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아카데미 시상식 생각....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수상 정정" 소동을 낳은 PWC의 파트너급 회계사 Brian Cullinan은 2015년 시상식 무대에도 오른 적 있다.
당시 사회자였던 닐 패트릭 해리스가 "오스카 예측 쇼"를 준비하면서
그 예측이 담긴 봉투를 브라이언 컬리넌에게 보관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시상식 후반부에 이 회계사를 무대로 불러내면서 닐 패트릭 해리스는 "혹시 맷 데이먼 닮았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나요?" 하면서 농담을 했었다. '들어본 적 있다'하고 하면서 좋아하던 기색이 역력했던 이 사람....


누구보다 먼저 오스카 시상식의 결과를 전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며, 그 수상자의 이름이 담긴 봉투를 건네는 사람이라는 중요한 위치였지만 음지에서만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이때부터 양지로 올라오면서 어떤 종류의 "연예인병" 비슷한 것이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게 나의 짐작. (그냥 내 생각. 당연히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실제로 컬리넌은 오스카 특수(?)를 노리며 2015년 12월에 트위터에 가입했다(2015년 2월에 무대에 한 번 등장한 뒤로).
오래전부터 트위터를 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아마 2015년 이후로 식당 같은 곳에서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면서 으쓱하는 마음도 생기고, 트위터 명사가 되고픈 마음도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Cullinan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소설써서 죄송 ㅎㅎ)


몇몇 사례를 보아오면서, 자기 분야에서 직업적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 다음으로 갈망하는 것이 '유명세'라는 걸 알았다. 자신의 성공을 누군가 알아봐주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자기 분야에서 이미 탁월한 위치를 확보해서,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을 것같이 느껴지는 사람들이....social media에서 굳이 연예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것을 종종 봤다.


현재 직함이 Chairman of PwC’s US Board and Managing Partner of PwC’s Southern California, Arizona & Nevada Market 인 브라이언 컬리넌은 몇 년간 이 일을 차질없이 진행해오면서, 어느 정도 자부심도 있었을 테고...
트위터에 누구보다 시상 순간을 빨리 올릴 수 있는 '내부자'라는 들뜬 맘도 생겼을 테고..





'famous'를 원했으나 'infamous'로 수식어가 바뀌는 순간    variety.com 




컬리넌은 작품상 수상자 봉투를 전달해야 되는 중요한 순간에 여우주연상 수상자 에마 스톤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느라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상 수상자가 담긴 봉투가 아닌, 여우주연상 수상자 이름이 담긴 back-up 봉투를 시상자 워렌 베이티와 페이 더너웨이에게 건넸고, 이들은 아카데미의 권위를 너무 믿은 데다가 (봉투에 분명히 Emma Stone - la la land 라는 작품상 수상작으로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써 있었지만, 머뭇거렸던 워렌 베이티에 비해 특히 페이 더너웨이는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원로배우들이라 순간적인 상황 판단력이 떨어져서 여우주연상 수상자의 출연작 이름을 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대혼란....



자신의 일에 자신감을 가질 때가 가장 위험하다.
나도 16개월간 매일 생방송을 하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짧은 제목을 하루에 수십 개씩 지어내는 일이었는데 "'작품'이다" , "XX보다 일을 더 잘한다" 라는 칭찬도 받았었고, 항상 파트너에 비해 매끄럽게 일을 완료했었다. 보통은 생방송 시작 직전에야 수십 개의 아이템이 완료되곤 했었고 생방송을 앞두고는 화장실에 잘 가지 않는데, 그날따라 시간이 많이 남아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변기에 앉으면서 '시간이 남아도네. 난 참 일을 잘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날 방송 사고가 얼마나 많이 터졌었는지... 나에게 고함이 난무하던 스튜디오가 기억난다. ㅎㅎ 자만심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실감하는 계기였다.


이 분도 너무 쉬운 일, 몇 년간 내가 잘 해온 일이라는 생각에서 방심을 했던 게 아닐까.
트윗 유명인사가 되고 싶었던 이 분은 이제 맡은 일에서 불명예 퇴진을 하며 (회계사인 것은 변함이 없겠지만 오스카 담당 지위에서 해고됨), 89년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에 최대의 오점을 남긴 사람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호명 실수는 사실상 페이 더너웨이가 했는데 어떤 해명도 하지 않은 채 무대에서 멀찍이 물러난 페이 더너웨이 대신에, 왜 이 사건에 워렌 베이티의 이름만 거론되는 것인가도 아쉽긴 하다.



