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생각생각생각




내가 공들여 번역해놓은 외국 기사 한국어 버전들이 출처를 밝히지도 않은 채 여러 게시판을 떠돌아다니는 것을 본 입장에서....

아래 " "부분을 번역해 올린 곳의 출처를 밝혀드리고 싶지만, 대체 최초 출처가 어딘지 모르겠는... 웹을 떠돌고 있는 '레버넌트' 최초 시사 반응 (2015년 11월)




"나의 친구는 운좋게 PGA 시사회에서 영화를 봤다. 그는 그것이 환상적인 영화라고 확인해주었다. 그가 말한 것들:
-레오는 마침내 오스카를 수상할 것이다
-레오는영어 대사를 10줄보다 적은 분량으로말한다.
-톰 하디 또한 정상급이며 후보에 오를 것이다.
-긴 영화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루베즈키는 최초로 오스카 촬영상을 3연속으로 수상할 것이다.
-40분 동안 대사가 없는 구간이 있다. 그러나 그는 간신히 그것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 GoldDerby.com"




첫 시사회에서 나온 모든 예언이 들어맞았던 이 영화.
레버넌트가 2016년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촬영-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톰 하디의 후보 선정까지 정확히 예측.

레버넌트를 보면 빼어난 영상과 함께 2시간 반의 고군분투는 느껴지지만, 대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에서 이 수상에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것 같다.

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워낙에 이냐리투 감독을 좋아했었다.
그 시절, 내 생애 가장 먼저 산 DVD 목록에 21grams, amores perros 등이 들어있다. amores perros는 중국에서 싸게 샀음에도 불구하고 뮤직 비디오 4편, 코멘터리 등이 들어가 있는 스페셜 에디션이었는데 ㅜ .ㅜ 곁에 두고 보기 위해 스리랑카에 가져갔다가 습한 그곳의 날씨에 곰팡이인지 뭔지가 DVD에 들러붙어서 몇몇 부분이 재생이 되지 않는다. ㅠ.ㅠ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에피소드가 통으로 날라갔다. 다시 구하기 힘든 버전일텐데 아쉽다. 극장에서 우연히 amores perros를 본 이후로 그 독특한 구성과 주제를 상당히 좋아했다. amores perros 같은 경우에는 특히 'betrayal'이 두드러지지만, 보통 그의 작품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어그러지는 인생에 대해 다룬다.

21grams의 시간 순서를 뒤섞는 방식(많은 평론가들에게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라는 평을 들었던) 등으로 마니아층 한정판 영화를 찍는 것 같아, 사실 음지에만 있을 것 같았던 이 감독이 작년에 '버드맨'으로 완전 주류로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장편 영화 데뷔작부터 전성기에 이르는 거의 모든 작품을 찾아서 본 감독이 드물어서인지 왠지 모르게 애정이 간다.  이번에 레버넌트로 '이름값하는 상'은 작년보다 더 휩쓸고 있지만, 찬사는 조금 더 줄어든 게 뭔가 안타깝다.

사실은 나도 레버넌트 개봉 첫 날 극장에 가서 봤을 때, 여태 본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울림이 덜 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버드맨 보고도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었음;;;;;) 그런데 거의 그것은 모두에게 비슷했던 모양. 거듭되는 이냐리투 감독의 수상 레이스에 동의를 못 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남우주연상에도 동의하지 못 하는 의견이 많다. 그래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과 조사(?)를 해보게 된다.


우선, 디카프리오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찍기 전에 이미 '레버넌트'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쳤지만, 매튜 매커너헤이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지켜봐야만 했던 레오가 절치부심하고 '아카데미를 위해' 계약한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abc NEWS 인터뷰에서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찍기 전에 레버넌트에 사인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레오가 2007년부터 공을 들여온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찍기 시작한 것은 2012년 8월이고, 레버넌트의 캐스팅 이야기는 2011년 11월부터 시작한다.)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가 지금만큼 완벽히 주류로 올라서지 않았던 2011년 그 시점에서도 정상급 헐리우드 관계자들이 영화를 한 번 같이 찍어보고 싶어하는 감독 명단에 이미 그 이름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레오와 계속 작업 중이던 마틴 스코세지가 Amores perros를 상당히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영화에 대한 상을 받으러 2000년에 미국에 온 이냐리투 감독을 스코세지 감독이 개인적으로 초대해 만났다고 한다. 레버넌트 뉴욕 시사회에서 Q&A 시간의 사회를 본 것도 스코세지 감독이다.


