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가로스의 악명 높은 필립 샤트리에 코트 나이트 세션.
보통 8시 반 이후라는 늦은 시간에 시작함.
후끈한 분위기의 호주오픈, US오픈의 여름밤과는 달리 파리의 5월 밤은 쌀쌀함.
표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day 세션은 3경기를 볼 수 있는데, night 세션은 한 경기 뿐임.
야간 경기가 길어질수록 흥미진진해지긴 하지만 교통 수단이 줄어들어 집에 가기 어려워짐.
매해 욕을 먹고 있는 와중에, 다른 그랜드슬램 대회처럼 한 세션에 두 경기를 배치하거나 나이트 세션을 더 일찍 시작하라는 요구에 올해 토너먼트 디렉터는 더 기절할 답변을 내놓았다. "파리 사람들은 늦게까지 일한다구요." (= 나이트 세션 시작 시간을 앞으로 당기면 그들이 입장할 수가 없어요) 🤦♂️🤦♀️🤦
이런저런 이유로 나이트 세션은 인기가 덜 해서 표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이다.
'나달의 마지막 대회'라는 이유 때문에 50만명인가 60만명인가 몰렸던 첫 공식 예매일 때 내가 구입할 수 있었던 표는 나이트 세션 뿐이었다. 나중에 추가 예매일에 데이 세션 표를 몇 장 더 구하게 되어서 '나중에 파리 가서 일정 보고 나이트 세션은 resale하고 데이 세션 봐야지' 하면서 출발.
하지만...경기 하루 전 발표되는 일정을 보니, 대회 1회전을 중심으로 구입했던 내 데이 세션 티켓으로 볼 수 있었던 경기들은 모두 덜 흥미로운 경기 뿐이었다. 1회전은 대부분 유명 선수 vs 랭킹 낮은 선수 대결인데, 경기 시작 전에도 이미 스코어를 예측할 수 있는 경기들이 많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예측한 스코어대로 끝난다. 물론 나달이 경기하는 데이 세션 표 하나는 건졌지만, 나머지 데이 세션 티켓은 눈물을 머금고 공식 사이트에 resale로 내놨다. (표 구입 가격 10% 수수료로 날아감🥲) 내가 크게 응원하지도 않는 선수의 긴장감 떨어지는 경기를 3경기 연속으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나이트 세션이 내건 장점은 그날 최고의 "major" 매치라는 것인데, 올해는 실제로도 내가 10여년 간 테니스를 보면서 "정든" 선수들 경기가 많이 배치되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데이 세션만 봐야지' 했던 나의 목표는 사라지고 나이트 세션만 3번 보고 왔다. (+데이 세션 1회)
올해 파리에 가서 처음으로 본 경기는 앤디 머리 : 스탄 바브린카 1회전.
두 선수 모두 그랜드 슬램 3회 챔피언이며 바브린카는 2015 롤랑가로스 챔피언이기도 했다.
85, 87년생으로 전성기를 훌쩍 지나 지는 해와 같은 선수들이지만 이 선수들 경기를 내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수잔 렁글렌 데이 세션 표를 포기하고 필립 샤트리에 나이트 세션 선택.
경기 중 휴식 시간 앤디 머리의 쓸쓸한 뒷모습.
팽팽할 것 같았던 예상과는 달리 앤디 머리는 속수무책으로 보였다. 나달과 함께 "지는 해"들이 안타까웠던 대회.
경기는 약간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일찍 끝날 것 같았지만, 내가 이날 머문 호텔로 가는 버스의 막차 시간이 23시 전이어서 마지막 몇 게임을 남기고 경기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경기장 밖으로 나와서야 좀 많이 아쉬웠다. 경기 끝나고 앤디 머리 퇴장할 때 관객들도 노장에게 박수 많이 쳐줄거고 그럼 많이 뭉클한 순간일 텐데....하고.
나달의 마지막 롤랑가로스일 수도 있지만, 앤디 머리에게도 마지막 롤랑가로스.
영국인(엄밀히는 스코틀랜드인)이며 윔블던 2회 우승자인 앤디 머리가 부상 때문에 올해 윔블던 🇬🇧 출전이 확실치 않다는 뉴스를 보니, 롤랑가로스의 마지막 작별 인사 시간까지 함께 하진 못했어도 그의 야간 경기를 보고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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