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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간 내가 본전도 못찾겠어"
이것도 번역으로는 느낌이 완전히 전달이 안 되는, 꽤 한국적인 단어라고 생각하는데...





모든 것을 다 주고, 다 나누고, 니 것이 곧 내 것이었던 관계가 틀어지면...
갑자기 '본전'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꽤 공통적인 현상같다.
누가 안 시켜도 스스로 내 시간 쓰고 돈을 쓰다가
어느 순간 그게 손해같고 아까워지는 것.


"처가 돈으로 그동안 잘 살았으니 나대지 말고 도장 두고 나가요"



"본전" 생각이 나면 건강하지 않은 관계가 되고
"본전" 생각이 들지 않는 동안은 행복함을 유지할 수 있다.


최근에 "아이를 낳지 않을 거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과연 필요한가" 라는 주제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고 한 생각이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시댁 • 의무 • 추가되는 인간 관계 싫어. 애 안 낳을 거면 연애만 하지 뭣하러 결혼함?" 이라는 글을 썼더라. 

그 글들 속에는 '내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 허망하고 착취 당할지 모르는 인간 관계'에 대한 큰 두려움이 있었다. "본전"찾기 어려운 관계.

그런데 신기한 건 자식을 낳아도 굉장히 "노력에 비해 허망하고 착취당하는" 인간 관계가 생길 수 있는데 그것만은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아이 인생 초반 몇 년은 부모가 매달리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고, 자란 뒤 수십년까지도 나의 모든 우선 순위를 독점하는 인간이지만 하지만 누구도 그 관계를 착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그대로 "본전"을 생각하지 않는 관계. 그래서 부모-자식 간의 사랑이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고 하는가보다.

그지같은 남편 시댁 만날까봐 다 싫은데
그지같은 자식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는 게 신기했다.

자식에 대해서는 "본전도 못 찾는다"생각을 거의 안 하고, 자식에 대해서는 손해 엄청 보는 게 다 용서가 되거나 아예 내가 지금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하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 "순수한 눈망울이 아무 이유도 없이 저를 사랑해주는 걸 느껴보셨나요?" 라고 하는데, 이건 본인이 지금 이 아이 인생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조차 잊고, 그래서 이 아이는 왜 날 사랑할 수 밖에 없는지조차 잊고 느끼는 행복이다. 🧑‍🍼

"본전 생각하면서 자식을 어떻게 키워?" 하기에는, 사실 결혼 생활도 어떤 인간 관계도... 모두 본전 생각하면서 지속하면 안 되는 것들인데, 다들 손익 계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 "본전 생각 안 나게 만드는 게 결국 사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마음이 흐려지면 누구나 본전 생각한다. 시간 아깝고 돈 아깝고 마음 아깝고.

자식은 결국 내 몸에서 나왔기에, 너무나 초월적 존재라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그지같은" 자식도 다 품을 수 있는 것.

내 몸에서 나온 게 아닌, 뭔가 이질적이고 다르게 살아온 존재를 '본전 생각 안 하고' 평생 서로 품어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이게 더 인생의 경이로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확률도 거의 희박) 

대부분의 경우, 자식과의 만남을 인생을 뒤바꾸는 체험 - 한 단계 인간으로 더 성숙하는 체험이라고 보는 듯하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이런 자녀 양육 분야에 대한 어떤 심도 깊은 경험도 없어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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