http://www.purepeople.com/media/leonardo-dicaprio-martin-scorsese_m2010248



이냐리투는 2003년 헐리우드 데뷔작부터 숀 펜. 베니시오 델 토로와 함께 찍었다. 숀 펜은 영화 21grams를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연락을 해왔다고 하며, 톰 하디가 연기했던 피츠제럴드 역할로 원래 숀 펜이 레버넌트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브래드 피트 - 케이트 블랜칫은 2006년 당시 이냐리투 영화의 특성(세 가지의 이야기가 교차하는)상, 단독 주연급이 아닌데도 [바벨]에 부부 역할로 참여했다.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 때문에 디파티드의 역할을 포기했다고 하며, 케이트 블랜칫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누워있어야 하는 역이라 출연을 망설였지만, 이냐리투 감독과 한 번 일해보고 싶어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멕시코 배우들과 찍은 장편 데뷔작 amores perros 빼고, 이후 이냐리투 감독은 연출한 모든 영화마다 출연 배우들 중 적어도 1명 이상을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로 올려놓았으며(심지어 일본 배우까지!), 배우로 하여금 인간의 바닥을 서서히 긁어나가는 치명적 연기를 하도록 유도한다.


Independent Spirit Awards 2015에서 Birdman에 작품상을 시상하면서 정말로 즐거워하는 케이트 블랜칫



특히, 거의 모든 장면이 끊김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하기에 실수가 있어서도 안 되고, 유려하게 모든 호흡이 맞아들어가야 했던 '버드맨'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그 영화에 발을 담가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배우로서 황홀한 체험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래서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마이클 키튼은 수상 소감에서 "알레한드로, 당신이 다음 영화 찍는다고 하고 시간 장소 말하면 (오디션을 뜻하는 것일 듯?) 여기 이 시상식장에 있는 배우 중에 거기 안 나타날 사람이 없다." 라고 말한다. 이 말처럼 실제로 배우라면 한번쯤 같이 작업해보고픈 감독일 것 같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 위해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그러한 이유로 레버넌트를 찍었다고 밝혔다. ("I think there’s a hunger for audiences to see something completely extreme and difficult.”)


하지만 2011-2012년경 그와 같이 영화를 찍고 싶은 감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던 디카프리오를 더 원했던 것은 이냐리투 감독일 것이다. 레오가 다른 영화로 너무 바빴기 때문에, 이냐리투는 버드맨을 먼저 찍었다.  결국은 레버넌트에서 너무 잘 만나서.... 최근 시상식 때마다 서로 "여태까지 중에 당신이 최고야!"를 외치며 그동안 함께 작업한 감독과 배우들을 깔끔히 묻어버렸다?!?!?

몇몇 심사위원이 평가하는 우리나라 영화제와는 달리, 미국 아카데미는 다수의 '동료 영화인' 투표로 상을 준다는 점이 다르다. 관객으로서, 평론가로서 그 영화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으로서 영화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왠지, 자기가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그 지점에 가 있는 영화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관객에게는 연기 과잉, 이미지 과잉, 스킬 과시...라고 보일지라도, 동료 영화인의 입장에서는 그 장면들을 빚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과 재주가 필요한지를 더 잘 알기 때문에 디카프리오, 이냐리투 감독과 루베스키 촬영감독에게 표가 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스티브 잡스'는 패스벤더의 영화인데...그가 혼자 멱살 잡고 영화를 끌어가는데......
'데니쉬걸'은 에디 레드메인 빼면 시체인데..... 이런 연기에 상 안 주고 왜 대사도 없는 디카프리오?? "

