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tel이 아니고 host+ELLE = 여성 전용 숙소이다.
런던, 파리도 숙소 비용 비싸다 비싸다 했지만, 서유럽권에서 정말 비싼 도시는 따로 있었다.
암스테르담.
그나마 파리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ibis 같은 만만한 숙소가 있는데 이비스도, 홀리데이인도 웬만하면 30만원을 돌파하는 암스테르담.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갈 때 버스를 타고 갔기 때문에 시간은 좀 오래 걸렸지만 돈은 아꼈으니, 암스테르담에서는 호텔 가서 좀 쉬어야지...하는 생각은 싹 들어가게 하는 숙소 비용. 찾다 보면 10만원대 숙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곳은 당연히 평이 안 좋고 외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호스텔 선택.
암스테르담의 호스텔은 대부분 혼성 도미토리였는데, 남자들이 코를 고는 비율이 좀 더 높겠지만 뭐 어쩔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hostelle이라는 이 숙소가 여성 전용이라는 걸 고려했다기보다는 플릭스버스 정차장에서 도보 거리라는 점 + 침대에 커튼이 달려있다는 점 때문에 선택. 버스를 7시간 타고 도착한 다음에 다시 뭔가 교통 수단을 타고 가야 숙소를 찾을 수 있다면 너무 지칠 것 같았고 다른 호스텔 사진을 보면 커튼이 없어서 자는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2층 침대인 경우가 많았다.
시내 중심부 위치도 아니고 조식 불포함 예약인 걸 생각하면 여태까지 호스텔 예약 사상 최고의 금액을 냈기에 (9만원대) '역시 암스테르담은 호스텔마저 비싸구만'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건 내가 토-일 숙박을 임박해서 예약했기 때문이었고 평일에는 거의 1/4 까지 금액이 떨어지는 날이 있었다. 😬 그래도 도보 거리 안에 아약스 홈 구장인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가 있고, 근처 Ziggo Dome에서 공연도 많이 열리기 때문에 나처럼 10만원 가까이 내고 숙박해야 하는 날도 많은 듯 했다.
사진은 booking.com에서 몇 개 데려옴.
암스테르담의 남쪽인 Bijlmer Arena 버스 정차장에서 내리면 Bijlmer Arena 기차역이 나오고, 거기서 길을 건너면 작은 쇼핑몰 비슷한 구역이 나온다. 건물이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리는데 구글 지도 등을 참고해서 이리저리 골목을 꺾다 보면 Hostelle 입구가 보인다. 아래에 내가 민트색으로 표시해 놓은 부분이 입구. 공항으로 가는 intercity 기차나 시내로 가는 지하철이 출발하는 Bijlmer Arena 역에서 호스텔까지 도보 8-9분 정도 잡으면 된다. 바로 건너편에 맥도날드가 있고, 각종 식당과 수퍼마켓 등이 많아서 오래 머무를 때도 음식 조달하기 좋을 것 같았다. 나는 24시간도 채 머무르지 않았기에 이 주위에서 사먹지는 않았다.
유리문으로 된 입구에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데, 처음 들어갈 때는 안쪽 프론트 데스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바깥에 도착한 사람을 보고 열어주는 방식이다. 예전 헬싱키의 호스텔은 도착 하루 전에 비밀번호가 나와 있는 이메일을 보내주는 방식을 썼었는데...💁 여기는 체크인을 해야 출입구와 내가 배정받은 방의 비밀번호가 써진 종이를 준다.
뭐 딱히 친절하지는 않은 사무적 태도 속에 체크인을 하고 2층 방으로 배정 받음. 도착 전에 확인한 몇몇 후기에서 봤던 폭이 좁은 계단. 내가 짐을 번쩍 들고 올라가야 한다. 나는 가방이 11kg 정도였지만 가방 크고 짐 많은 사람은 고생할 듯. 모든 방문 앞에 그 방의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내가 머무른 방은 Pop Art 방이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아직 저녁 7시 반밖에 안됐는데 불을 안 켜서 어둡고 온통 괴괴한 방안.
불도 안 켜고 모두 조용한 분위기라 사진은 못 찍고, 마침 booking.com에 내가 머물렀던 그 침대 사진이 있어서 가져옴. 나는 왼쪽에 바로 보이는 땡땡이 무늬가 있는 벽의 침대 2층을 썼다. 2014년 쯤 제주도에서 침대 2층에 올라간 이후 처음으로 2층에 배정 받았다. 제주도의 그 방도 핑크색이 테마였는데.... 여기도 흠....
