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방법으로 여행을 잘 하는 편이라, 없는 형편에(?) 그래도 1-2년에 한 번씩은 해외여행을 다녔다.
2015년에 굉장히 저렴한 항공권을 사서 1년에 두 번 미국을 다녀오고 나서는, 그 덕분으로 여행에 좋은 여건이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항공사의 골드 등급, 몇몇 호텔 체인의 상위 회원 등급 획득) 그 뒤 3년 반 이상 여행을 한 번도 못했다. ㅠ.ㅠ 이미 사라진 AA gold, Hilton Diamond 등급 같은 건 아직까지도 아쉽다. 적은 돈으로도 여행을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인데, 한 번도 제대로 못 써먹고 기한이 끝나버려서.
15년 전에 살았던 중국이 갑자기 너무 그리워져, 지난 4월에 3년 반만에 해외행 비행기를 탔다.
조금은 걱정했지만 모든 여정이 잘 흘러간 톈진 여행의 마지막 날,
인천으로의 귀국 비행편 온라인 체크인을 마치니, 이런 번역투의 메일이 왔다.
"현재 확인되었습니다. 귀하의 좌석 번호는 14A이며 탑승 시간은 12:55:00입니다. 귀하의 항공기 출발 시간은 13:40입니다. 최소한 출발 3시간 전에 공항 터미널에 도착해야 합니다. 해당하는 체크인 카운터에서 여행 서류를 승인 받고 탑승권을 돌려받으십시오. 항공편의 체크인 컷오프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여행이 거부됩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에어차이나]"
최근에 중국, 또는 해외 여행을 자주 했으면 이런 협박(?)에 절대 휘둘리지 않았을 텐데, 너무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가...이 이메일의 내용에 대해 뭔가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게 됐다. 게다가 여기는 "되는 것도 안 되고, 안 되는 것도 되는" 중국아닌가. 지하철 한 번 타려고 해도 가방을 x선 투시기에 통과시키고 몸 수색을 받아야만 하는, 그런 중국.
'최소한 3시간 전 공항 도착? 컷오프를 못 지키면 여행 거부? 🤔 진짠가?'
수많은 해외사이트를 막아놓았다는 중국 인터넷에 대한 소문과는 달리, 중국에서도 네이버를 통해 뉴스는 볼 수 있었다. 이메일은 내가 졸업한 학교 메일 계정으로 받으니 확인이 가능했다. 대신 Daum은 열리지 않았다. 네이버 뉴스는 열리지만, 에어 차이나는 원래 이렇게 빡빡한가.... 하고 사람들의 경험담을 검색해보려 해도 네이버 '블로그'는 열리지 않아 하나도 검색해볼 수가 없었다. 구글은 물론 안 열리고.
그래서 타인의 경험담을 확인을 못하니, 이 메일을 무시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한국에서 출발하기도 전에 비행기 시간표를 보고 "마지막날은 13:40 비행기니까.... 공항에는 12:00쯤 도착하는 걸로 하자" 라고 계획을 세워놓고 출발했던 나였지만, 마지막날 예상치 못한 에어 차이나의 메일 하나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여행을 해서 소심해졌나 보다. 비행기 안 태워줄까봐. 😝
결국 예상보다 일찍 호텔에서 10시를 넘겨 길을 나섬.
마지막날 머물렀던 호텔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어차피 쇼핑몰 지하 식당가를 통과하게 되어있어서... '비행기 한두번 타보나... 성수기도 아니고 세 시간 전 도착이 말이 됨? 걍 여기서 뭔가를 먹고 갈까... '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그냥 공항행 지하철을 탐.
에어 차이나의 저런 협박성 메일은 사람이 바글바글한 베이징, 상하이 국제공항이나 또는 중국 국내선 이용 시 혼잡을 피하게 하기 위한 메일인 것 같았다.
톈진은 베이징에서 상당히 가까워 국제선 노선이 발달하지 않았다. 톈진도 인구 천만의 대도시라 수요가 충분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베이징으로 가면 되기 때문.
나도 15년 전에 톈진에 살 때 해외여행을 위해 베이징 서우두공항으로 차를 대절해 타고 갔었다.
심지어 최근에 베이징과 톈진의 중간쯤 되는 지역에 베이징 따싱국제공항이 세계 최대 규모로 새로 개항하였기 때문에 대형공항이 더 가까워져, 앞으로도 톈진 국제선 노선은 더 늘어날 일이 없다. 톈진 공항은 그래서 국내선 터미널이 규모가 더 크고 사람이 많다. 국제선 터미널은 썰렁하기 그지 없고 면세점도 문은 열려 있으나 장사가 되는지 마는지 알 길이 없다. 중간중간 조명을 꺼둬서 어두운 곳까지 있다.
어흑.
괜히 메일에 쫄아서 일찍오는 바람에 아무 것도 없는 공항에서 두 시간 이상 버텨야 되네....
설상가상 와이파이조차 연결이 안 된다.
현지 전화번호로 연결하는 화면 밖에 안 뜬다. 시내에서는 어떻게든 연결이 됐었는데 여기서는 중국 전화번호 없이는 안 됨.
터미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왕복을 해봐도 별 건 없다.
어휴.....
내가 비행기를 타게 될 게이트의 옆쪽 게이트(여기는 출발하는 비행기가 없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에어 차이나 앱은 허술해보여도 내가 타게 될 비행기가 지금 어디서 오고 있는지가 다 표시 된다.
내가 12:55에 타게 될 비행기는 아침에 톈진에서 란저우라는 도시에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이다. 중국 땅덩이가 워낙 넓다보니 란저우 국내선 왕복에 소요되는 시간이, 톈진에서 인천 국제선 왕복에 소요되는 시간보다 더 길다.ㅎㅎ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와이파이 연결이 안 되어서 다른 건 다 못해도 에어차이나 앱은 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 그런데 란저우에서 오는 비행기의 착륙 시간이 임박한 건 알겠는데 국제선 승객을 12:55에 태우기엔 시간이 넘 촉박하다. 언제 국내선 터미널에 승객들 다 내리게 하고, 비행기 청소하고, 국제선 터미널로 이동해서 새로 승객 태우지? 궁금했다.
사진 찍은 시간으로 봤을 때, 12:30분경,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비행기 등장.
이렇게 다음 비행이 임박한 비행기는 국내선-> 국제선 터미널 이동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착륙 뒤 곧바로 국제선 터미널, 다음 출발할 게이트로 오는 거였다.
국내선 승객들은 버스에 태워서 국내선 터미널로 보내면 되니까.
여태까지 도착 항공기가 직접 게이트에 연결이 안 되고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이동하는 경우는
공항이 작아서, 게이트가 부족해서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운항 스케줄이 빡빡한 경우에도 그러는 것이었다.
곧 비행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옴.
공산주의 중국에서도, 역시 자본의 힘은 막강하구나.
항공기에서 먼저 내린, 아마도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인 듯한 사람들은 사진 속에 보이는 작은 미니버스로 안내받아 먼저 이동을 했다. 그 다음에 내리는 대부분의 승객들은 익숙한 그 대형버스를 타고 이동.
마지막으로 기장과 승무원들이 내리니, 그들도 남은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나면 청소 과정이 시작되고, 국내선 운항을 마친 저 비행기는 이제 게이트의 탑승교와 연결이 되고, 새로이 국제선 승객을 태우는 것이다.
에어 차이나의 "시간 안 지키면 비행기 안 태워줘" 협박에 쫄아서, 공항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내가 타고 갈 비행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를 태우게 되는지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
그리고 3-3 좌석 배열의 답답한 비행기였지만 다행히 옆자리가 비어서 편하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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