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30의 저주



비행기 기종 중에 에어버스330을 좋아하는데, 이코노미석 배열이 2-3-2인 흔치 않은 기종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창가 좌석을 선호하는데, 3-3-3 같은 좌석 배열 기종의 경우 창가에 앉으면 화장실 가기가 너무 힘들다. 2명이 우루루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a330은 창가에 2명만 앉는 몇 없는 기종이라 덜 답답해서 좋아한다.

하지만 a330은 생산된 지 오래된 기종이라.. 이번에 두 구간을 탔는데, 한 구간은 심지어 25년 된 비행기였다. 그래도 다행히 내부는 최신으로 리노베이션한 듯.

문제는 두번째 구간, 인천행 비행기에서 발생.🥴😵😵‍💫
2인 좌석에 앉은 장점이 모두 사라짐.

내 옆에 앉으신 분의 한국 e-sim구입을 도와드리려다가 1시간 이상 고문당함. 바레인 사람인데 목소리도 엄청 커서 내 개인 정보가 쩌렁쩌렁 주위에 다 퍼짐. 내 좌석 반경 약 두줄 이내의 모든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알았을 듯.
내 이름을 잘못 알아들어서 "미라-?" 라고 부르길래 그냥 미라라고 알도록 놔뒀다. 자기가 들어본 한국 이름 중에 없는 이름이라며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미라라는 한국인 배우도 있고 테니스 선수도 있다며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했다.🤐 알라신..내 거짓말을 용서하소서.

그 아저씨가 밥은 조용히 혼자 먹긴 하더라만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여서 갑자기 입맛도 싹 달아났다. 밥도 조금 먹다가 그냥 덮었다. 
게다가 내 뒤에 앉으신 분은 농담 아니고 10초마다 한번씩 코를 훌쩍이거나 킁- 소리를 내는 분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눈을 질끈 감고 앉아서 간격도 세어 봤다. 짧으면 5초, 길면 20초... 나도 미치겠는데 바로 옆에 앉으신 분은 어찌 버티시는지...장거리 비행은 어찌 하시는지. 이런 경우에 제일 힘든 건 본인일 수도 있지만, 주위 사람들도 계속 듣고 있기가 너무 힘들다.

바레인 아저씨의 질문 공세를 막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휘적휘적 in-flight entertainment 음악 섹션을 찾았다. K-pop의 방대한 섹션이 따로 있었다.


이 모든 소음을 잠재워 줄 그들의 음악이 있다.
볼륨을 높여서 소리는 크게 귀에서 울리는 와중에도 자는 척 하면서 왔다. 중동 아저씨가 말 걸까봐 무서워서.

내가 자는 척을 하니, 이 아저씨도 결국 잠들었는데...그러고 나니 화장실에 가기 편하게 2인 좌석에 앉은 것도 도움이 안 됐다. 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는데, 이 사람을 깨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해졌다. 비행은 1시간 반 정도 남았는데 참을까 하다가 결국 깨워서 갔다 왔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자는 척했다.

예전에도 중동 선수단 통역 일했다가, 이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데 거리낌이 없고 뭐가 예의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선이 동아시아인과 상당히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는 사람들 같다. 이번에도 다시금 그 편견이 강화된다.

처음에는 인천공항 도착 후 e-sim 활성화를 도와드릴 생각이었는데, 3시간 동안 자꾸 사람을 툭 치는 데다가 원치 않는 수다 공세를 당하고 나니 질렸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길이 갈라지는 입국 심사대에서 부리나케 도망쳤다. "이따가 여행자 안내 센터에서 문의해봐라~~"라는 말을 남기고. 

인천공항이 요즘 외국인 입국 심사 줄이 길기로 악명높으니까 내가 먼저 재빨리 도망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짐도 너무 안 나온다. 20분쯤 지났을까... 저 멀리서 자신을 '하싼'이라고 소개한 그 아저씨가 나와서 두리번두리번 나를 찾는 것 같았다. 이러저리 그 아저씨 반대쪽 사각지대 기둥 뒤로 피하다가 내 짐이 나오자마자 픽업해서 도망나왔다.

캐세이 퍼시픽 항공사, 이용할 때마다 좋은 일이 있어서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이번에 정말 영혼이 빠져나가는 비행을 했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
옆에 아저씨는 계속 미라~ 미라~ 타령을 하고 뒤에 아저씨는 5초마다 킁킁거리고...
탈 때마다 좋은 일이 있어서 괜히 좋아하는 항공사였는데, 그동안 모든 운이 좋았던 게 이 비행으로 상쇄되나보다. 이건 항공사 잘못이 아닌데도, 앞으로 탈 때 뭔가 "괴로움"과 연결될 것 같은 기분. 



으악.
처음에는 "내가 외국에 도착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누군가 나처럼 도와주면 좋겠다" 라는 생각에서 나도 도와주고 싶었는데, 나중에는 영혼이 다 빠져나가서 공항에서 도망쳐 나왔다. 하지만 근래 한 10년 중에 영어를 가장 많이 말한 3시간이기는 했다. 동시에 내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태어나서 가장 후회된 날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너 영어 할 줄 알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노 잉글리시~~ 답했으면 3시간 동안 조용하게 왔겠지.
👼
A330 운항 노선을 타게 되어 좋았었는데. 
괴로움만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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