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후반, 스리랑카에는 ring cut이라는 문화가 있었다.
(나도 이제 스리랑카를 떠난지 오래 되어, 요즘도 이렇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 발신번호 뜰 정도의 시간만 주고 재빨리 끊어 부재중 전화로 번호를 남기는 것.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처음 나에게 이렇게 전화 번호를 남겼을 때는 '학생들이 용돈이 부족해 이렇게 하나보다.' 하고 내가 그 번호로 전화를 걸곤 했다. 그렇게 하면 학생들은 상당히 당황했다. 하긴, 나도 만약 "이탈리아어 초급반' 수강하고 있는데 이탈리아인 선생님이 나에게 전화하면 입이 안 떨어질 것 같다.
다시 물어보니 이 링컷은 그저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 '당신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 뒤로는 전화벨이 울리다가 순식간에 끊기는 링컷과 정말 통화를 하고 싶어서 하는 전화를 구별할 수 있게 됐다.
2년의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얼마 간은 '국제 전화 링컷'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울리고 끊기는 전화. 전화기를 켜보면 '+00--'으로 시작하는 긴 번호가 떠 있었다. 어느 순간 한 음만 울리고 소리가 딱 끊기면 '아, 링컷이구나'하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스리랑카에서도 잊지 않고 한국까지 링컷을 해주는 학생들이 너무 고마워서, 나는 안부를 묻는 국제 문자를 보내주곤 했다. 그때까지는 랑카에 무선 인터넷이라든지,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높지 않아 지금처럼 페이스북으로 생활상을 들여다 볼 수 없던 때였다. 2010년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흑백(?) 화면의 $40정도 하는 기본 기능의 노키아폰을 쓰고 있었다. 나도 그 폰을 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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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에 보면 스리랑카 문자인 싱할러 문자도 있다 :) |
수년이 지나...
오늘 갑자기 그 링컷이 기억났다.
여전히 학생들과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받지만
이제 나에게 링컷을 할 학생은 없겠지?
내 번호는 10년째 그대로인데...
모든 것이 직접적으로 보여지고 다 파악이 되는 페이스북보다
링컷의 그 수줍은 감성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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