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않는....




오래 전 이야기들의 종합.


'뇌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말이 나온다' , '생각을 좀 하고 말을 해라' 이런 말이 있다.
나도 단 한 번, 뇌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바로 말이 나왔다고 생각한 경험이 있으니....


스리랑카 제자들이 한국 정부 장학금을 받아 유학을 오는데, 서울로 유학 온 학생들은 종종 만날 수 있지만
지방 대학으로 유학 간 학생들은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서울로 놀러왔을 때나, 아니면 결국 유학을 마치고 출국할 때 인천공항에 가서 만나게 된다.

몇 년 전에도 전주에서 석사를 마치고 출국하는 제자를 배웅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갔다.
거기엔 그 제자와 같이 수원에서 언어 연수 과정을 마친, (정부 장학생들은 언어 연수 과정을 거쳐 학위를 받을 학교에 지원하곤 한다.) 중국 여학생도 배웅을 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인원이 더 있을 때 할 말이 뭐가 있을까...그냥 공통점을 끄집어 낼 수 밖에.

"아, 중국인이시구나. 저도 중국에서 산 적 있어요."
"와, 그래요? 선생님, 중국 어땠어요?"
"더러워요"

😰😱😫


정말이지 생각도 하기 전에 내 입에서 '더러워요'라는 말이 나왔다. 나도 말해놓고 깜짝 놀랐고, 사실 너무 무례한 일이었다. 서로 당황했지만 그냥 넘어갈 밖에...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에서 보낸 그 시절이 나에게 남긴 인상은 "더럽다"가 1번인가보다...하는 걸 새삼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 서두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늘 갑자기 중국 살던 시절에 입고 다니던 "하얀 코트" 일화가 생각 나서.

당시 중국의 택시라든가 웬만한 승용차 안은 너무너무 더러웠다. 처음에는 택시 타고 그 지저분함에 크게 놀랐지만, 나중에는 차차 적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젠 많이 깨끗해졌더라...

나는 같이 살던 국어 선생님과 월-토를 매일 학원으로 출근했는데, 매일매일 아침마다 택시 잡는 것도 힘든 일이니, 동네 차 한 대와 계약을 맺고 출퇴근에 도움을 받았다. 현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그런 계약을 '차띵定'한다... 라고 불렀던 듯.

좀 더 아파트 안쪽에 사는 조선족 수학 선생님이 먼저 조수석에 타고 왔고, 나와 국어 선생님은 뒷자리에 탔다. 그 차는 목욕 수건 같은 재질을 카시트 삼아 덮고 다녔던 차였는데, 택시보다는 좀 나았지만 역시 뭐 그리 깨끗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차였다.




15년 만에 다시 가본, 매일 그 차를 기다리던 우리 아파트 앞.



어느 겨울, 결혼 이야기를 진척시키고 있던 수학 선생님은 남자 친구가 사준 하얀 코트를 입고 등장했다. 행복의 절정기, 소중한 선물 😉. 조수석에 앉은 수학 선생님을 뒤에서 지켜보니 재미있었던 것은, 절대로 그 하얀 코트와 우리의 출근차 시트의 접촉을 "불허" 했다는 것이다. 자리에 앉을 때 코트의 엉덩이 부분이 차와 닿지 않도록 코트를 들어올려 허리 춤에 말아 쥐고 앉아서, 절대 등받이에 기대지 않은 채로 꼿꼿하게 앉아서 10분 거리 출퇴근 시간을 오고 갔다. 너무 소중한 하얀 코트라서 때타는 게 싫으셨을 터. 한편으로는 평생을 중국에서 살아오신 분인데도 차 더러운 건 싫어하시는 구나 싶었다.


그 겨울, 나도 중국에서 아이보리색 인조 스웨이드 재질 코트를 구입했는데 
나도 차를 타고 꼿꼿하게 앉아서 간 건 아니고😆, 단지 어디선가 오염이 될까봐 학원에 도착 뒤 옷걸이에 걸어두는 대신에 코트를 뒤집어서 돌돌 말아서 쇼핑백에 넣어 두었던 것이 기억난다. 
왜냐하면 그 코트는 처음 살 때부터 큰 일을 겪었기에.

그 코트는 하얀 스웨이드처럼 보이는 (인조) 긴 코트로,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특징이 있다.ㅎㅎㅎ. 수년이 지나고 대학원 시절에 학교에 입고 갔더니 동기들이 모두 굉장히 비싼 코트라고 착각했을 정도.
약 10만원 정도의 가격이었고, 한국 물가로 치면 비싼 코트가 아니었으나 당시에는 웬만한 중국 노동자의 월급 뺨치는 가격이었다.




바로 이 코트



나는 중국에서 크게 돈을 쓰지 않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큰맘먹고 구입했는데, 중국의 백화점은 그 가게 자리에서 계산하지 않고 한 층마다 두어 곳 있는 계산대에 가서 계산을 하고 와야 했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돈을 지불하고 그 옷가게로 가니, 점원이 쇼핑백에 넣어진 내 옷을 내밀었다. 나는 아무 의심없이 그 쇼핑백을 받아들고 집에 돌아와 보니, 그 하얀 코트 앞쪽에 볼펜 줄이 죽 그어져 있었다. 세상에..,,누군가 실수로 한 것 같은데 내가 계산 하러 간 사이에 이걸 그냥 쇼핑백에 집어넣다니 😡 어휴 진짜... 이런 🀄️....

다음날 국어 선생님도 백화점에 같이 가주겠다고 했지만....중국어가 안 되는 우리들은, 말싸움 내공이 후덜덜한 조선족 아주머니를 휴대폰으로 연결할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한마디 말도 없이, 내가 쇼핑백에서 그 볼펜으로 선이 그어진 코트를 꺼내어 보여주자 점원들이 두말없이 코트를 바꿔주었다. 조선족 아주머니 전화 연결할 필요도 없었다. 분명히 그들은 "범인"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거 니가 집에 가서 그은 거 아니냐?" 라는 질문도 없이 그 코트를 바꿔주었을까.


이런 일 때문에 아마 나도 그 흰색 코트 오염 방지에 유난을 떨었던 것 같다.ㅎㅎㅎ 필기도구가 사방에 널려있는 학원에서 어디선가 또 뭔가 묻을까봐, 옷걸이에 안 걸고 쇼핑백에 넣어서 보관해두는.


오래 전 "그 더러웠던" 중국의 일화들은 이제 추억이 되어... 언제든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이제는 그 "더럽던" 중국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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