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큰 분들만 모인 구석 자리 여자분들 모임에서 한 분이 목소리를 높이신다. "내가 갑상선(아마도 암?) 걸린 이유도 다 남편 때문이야. 이 사람은 매사에 xxxxx xxxxx.... 그거 맞춰주다가 내가 평생 XXXX XXXXX ...."
저런 내용 잘 알 것 같다. 아마 저분은 저런 말을 저 모임에서 한 게 처음은 아닐 것이다. 늘 하던 얘기.
예전에 엄마 생신 때 부산 기장에 있는 호텔에 모시고 갔었는데, 호텔이 맘에 드셨던 엄마가 대구에 사는 중학교 동창을 호텔로 초대하셨고, 그 대구 친구분은 부산으로 오시는 김에 기장에 사는 다른 중학교 동창을 또 불러서 같이 오셨다.
2박 3일 여행이긴 했는데, 두번째 날은 내가 졸지에 엄마 동창 여행에 낀 형태가 되고 말았다. 기장에서 오신 그 친구분은 만성 질환이 있던 남편을 오랜 기간 병수발을 들다가 십수년 만에 벗어나신 분이었는데, 십수년째 만나면 똑같은 신세 한탄과 시댁살이의 고통을 얘기해오셨다고 한다. 이런 분들은 어떻게 해도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고, 누군가가 그 고통을 알아봐주길 바라기 때문에 늘 똑같은 얘기를 여러 번 반복하곤 한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나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시댁살이를 해본 적 없는 우리 엄마는 늘 몇몇 친구를 거론하시며 '아유 지겨워. 맨날 시댁살이 고생한 얘기, 수십년이 흘렀는데 어쩜 만날 때마다 또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거야? 그 사람들 지치지도 않나봐.' 하신다.
'내 처지'에 대한 반복되는 이야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타인의 고통이 나에게는 지겨워지는 순간은... 참 마음 아픈 것이다.
이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어쩌면 내 이야기이기도.
아무리 말해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니 여러 번 말해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지만, 상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오히려 나의 그 얘기들을 반복적으로 감당하던 친구들과만 멀어진 것 같다. 다들 삶의 다음 단계로 갔다.
과거에 사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라고 하고
이미 변화를 시킬 수 없는 일에 매달려 현재를 망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라고 하고
상대하기 괴롭고 가장 견디기 힘든 존재는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이라고 다들 말한다.
하지만 말하고 말해도 풀어지지 않는 응어리,
나는 이쪽에 더 공감하는 편이다.
툭툭 털고 가라고 어쩌면 그렇게 다들 쉽게 말할까.
그러면서도, 누군가 만날 때마다 또 그 이야기 또 그 이야기...
내 얘기가 아닌 이상 남의 이런 이야기는 듣기가 점점 싫어지고 '제발 그만 하고 이제 거기서 나와라' 말해주는 게 더 쉽다는 것도 안다.
아무거나 창조해내도 다 기삿거리가 되는 헐리우드에서 사실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고... 내가 대체 어디서 봤는지도 기억이 애매하지만, 오래 전 브래드 피트와 제니퍼 애니스턴이 헤어졌을 때 브래드 피트가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하고 털어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결국 부부 사이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나도 종종 생각한다. 내가 내면을 너무 많이 열어보인 친구들과는 오히려 멀어지지 않았나...하고.
어떻게든 한 번은 뱉어냈으면 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그냥 묻어두고 가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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