아무튼 도착을 했으니 바닥에서 내 가방을 열고 짐을 꺼내고 지퍼를 부왁부왁 열고 닫고 하는 중에, 그 소리가 거슬렸는지 위 사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끝쪽 침대 2층에서 누군가가 신경질을 내며 나를 내려다보는 게 느껴져 순간적으로 쫄았다. 아니, 난 지금 도착했으니 가방은 열어야 하고 아직 잘 시간도 아닌데 이게 무슨?!?
하지만 내가 기싸움을 할 그런 패기는 없는 사람이라, 밤에 갈아입을 옷까지 모두 꺼내 앞으로 가방 열 일이 없도록 만들고 세면 도구와 함께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여성 전용"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휴게 공간도 모두 예쁘게 꾸며져 있고, 화장실에는 생리대도 무료료 비치되어 있다. 1층에는 화장대와 거울마저 주르르 늘어서 있다.
화장실이 영 못쓸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지도 않는 것은 거의 모든 호스텔의 특징인 것 같은데, 여기도 공동 화장실이나 샤워 부스가 늘어서 있는 공동 세면장이나 모두 미세하게 은은한 악취가 배어 있다. 아주 깔끔하지는 않다는 뜻. 청소하시는 분은 계속 들락거리는 것 같기는 한데, 많이들 공용 시설은 좀 험하게 쓰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사실 난 세수만 하고 샤워를 포기했지만 그래도 아주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고, 꽤 인기있는 숙소인지 여태 가 본 곳 중에 화장실, 욕실이 가장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어제 잠을 잔 파리의 숙소가 건조해서 그랬는지, 계속 목이 간질간질하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걱정했다. '이러다 확 번지면 어쩌지?' 아직 일정이 남았는데? 계속 걱정을 하면서 왔으나 계속 칼칼한 느낌만 들 뿐, 목이 붓는다거나 열이 오르는 느낌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암스테르담의 대중교통 1일권은 9유로인데 0시-23시 59분 이런 식이 아니라, 사용 개시 시간부터 24시간을 쓸 수 있는 거였다. 저녁 7시쯤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다음날 저녁 8시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나의 체류 시간에 딱 맞는 교통권이 있었지만, 몸이 좋지 않아 야경 구경은 포기했다. 아쉽..😥 커튼을 친 침대 안에서 파리에서 가져온 간식을 주워 먹으며 ㅎㅎ 한국에서 가져온 약을 한 알 먹고, 일찍 잠을 자는 이 12인실 분위기에 맞춰 나도 9시부터 잠을 청했다.
침대 바로 옆에 창문이 있어서 찬 바람에 감기로 번질까봐 머리를 두는 방향을 바꿨다. 처음에는 공기가 찰 까봐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았고, 이렇게 많은 인원이 숨을 쉬는 공간에서 오히려 창문 옆인 게 덜 답답해서 더 좋긴 했다. 침대 매트리스도 꺼진 곳 없이 탄탄해서 거의 12시간을 누워 있는 동안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침대 곁에 개인 조명과 파워아웃렛, 소지품 선반 등이 모두 있어 편하다.
이 호스텔에는 12인실 10인실 4인실...다양하게 있는데, '어차피 다인실에서 잘 거라면 12인이나 10인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어?' 하고 12인실을 선택했는데... 다들 정말 코를 많이 골더라. 그래서 종종 잠에서 깨었는데, 잠에서 깰 때마다 왠지 나도 코를 골고 있었다는 느낌이 내 코에 남아 있어서 남탓을 할 순 없었다. 많이 피곤했었나봐. 💀 모기가 있어서 좀 거슬렸지만 그냥 계속 다시 잠든 걸 보면 집 떠난지 9일째라 피로가 누적되긴 한 모양. 밤중에 모기에 물려 이마에 크게 부풀어오른 부분이 있는 게 만져져서 '이거 내일 얼굴 웃기겠는데?'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흔적도 없었다.
