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2004년 5월, 중국을 떠나기 하루 전날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 가장 고학년이었던 중3 아이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시내에서 만나 놀자고 했다.

2004년초의 톈진은, 서울의 명동 같은 쇼핑가 거리의 끝자락에 새로운 쇼핑몰들이 들어서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로서는 매우 세련된??

멀티플렉스 극장도 새로 생겨서 거기서 Cold mountain - 냉산/렁샨 😊 도 보았고 ,학생들이 나에게 석별의 정으로 철판구이 요리도 사줬다. 당시 너무 깨끗하고 힙(?)한 분위기의 몰이 드디어 생겼는데, 이제는 두고 떠나야한다는 아쉬움.


ㅡㅡㅡ


2019년, 15년 만에 톈진 다시 방문.
그 마지막 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쇼핑가의 끝까지 걸어가봤다. 아마 여기쯤에 새 쇼핑몰들이 들어서고 있었던 거 같은데..
비교적 새 건물인 쇼핑몰은 없네? 여기 아닌가?





내 기억 속 반짝반짝했던 새 쇼핑몰들은 없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 그쪽 거리 상권은 쇠퇴하고 있었다.

아 이쯤 맞는 거 같은데...왜이리 썰렁하지? 예쁜 몰들은 어디 간 거야? 벌써 헐렸나? 아니면 여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근처 낡은?망한?건물에 ᆢ영화관 정상영업중ᆢ이라는 간판이 하나 있어서 일단 찍어놨다.

세상에ᆢ ᆢ
15년의 세월이 이렇게 무서운 거였구나.
내 기억 속 그 새 건물과 세련된 그 쇼핑몰이 이렇게 낡아서 망한 걸까?
며칠 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랑 애들 가르치던 학원에 가봤을 때는 너무 그대로여서 놀랐는데 대체 여기는?!


확실치는 않아서 의문을 품고 여행에서 돌아온지 2년째.
벽장에서 중국의 서류 정리함을 발견했다.





하하😉 영화표도 남아있다.
영화표에 나온 완다영화관이라는 이름과, 다른 영수증의 주소로 비교해볼 때 2년 전 내가 반신반의하며 사진을 찍어뒀던 그 낡은 쇼핑몰 건물이 15년전 그리 반짝반짝했던 새 쇼핑몰+영화관 건물이 맞는 듯하다.

세상에 15년이 이렇게 무섭군. 대체 이 거리는 왜 망했을까? 2004년초엔 지나가면서 우와우와 여기 봐라 했던 곳 같은데.

시네마천국에서 토토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치네마 빠라디소가 헐리는 걸 보는 기분이네.🥺

자료를 더 찾아보니 
2004년에 문을 열었다가 지금은 망한, 내가 기억하는 이 몰이 톈진의 완다플라자 1세대라고 되어있다. 지하철이 개통되고, 초거대 몰들이 문을 열면서 상권이 동쪽으로 이동했다고.


건물 낡듯 시간이 흘러 나도 그렇게 늙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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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추가. 

이 글을 썼던 21년 5월만 해도 중국 지도에서 완다영화관은 영업중으로 보였는데...
12월에 다시 찾아보니 7월경 재개발 계획이 발표되었고, 이제는 완전히 헐고 다른 건물 4동을 새로 짓고 있는 듯 하다. 동쪽으로 이동한 상권의 중심을 서쪽으로 다시 끌어오기 위한 새로운 계획. 현재 건설중인 지하철 4호선역도 개통되어 완전히 이미지 변신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와, 진짜로 치네마 빠라디소 보듯이 2004년 그 깨끗했던 새 건물이 그새 수명을 다해 헐리고 그 자리가 완전히 없어지는 걸 보겠구나. 
기분이 이상함. 

내가 2003년에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전통의 강자였던 백화점들은 2019년에 가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중국을 떠나던 해 - 2004년 초에 반짝반짝 새로 생겼던 백화점들이 먼저 헐려서 없어지다니...

중국을 떠날 무렵... 떠남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무기력함과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 속에서 하나의 희망이었던 게 그 새로 생긴 건물들을 탐방하는 재미였다. 거기서 옷을 하나 사고 '결국 직장인의 애환을 달래는 것은 쇼핑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던 곳이기도 했다. 당시엔 톈진 시내에 1-2곳 밖에 없었던 스타벅스도 그 건물에 새로 문을 열어 유행의 최전선에 있던 동네였는데... 

그리고 결국 떠나게 됐을 때, 마지막날 지인들과 환송의 의미로 식사를 했던 게 그 건물이라서 꼭 추억삼아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2019년 재방문 때 너무 낡아서 다시 들어가 볼 수 없었던 것도 충격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흔적도 없는 곳이 되었다니. 

이제는 2019년에 삐뚜름한 사진 한 장 남기고 그 쇠락한 광경을 목격하고 올 수 있었던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게끔 상황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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