이런 글도 많이 보았는데, 어쩌면 그것과 "같은" 지점에 레오가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레버넌트'도 디카프리오의 영화니까. 레버넌트 최대의 볼거리는 사실 촬영 기술과 그 풍광이다. 이 엄청난 이미지에 사실 레오 정도의 스타성 아니었으면 영화 전체가 전복되었을지도 모른다. 레오의 절친이라는 토비 맥과이어가(예로 들어 미안하지만)  눈밭을 기고, 들소 생간을 씹고, 곰과 사투를 벌였으면 레오만큼 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현란한 촬영 기술과 압도적인 자연의 풍광이 두드러지는 이 영화에서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에게 관심을 끌어오며 동물 해부 기술(?)까지 선보일 배우는 별로 없다. 레오가 자신의 연기력과 철저한 노력, 스타성 자체로 영화를 정면 돌파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결국 패스벤더, 레드메인, 디카프리오 각자 상을 받아야 할 이유는 서로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스타성이 어마어마한 배우들은 거의 '여태까지의 누적' '공로상' 처럼 오스카를 받아가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줄리아 로버츠도 '압도적'연기 보다는 '줄 때가 됐다' 싶을 때 마침 탄생한 평범을 약간 웃도는 연기로 오스카 주연상을 타 갔다. 내가 보기엔 블라인드 사이드의 샌드라 불럭의 연기도 '이게 상을 탈 정도의 연기인가' 싶기는 했지만 그해 대체적인 평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식으로 상을 타게 되면 상을 탔던 당시에는 그 수상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해가 갈수록 연기가 평범했다고 평가가 하락한다. 솔직히 디카프리오도 이 길을 걸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미국 잡지에서 'oscarlogy'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본다. 단순히 영화 내 성취도로서만 분석하다가는 답이 안 나오는, 영화 자체보다는 외부 요인도 많이 겹치는 학문과도 같은 영화상이다. 그래서 아마도, 유아인이 미국 배우였다면 상 타고 10분간 그 역학 관계에 대해 소감을 늘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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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there is a storm and you stand in front of a tree, if you look at its branches, you swear it will fall. But if you watch the trunk, you will see its stability."


영화 중에서, 주인공의 죽은 아내의 환영이 나타나서 계속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이것도 감독이 하려고 했던 중요한 이야기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디카프리오가 갖은 고난을 겪을 때, 그와 대비되어 미동도 하지 않는 자연의 풍광 화면이 바로 다음에 나타나는 이유 아닐까. 우리는 눈앞의 여러가지 사건에 흔들리는 것 같지만 (you swear it will fall),  결국 그 밑에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you will see its stability).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려는 엄마곰, 자식을 죽인 자를 찾아나서는 레오나르도, 끌려간 자신의 딸을 찾아다니는 인디언 족장....모두의 뿌리는 같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속편이 이어지는 히어로 무비에 출연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배우 중의 하나인 디카프리오, 그것을 두고 이냐리투 감독이 농담으로 '레버넌트 2 기획 중이다' 라고 말했다던데....... 진짜 '레버넌트 2'가 만들어진다면 자신들을 지키려다가 죽임을 당한 엄마 복수를 위해 디카프리오를 찾으러 나선 꼬마 곰 두 마리 (영화 장면에 2마리가 지나간 것으로 기억)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가 되어야할지도.


참...여담으로
이냐리투나 루베스키의 영상이 과잉이다, 과시적이다...라는 평도 많은데, 멕시코에 한 번 가보고 이 나라는 '시각적인 것'에 특화되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물, 미술품 이런 것이야 당연한 것이고...
하다못해 입국 신고서마저 예쁘고 (회색 외에도 멕시코 국기의 색을 넣었다. 세 가지의 대비되는 색감을 넣은 입국 신고서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다), 호텔 카드 키마저 장식이 뛰어난 나라.







 
























시각적으로 남다른 잠재력을 타고난 사람이, 더불어 이런 토양에서 자라게 되면 남들보다 더 예민하고 탁월한 시각적 감각을 지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멕시코 도시를 한 번 둘러보고 나서, 멕시코 출신의 아카데미 감독상 3연패(알폰소 쿠아론 감독 포함)와 촬영상 3연패가 그냥 이루어지진 않았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힐러리 스웽크는 만 30살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했지만, 현재 꾸준한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지는 못 하다. 이냐리투 감독도 아카데미상을 2년 연속 수상했지만, 그것이 앞으로 거장이 되는 것을 약속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료 감독들이 '꼼짝 못 하고' 2년 연속 그에게 표를 던진 것을 볼 때, 현재까지는 '눈 높은 자'들의 까다로운 시선도 잘 통과한 것 같다.  (동료 감독들이 투표하는 DGA(감독조합 시상식)에서 영화 감독상을 2년 연속 수상하며, 이냐리투는 유일하게 이 시상식에서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시상식에 항상 동반 참석하는 그의 아내도 이 상을 두번째 받을 때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문가'들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인가보다.)


다음 작품에서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지, 항상 최상급의 배우들과 작업했는데, 다음에 같이 작업할 배우는 누구인지 궁금한 감독이다. 이제는 6편의 장편 영화를 찍고 10명의 배우를 오스카 연기상 후보에 올려놓은, 본인은 오스카 트로피를 4개 가진 감독. 앞으로 그가 연출할 작품에는 더 엄격한 잣대가 들이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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