한편으로는, 나의 다른 상상도 있다.
작년 2016 시상식은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남우주연상 수상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였고
내 기억에 분명히 여우주연상 -> 남우주연상 -> 작품상 순서로 시상이 되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사실상 디카프리오였기 때문에... 그가 가장 마지막 개인상 수상자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보통은 남우 -> 여우 -> 작품상의 순서를 거친다.

올해는 작품상 시상 이전 마지막 개인상 수상자가 에마 스톤이었는데, 그래서 그 봉투가 남아서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라라랜드가 작품상 수상자로 불리는 난리가 난 것이다. 만약 작년처럼 여우 -> 남우 -> 작품상의 시상 순서였다면..... 케이시 애플렉의 남우주연상 수상작이며 맷 데이먼이 제작자인 "Manchester by the sea"의 이름이 담긴 봉투가 마지막에 건네졌을 가능성도 있다.

시상식 사회자였던 지미 키멀은 몇년째 앙숙 이미지로 서로 장난질을 치고 있는 맷 데이먼 옆에 앉아서  "작품상 물먹었네"라고 놀리고 시상식을 마무리짓기 위해 카메라와 함께 관객석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 순간 만약 페이 더너웨이가 "작품상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고 했다면????   아마 의외의 수상에 지미 키멀도 당황했을 것이고, 많은 관객들이 지미 키멀의 장난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맷 데이먼도 믿을 수 없어서 봉투를 확인하다가 좀 더 이르게 실수를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이 상황을 상상해봐도 웃긴다. 윗 사진 속에서 지미 키멀에게 옆자리를 양보하고 앞에 나가서 서 있는 맷 데이먼의 부인은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을 듯 ....


지미 키멀은 본인의 장난만 준비하느라 사실 시상식 혼란 수습을 너무 못 했다. 이 상황을 정리한 것은 라라랜드의 프로듀서 조던 호로위츠였다. 우습게도 경쟁작에게 작품상을 시상하러 나와버린 꼴이 되었는데, 그 사람은 상황에 재빠르게 대처했다. 그리고 지미 키멀 본인이 나중에 밝힌 것이지만.... 당황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멀뚱히 서 있는 지미 키멀에게 신호를 보내, 진짜 작품상 수상작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가 수상 소감을 말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은 덴젤 워싱턴이라고 한다.

본분을 잊은 사람이 많아지면 초대형 행사도 우습게 마무리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이번 사건, 아마 앞으로도 수년간 패러디 소재와 자료 화면으로 쓰일 것이다.



'자신감'은 좋지만 '자만심'과 '功名心'은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실수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기에
비난보다는 그냥 웃어넘길 수 밖에.
브라이언 컬리넌도 지금 자책이 심할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점은 라이언 고슬링의 겸손함과 아량.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모든 피아노 연주를 직접 해냈지만, 사실 에마 스톤에 비해 주목을 못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는 영화 속 누나 역할을 했던 로즈마리 드윗과 함께 가장 마지막에 무대에 오르며 끝자리를 지켰다.







사실 조연 배우는 아무도 안 챙기고 주연 배우 먼저 무대에 뛰어올라가기도 바쁠텐데 가장 나중에 무대에 오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재작년에 버드맨이 작품상을 탈 때, 조연배우인 가 무대 끝에 버려진 듯 서있어서 나혼자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문라이트로 작품상 수상작이 정정되어서 다들 당황하고 있을 때 라이언 고슬링이 가장 먼저 문라이트 배우들을 축하해주러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걸 또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면, 라이언 고슬링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아서 꽁해있다가 작품상 수상작이 바뀌자 그거 쌤통이다 하고 가장 신났는지도 모르겠지만 ㅋㅋㅋ )




다들 당황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 혼자 웃고 있어서 화제가 된 라이언 고슬링 :)


%% 그리고, 한국 중계자는 앞으로 좀 덜 웃는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실황을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본인의 웃음소리만 ( 어머, 나 이 영어 농담도 다 알아들었어..호호호...같은 불필요한 웃음소리) 생방송으로 계속 들리는 것이 얼마나 이상했는지 알고는 있을까?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 감상은 여기 ---> http://mori-masa.blogspot.kr/2016/02/blog-post_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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