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라진 기억을 끌어오기



기껏 17시간 (경유) 비행기 타고 현지로 날아가서
호텔방에서 봐야 했던 또 하나의 경기는 나달 : 조코비치 8강전. 많은 팬들이 이번 대회 최고 경기로 꼽는 경기지만 나에게 강렬한 기억은 없고 희미한 장면들만 머리 속에 남아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밤새워 새벽 경기를 잘 보는데, 오히려 파리 현지에서 밤 11시 -12시가 되니 졸리기 시작해서 몽롱~해졌다. 이상한 일이야... 

프랑스 공중파(?) 방송사는 롤랑가로스 낮 경기만 중계하고 밤 경기는 정규 방송을 하는 탓에 😔 친구가 빌려준 아이디로 아마존 프라임 작은 화면으로 봐야 했고, 맥주는 두 캔을 사놨는데 맥주 한 캔에 이미 살짝 취했었다. 술 때문에 졸렸던 것은 아님. 나는 술을 마시면 오히려 잠을 못자는 스타일이라서... 나는 탄수화물의 힘으로 (?) 술을 먹는 편인데 (예: 쌀밥을 미리 먹고 술을 마시면 덜 취한다) 그날은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속에 맥주를 마셔서 그런가, 유난히 정신이 맑진 않았던 것 같다. 맑지 않은 정신으로 응원해서 조코비치에게 2세트를 넘겨준 거라고 굳게 믿고 🤣😂 3세트부터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냉장고가 없는 3성 호텔이라, 두번째 캔은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받고 넣어놨었나.. 뭐 그랬던 거 같다. ㅋㅋ

매우 긴장하면서 되도 않는 스페인어로 tú puedes 이런 거 주절대고 있었고, 최근에 마드리드오픈 중계보다가 관중들이 어린 알카라스에게 해주던 응원 "Sí se puede! Sí se puede!" ( yes you can)를 배워서, 위기때마다 그것도 주절주절 했던 것도 같다. 

이 경기가 끝나고 20여일이 지나도록 잊고 있었는데, 지금 되새겨 보니 짜릿한 샷이 나온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거나 박수를 치기도 해서 한밤중에 옆방 사람한테 이래도 괜찮은가 걱정했었던 기억이 어슴푸레 난다.

그날 묵었던 호텔 구조가 약간 특이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한쪽에 문이 하나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내 방과 내 옆방이 나왔다. 굉장히 작은 호텔인데도 이중문이 있던 방 두 개.






이렇게 102 103 두 방만을 위한 문이 따로 있는 구조여서, 괜히 옆방이 무슨 공동체(?)처럼 느껴지면서 내가 내는 소리가 더 잘 들리지나 않을지 걱정했던 거 같다. 하지만 뭐 항의 같은 건 없었다. 슬그머니 '옆방도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던 듯 하다. 옆방은 내내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 것 같기도 했지만 출입문 여닫는 소리가 났기 때문에 누군가 있다고 판단했다.

경기는 마침내 승리로 끝났고, 나의 마음 고생도 끝났다. 나는 4강전 1*2경기 모두 & 결승전 표를 사뒀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나달 경기는 어디에 배정되든 무조건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발이 아픈 나달이 대회 중간 탈락할까봐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나달 경기 표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나달 : 즈베레프 경기가 준결승 제1경기로 배정되고 나서, 미리 사둔 제2경기 표를 resale로 넘길 때 엄청 긴장했다. 혹시라도 내가 뭔가를 착각해서 제1경기를 resale로 넘기게 될까봐. 🙄 그러고 나면 절대 다시 구할 수 없지👻. 몇 번이나 확인해도 이상하리만치 안심이 안 되어서 '일단 내일 제1경기 들어가서 무사히 자리에 착석한 다음에 제2경기를 리세일로 내놓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뭐, 결국 마음 단단히 잡고 무사히 리세일로 잘 팔긴 했다. 




승리 확정 후 관중에게 인사하는 나달



아마존 프라임 생중계는 화면 캡처가 가능했는데
경기가 종료된 뒤 '다시 보기' 할 때는 화면 캡처가 되지 않았다. 위 화면은 생중계 때 캡처한 것.

프랑스 시간으로는 새벽 1시에 끝났지만, 서울은 아침이 되었기에 한국의 친구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는 톡을 좀 하고, 남은 맥주 반 캔을 더 비우고, 트위터의 테니스 관련 반응을 체크하고... 파리에 온 이래로 가장 늦은 시간에 잠들었다.

이 경기를 통해 나달도 테니스 커리어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는 길목을 닦았지만
나의 파리 여행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에서 벗어나 행복 모드로 접어드는....

정말 초조한 가운데에서도 잠도 쏟아지고 ... 현지에서 보는 게 더 졸렸던 기묘한 경험이었는데,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놓는다. 지금은 이만큼이라도 기억나지만, 몇 년이 지나 이 글을 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어??' 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여기 쓴 내용 중에도 이미 기억의 조작이 있을지 모르겠다. 꿈과 이상과 현실이 뒤죽박죽되어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서울에서 중국 관광 비자 받는 과정이 무척 귀찮아졌다. 온라인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한참 동안 비자 신청서를 완성하고 비자 접수 날짜를 예약하려 하니 예약이 꽉 차 있었고, 보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필요해서 나의 출국 날짜에 하루 정도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