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cket list'라는 영화 제목은 개봉 이후에
이 단어가 인간의 필수 목표라도 되는 것처럼 유행했지만
내 기억에 가장 남는 영화 속 장면은 그 bucket list 실행에 대한 것이 아닌, 아래 장면이다.
이집트로 여행 가서 피라미드를 보면서 두 주인공이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죽은 뒤 천국의 문 앞에서 문지기에게 두 가지 질문을 받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너는 삶에서 joy를 찾았느냐?
너의 삶은 다른 이들에게 joy를 주었느냐?"
(여기서 joy는 기쁨, 즐거움, 행복... 어느 한 단어에 담기보다 더 큰 의미라고 생각해서 joy로 남겨뒀다)
대부분은 두번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가 어려워 고민이 많이 될 것 같다.
어떻게든 내 인생의 joy를 찾을 수는 있지만 내 삶이 남에게 joy를 가져다 주었다고는 확신할 수 없을 테니까.
어제,
늘 남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 사람이었던 젊은 가수가
본인의 joy를 찾지 못해 괴로워해오다가....스스로 죽음을 택해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너는 삶에서 행복을 누리는 법을 깨달았느냐?
너의 삶은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었느냐?"
수많은 팬들이 yes!!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 두번째 질문의 답이 쉬웠는데
(본인은 yes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no였던 경우.
이런 경우도 있구나.
'타인의 삶'이 얼마나 알기 어려운 심연인지 새삼 더 느껴진다.
보통 우울한 사람은 1번, 2번에 모두 답이 안 나오는 경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1번이 yes여야 2번이 yes가 될 것 같은데,
2번 답에 무조건 yes가 나올 만한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1번 답을 못 찾아 고통을 겪는.....
주위 사람들...다들 손 내밀어주고 싶었겠지만
결국 혼자만의 싸움이라 너무 힘들었던 그 싸움.
그런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린 나이가 너무 어려, 그를 만난 적도 없는 나조차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게 한....
그래서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성취했느냐보다 더 중요했던 그 질문,
"Have you found joy in your life?"
나는 내 인생에서 어느 한 순간,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고,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았는데도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를 지나가다가 갑자기 인생이 감사하고 joy가 넘쳐흘렀던 경험을 기억한다.
'무엇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고 '그냥' 살아서 행복했던 날들.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 이 경험을 해봤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중국계 미국인 교수가 "congratulations!"라고 말해줬던 것을 기억한다. 보통의 한국 사람들에게서는 나오지 않던 반응.
부모들은, 내가 낳은 자식이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 외에...
미국 교수가 저렇게 축하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그저 네 인생 앞날의 부침과 별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렇다고들 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미취학 연령'일 때는 "그저 건강하면 돼." "난 사교육 관심없어." "난 그저 무조건 지지만 해줄 거야." 하다가 결국 '취학 연령'이 되어 레이스가 시작되면 동시에 다들 어쩔 수 없이 내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봤다. 물론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사회 구조가 그렇게 되어있으니까.
이런 성취와 경쟁 중심 사회에서, "아빠/엄마, 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알 수 없는 행복과 기쁨을 느꼈어요" 이런 말을 털어놓을 수라도 있는 부모-자식 관계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저 말을 듣고는 기뻐할 순 있더라도 다른 조바심이 날 것 같다. '그래도 대학은 좋은 데 가야 니 인생이 더 수월해질 텐데...' '좋은 직장 다니고 돈 버는 재미 알면 지금보다 백배천배 더 행복할걸?' '좋은 짝을 만나야 훨씬 더......'
그래도 태어나서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joy를 찾고, 그것을 나눠줄 수 있는 삶으로 끌어가는 것,
그리고, 밝고 태연한 사람이 속으로는 망가져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공감 능력 키우는 것.
*** 한 가지,
내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 점이지만.....
내가 위에서 말한 '아무 계기없이 그냥 행복했던 상태'를 겪었던 시기는
아주 낮은 노동 강도로 일을 하는 와중에 상대적으로 괜찮은 생활비가 입급되고 있었던 시기라는 것을 밝힌다.(단기간)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24시간 돈벌이에 시달리는데 '그저 행복함'을 느끼기란 매우 어렵다.
한때는 내가 스스로 행복을 찾은 것 같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왔는데, 잘 생각해보니 행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보다는 [경쟁이 적은 일터에서의 불로소득에 가까운 실소득]이 그 행복감을 꽤나 떠받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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