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그것을 알기 전에 만나는 것




지금 나는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TV 육아 예능에서 아기들을 보는 것보다 TV에서 동물의 움직임을 보는 게 더 좋다.


지금은 기르고 싶어도 반려동물을 기를 수 없지만
어릴 적 우리집에는 '재롱이'라는 개가 있었다.

1985년엔가 태어났고, 이듬해 재롱이가 강아지를 낳는 것을 직접 지켜보기도 했다.
난 그래도 많이 쓰다듬어주고 이뻐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롱이는 짧은 줄에 항상 묶여있었다.
그리고 90년에 마당있는 집을 놔두고 전셋집으로 이사오면서 재롱이는 그 집에 그대로 남겨두고 떠나와야 했다.

그렇게 곁에 있을 때는 개에 대해 잘 몰랐다.
몇달 뒤? 1년 뒤? 무슨 일이 있어 예전 마당있는 집을 다시 방문했을 때
재롱이는 펄쩍펄쩍 뛰면서 우리 가족을 반겼다. 하지만 나는 우리 얌전하고 순했던 재롱이가 '날뛰는'것을 보면서 그냥 의아했던 것 같다. '신기하네? 멀리서 냄새만 맡고도 우리인 걸 알아채고 흥분하네?'

그뒤로는...
생사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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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중국에서 일을 시작했다.
향수병이라는 게 없는 나는 그리운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던 겨울, 2003년 말? 2004년 초?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天津거리의 어떤 강아지를 보는 순간 갑자기 재롱이가 떠올라 눈물이 흘렀다. 내가 중국에서 지낸 8개월 동안 거의 유일하게 눈물을 흘린 순간일 것이다.
그때부터 갑자기 재롱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잘못했다는 걸 깨닫는데 14년이나 걸렸다.


늘 짧은 줄에 묶여있었던 재롱이는 가끔 아빠가 줄을 풀어주면 너무 좋아서 정말 미친듯이 마당을 질주하곤 했다. 난 그게 너무 무서웠다. 우리 재롱이같지가 않았다.
재롱이를 만나지 못한지 십여 년이 지난 다음에야 새삼 그렇게 마당에 묶어만 놓았던 게 너무 미안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오랜 만에 만났을 때 그렇게 반가워하던 것을 몰라주고 신기해하기만 했던 것.
늘 보던 가족이 어느날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았을 재롱이는 얼마나 슬프고 무서웠을까.
나는 그때 '개'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요즘도 재롱이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
그때 알았다면, 재롱이의 줄을 풀어줄 텐데.....
오랜 만에 만나서 그렇게 펄쩍펄쩍 반가워했을 때 나도 미친듯이 같이 반가워해줄 텐데...



나는 너무 몰랐다.
어떤 다른 것들도 그렇게 서로 너무 모를 때 만나서 이렇게 아픔만 남기고 스쳐지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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