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친구




보스턴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다.
예전 미국 여행을 했었던 외사촌 말처럼, 유난히 중장년층은 '하버드대학교'에 환상이 있다는 게 사실인 것 같다.

하버드 교정을 걷고 싶어하시던 엄마를 모시고 학교를 한바퀴 돌고 나왔는데, 화장실이 갑자기 가고 싶었다. 그 전에 들렀던 카페에서 얼음 가득 레모네이드를 먹은 게 실수였다. 그런데 보스턴의 스타벅스나 기타 등등 가게의 화장실 문에는 모두 비밀번호 패드가 달려 있었다. 여기저기를 전전해도 모두 그랬는데, 그냥 구매고객인 척 아무렇지 않게 비밀번호를 묻는 천연덕스러움이 나에게는 없었다.

구태여 화장실 문에 비밀번호를 모두 지정해놓은 것은, "뜨내기 관광객은 우리 화장실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의미일텐데, 그 '뜨내기 관광객'인 내가 비밀번호를 물어본다고 알려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를 따라서 가족들을 끌고 다니기가 미안해서 가족들을 길거리의 휴대전화 충전소 앞에 두고, 나 혼자 화장실을 찾아나섰다.

모든 가게의 화장실 문마다 비밀번호가 있었고, 결국 하버드 광장에서 약간 거리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손님이 드문 스타벅스에서 $5가 넘는 비싼 주스를 하나 구입했다. (결국 화장실 이용 비용이 6천원인 셈이다😓) 비밀번호를 물어보려는 찰나에 다른 누군가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래도, 이제 내가 "공식적으로"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 확보되었다는 안도감에 일단은 그 스타벅스를 나와서 길거리에서 충전 중인 엄마, 언니에게로 갔다.

"화장실 성공했어?"

엄마의 질문에 우물쭈물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얼버무렸다.

빠릿빠릿 천연덕스럽게 화장실 비번을 물어보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못 하더니, 한참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음료수 병을 하나 들고왔는데도 여전히 화장실을 가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밝히자니 엄마한테 비난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니면 모든 일에 서투르고 소심한 내 자신의 모습을 들키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가족들을 이리저리 화장실로 끌고 다닌 것도 미안한데, 아직도 화장실 해결을 못했다는 것을 말하기가 싫었다. 나도 나지만, 우리 엄마도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은 피드백을 주는 분이 아니다. 우리 가족은 나까지 포함, 모두 '비난 본능'이 강한 사람들이다.
아무튼 가족을 다 데리고 그 스타벅스로 와서 일단 가족들도 쉬고, 나도 얼마 뒤 화장실을 다녀왔다.

몇 분 뒤에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면서 다른 일로 논쟁이 생겼을 때, 엄마가 "화장실 갔다 왔냐 이 질문 하나에도 답을 못 하고 우물거리는 니가 너무 답답하다" 라고 재차 거론을 하시기에, 그냥 지나간 줄 알았던 이 일이 엄마 맘속에 남아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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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온 뒤 두 달 가까이 지나, 친구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그 친구는 단번에 "오오... 나같아도 그 상황에선 엄마한테 그 말 못해. 아직 화장실 못 갔다왔다고" 라고 공감해주었다. 마치 본인도 그 상황에 놓인 것처럼 이해해주었다. 그래, 우리 이렇게 비슷하게 소심하니 우린 친구인 거지. 내가 너무 바보 같은 건가 우울했는데, 마음이 놓였다. 그 친구에게 "야, 니 애들이 네 질문에 대답 못 하고 우물거릴 때가 있으면, 걔들도 그때 마음 속에서 여러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이해해줘라." 라고 했다. 


하느님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어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어 사람 곁에 두셨다는 말이 있는데,
엄마가 다 해줄 수 없는 일을 위해 또 친구를 만들었나보다.

나보다 윗사람이기에,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존재이기에 약간은 어려운 관계인 부모님,
그래서
비슷한 나이에서 같은 시각으로 같은 눈높이로 봐주는 것은 역시 친구만한 존재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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