10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는데 다행히 목 상태는 괜찮았다. 그런데, 아마도 내가 어제 가방을 열고 닫을 때 나를 째려봤었던 것 같은 그 중년 여성(목소리 톤으로 짐작)이 아침부터 엄청 시끄럽다. 방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통화를 함. 기본적으로 목청도 큰 사람. 어휴....역시 제 잘못은 모르는 사람이 남탓을 하는 거였어. 어차피 커튼 밖으로는 아무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 모르긴 하지만, 왠지 그 사람일 것 같았다. (이렇게 넘겨짚으면 안 되긴 하는데....) 눈을 뜨고도 침대에 계속 누워서 암스테르담 관광 정보를 검색하다가 10시를 넘겨 방에서 나와 체크아웃 했다(정규 체크아웃 11시). 방 번호가 써진 카드를 기념으로 모으는 습관이 있는데, 여기는 프론트 데스크에서 짐을 맡아주면서 기어코 가져감. 생각해 보니, 거기에 써진 입구 비밀번호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몸 상태 때문에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정말 진짜로 '잠만 잔' 호스텔.
짐을 맡아주는데 돈을 받았다는 후기가 있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후까지 무료로 맡길 수 있었다. 짐을 맡기고 로비 공용 공간에 앉아서 여행 정보를 좀 더 검색하려는데, 저쪽에 정수기와 티백, 커피 등이 눈에 들어옴. '아니 어제 밤에 목 때문에 따듯한 차 마시고 싶었는데...' 로비를 좀 더 살펴볼 걸 그랬나봐.🤦♀️ 사용 후 본인이 직접 씻어 둬야 하는 공용 컵을 주방에서 가져다가 차 한 잔 하고 암스테르담 여행에 나섬. 어제 갔었던 파리의 Jo&joe는 공용 주방에 전자레인지 밖에 없다고 하는데, 여기는 제대로 된 조리 시설이 있다. 그리고 예전 사람이 남기고 간 각종 향신료와 재료도 남아있다. 실제로 뭔가 만들어서 먹고 있는 사람 몇몇 봄.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것은, 이 날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날이었지만 여기는 무풍지대였다는 점. 2014년에 월드컵이 열리는 즈음에 런던 호스텔에 있었는데, 거기는 경기 때마다 로비가 시끌시끌했었다. 아마 이날 남여공용 호스텔에 갔었다면 공용공간이 좀 시끌시끌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봄.
숙소는 암스테르담 중심부에 잡는 게 제일 좋고 중심부에도 여러 호스텔이 있었지만, 어쨌든 버스 정차장에서 가까워서 선택한 Bijlmer Arena지역. 여기서 지하철 Metro54를 타면 18분 만에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한다(2.69유로). 숙소 주변이 축구장과 쇼핑몰을 빼면 황량해서 외진 느낌이 있지만, 도시 자체가 작아서 그렇게 중심부에서 먼 것도 아니다. 암스테르담 교통 앱을 깔고 앱에서 패스를 구입해서 QR 코드로 지하철-트램 탑승할 수도 있고, 한국에서 발행한 contactless master card로도 그냥 탑승이 가능하다. 한 번 체크 카드로 탔는데, 하루 넘게 지난 시점에 금액이 빠져나갔다.
Bijlmer Arena역에서 intercity 기차를 타면 스히폴 공항까지는 13분(4.5유로) 밖에 안 걸려서 너무 편하다. 언제 다시 유럽에 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암스테르담은 공항의 시내 접근성이 무지 좋아서, 나중에 환승 공항으로 두고 대여섯 시간만 여유가 있어도 시내 찍고 돌아오는데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공항이 너무 가까워서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공항에서 시간이 엄청 많이 남아돌아 문제였다.
여태 조용한 편인 호스텔만 다니다가 처음으로 시끄럽고 민폐에 당당한 룸메이트를 만나서 당황했던 호스텔이었지만 아기자기한 맛도 있고, 환경이 나쁘지 않아서 또 하나의 재미있었던 숙소로 기억에 남을 만한 곳이었다.
* 장점
- 여성 전용 숙소. 대체적으로 조용한 편이며 아기자기한 실내 디자인
- 화장대 시설, 생리대 제공, 따듯한 물과 차 제공 등 세심한 배려가 있다.
- 주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 바로 근처에 식당이나 슈퍼마켓이 있다.
* 단점
- 화장실, 샤워실이 낡아가고 있음
- 침대 밑에 작은 보관함이 있을 뿐, 큰 가방을 안심하고 놓아 둘 공간은 없다. 대부분 그냥 침대 근처에 가방을 세워 둠. 사실 서로 믿고 혹은 '포기하고' 이렇게 가방을 세워두는 것일 뿐, 호스텔에서도 도난에 주의해야 한다.
- 시내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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