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뒷쪽 자리에 앉았다.
압구정, 청담쪽을 지나가던 길에 멋지게 차려입은 남자가 한 명 탔다.
그가 뒷쪽으로 걸어올 때까지 흘낏 보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인 차림새였다.
트렌치 코트와 손에 든 서류 가방. 그리 훤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외모에 신경쓰는 사람임은 분명했다.
압구정, 청담쪽을 지나가던 길에 멋지게 차려입은 남자가 한 명 탔다.
그가 뒷쪽으로 걸어올 때까지 흘낏 보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인 차림새였다.
트렌치 코트와 손에 든 서류 가방. 그리 훤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외모에 신경쓰는 사람임은 분명했다.
내가 그의 옷차림새를 계속 쳐다본 것을 스스로 민망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계속 걸어와서 내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그런데...
단정히 빗은 그의 뒷머리에 둥지를 튼 왕비듬.
'으악...'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 살짝살짝 흩어져 있는 눈송이들...
앞모습을 아무리 잘 꾸며도 뒷모습에서 모든 점수를 다 깎아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으악...'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 살짝살짝 흩어져 있는 눈송이들...
앞모습을 아무리 잘 꾸며도 뒷모습에서 모든 점수를 다 깎아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버스 자리가 다 차서 자리를 옮길 데도 없었고, 계속 내 눈앞에 그 비X은 왔다갔다 했다. 나도 뭐 아주 깔끔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냥 보고 있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솔직히 약간 역했다. 트렌치 코트 뒷덜미에 떡하니 박혀있는 "T I M E" 로고. (남동생이 이 얘기 듣더니, 이 브랜드 남성복도 살짝 고가라고 했다.)
비싼 옷도 소용이 없구나.
비싼 옷도 소용이 없구나.
첨에는 너무 웃겨서 누구한테 사진찍어 보낼까 생각도 해봤다.
'아니야, 찰칵 소리가 날 거야. 이 남자 자기한테 관심있다고 착각할지도'
영업을 뛰시든지, 데이트를 가시든지, 이 상태로 가면 점수 엄청 깎일 텐데...살짝 얘기라도 해줘야 하나?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정류장에서 내리기 직전에 내 옷의 목 뒤 상표를 확 뒤집고 내렸던 얼굴 모를 사람 에피소드도 기억났다. 보다보다 얼마나 뒤집어주고 싶었으면 내리기 직전에 날 기습공격 하고 내리셨을까...난 그 사람 얼굴도 못 봤다.)
'아니야, 찰칵 소리가 날 거야. 이 남자 자기한테 관심있다고 착각할지도'
영업을 뛰시든지, 데이트를 가시든지, 이 상태로 가면 점수 엄청 깎일 텐데...살짝 얘기라도 해줘야 하나?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정류장에서 내리기 직전에 내 옷의 목 뒤 상표를 확 뒤집고 내렸던 얼굴 모를 사람 에피소드도 기억났다. 보다보다 얼마나 뒤집어주고 싶었으면 내리기 직전에 날 기습공격 하고 내리셨을까...난 그 사람 얼굴도 못 봤다.)
바로 30cm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안 보려고 혼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문자 메시지를 찍었다. 그런데 보낼 사람이 없었다. 이런 일상을 공유할 사람...
아, 나랑 웃음 코드가 비슷한 사람은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새에 그 남자는 신사동에서 내렸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셨길....
이런 고민을 하는 새에 그 남자는 신사동에서 내렸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셨길....
한 달도 넘은 옛날 일인데...나중에야 혼자 이런 상상도 해봤다.
내가 그 사람 미래를 걱정해서 작은 쪽지를 쓴다.
그 남자가 내리기 직전에 살짝 쥐어준다.
그 남자가 '힛! 또 나 옷 잘 입는 건 알아가지고...'라고 생각하며 쪽지를 펴보면 거기엔 이런 내용이 써 있다.
내가 그 사람 미래를 걱정해서 작은 쪽지를 쓴다.
그 남자가 내리기 직전에 살짝 쥐어준다.
그 남자가 '힛! 또 나 옷 잘 입는 건 알아가지고...'라고 생각하며 쪽지를 펴보면 거기엔 이런 내용이 써 있다.
'저기요,
당신의 뒷머리에 비듬이 너무 많습니다.
보기가 좀 안 좋았어요.
어디에 가시든, 정리 좀 하고 가시길 바랍니다.
하시는 일 망치실까 걱정 되어서 결례를 무릅쓰고 썼어요'
당신의 뒷머리에 비듬이 너무 많습니다.
보기가 좀 안 좋았어요.
어디에 가시든, 정리 좀 하고 가시길 바랍니다.
하시는 일 망치실까 걱정 되어서 결례를 무릅쓰고 썼어요'
이게 바로 비ㄷㅡㅁ과 당신의 이야기이다.
- 등록일시2011.01.18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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