내를 둘러보는 Rublev 영상 발견.
그러더니 익숙한 풍경이 지나가네...??
나름 의미있는 용인가봐 ㅎㅎㅎ
난데없이 고장난 버스로 인해 쓸데없이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버스 아니면 거기까지 올라갈 일도 없었으니 ... 그 버스 노선 덕분에 이 용 조각상 위치를 알게 됐다고 생각할래.
웃기게도 어제부턴가 내 다른 폰 배경화면도 이걸로 해두고 있었다는 거. 그래서 저 용을 단번에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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