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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하나 딸 하나 👶



2022년 1월 30일, 5시간 넘는 호주오픈 결승 혈전을 벌인 두 사람.
나달과 메드베데프.






약 9개월이 흐른 10월 초 나달 아들이 태어남. 

운동 실력의 최정점은 이른 나이에 오기에 돈을 일찍부터 벌기 때문인지 보통 20대 초중반에 부모가 되는 게 운동 선수들인데, 30대 중반이 되도록 자녀가 없던 나달이 "힘든 결승전"을 겪고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새로운 동력을 얻기 위해 드디어 가족 계획을 시작했나 싶었다. 👶
(일명 "Big4"로 분류됐던 선수들 중 나달만 30대 중반까지 자녀가 없었고, 페더러는 서른 둘에 4자녀의 아빠가 됐고, 조코비치는 서른 살일 때 둘째를 얻었고, 앤디 머리도 서른 셋일 때 4명을 자녀를 둔 아빠가 됐다)
나달 부부는 6월경 임신 사실을 밝혔었고, 나달 아내도 배가 볼록해진 모습으로 윔블던 관중석에 나타났기 때문에 누구나 알았던 출산.

그런데 나달 아들 출생 바로 1주일 뒤 메드베데프도 딸의 탄생을 알림. ☺️. 그동안 부인도 목격된 일이 없어서 거의 아무도 몰랐음. 
메드베데프는 나달보다 10살 정도 어리지만 결혼식은 나달보다 먼저 했었다. 그렇게 일찍 유부남이 된 또래 선수들이 모두 아이 아빠가 됐지만 메드베데프도 몇년간 자녀가 없었다. 그런데 이 커플도 험난한 결승을 겪고 동시에 가족 계획을 시작하다니 ...
 
솔직한 인터뷰로 명성 높은 메드베데프지만 사생활 노출은 철저히 막으려나보다.. 했는데 웬걸...딸이 커갈수록 계속 사진 자주 공개. 너무 자랑하고 싶은가봐 🤗




아빠를 너무 닮은 첫딸 :) 
사진 볼 때마다 너무 웃기고 귀여움.

반면 나달 아들은 파파라치샷 종류의 멀리서 찍힌 사진 외에는 1년 이상 공개되지 않았지만 2024년 들어서 공개적 자리에 데리고 나오면서 사진이 계속 찍히기 시작함.




이 사진 딱 처음 봤을 때부터 "엄마 눈이다" 했었음 😉.
엄마를 닮은 첫 아들.

내가 사실 부모 형제끼리 닮은 것을 잘 못 알아보기는 하는데... 누군가에게 사진 보여줬더니 엄마 닮지 않고 아빠 닮았다고 그러네... 난 처음 보고 나달 부인 눈 생각났는데... 👀


오늘 나달이 넷플릭스에서 드물게 "생중계"된 테니스 경기를 하면서 넷플릭스 공식 계정에 아들 사진이 또 공개됨




나처럼 엄마 눈 닮았다고 하는 사람 또 있구나.

평생 잊을 수 없는 결승전을 1월에 치른 뒤
10월에 나란히 첫 아이의 아빠가 된 두 사람.
아빠 닮은 첫딸
엄마 닮은 첫아들.

두 아이가 커가는 거 보는 재미도 쏠쏠하겠어.
원래는 자라면서 남자가 키가 더 커지지만, 여자 아이 - Alisa -가 원래도 '키가 크다'라는 편견이 있는 러시아 여자인데다가, 아빠 키가 매우 크기(198cm) 때문에, 생일이 거의 비슷한 두 아이가 키마저 비슷하게 자랄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부모 직업을 이어받는 선수 자녀들 많던데... 둘이 나중에 혼합 복식이라도?? 🎾









내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는 나도 모르는 거구나




항상 2022 롤랑가로스 결승전을 현장에서 지켜본 것이 팬으로서 궁극의 체험이라 생각했고, 은퇴가 가시권인 선수를 이제는 여한없이 보내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팬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가져봤으니 이제는 뭘 더 한다고 해도 뿌듯하게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 같은 마음이고 은퇴해도 울지 않을 것 같고.





이틀 전의 복식 경기는 중계가 없어서 못 봤고
오늘 드디어 1년만에 단식 복귀전을 보는데
예전처럼 활발히 뛰면서 멋진 샷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사실 눈물은 잠깐 났는데 그게 코 점막을 자극했는지 코를 엄청 풀게 되어서 기억을 안 할 수가 없게 됐다. ㅎㅎㅎ



이런 😳
내 행동을 나도 예측 못하겠네 ㅎㅎㅎ
이러다가 언젠가 은퇴식 열리면 '홀가분하게 보내준다'라는 여태의 마음가짐과 달리, 식음전폐하고 울다가 며칠 드러누울지도?!?! 






긴 머리 휘날리던 21살 청년 때부터 봐왔는데
이젠 머리숱을 점점 잃어가는 아이 아빠가 되었지만
경기 중간 셔츠 교체만 해도 관중석에서 팬들의 환호성이 나오는 유일한 선수인 건 여전하다.☺ 
진짜 '그' 나달이 경기장으로 돌아왔구나 싶었다.


🔝이언 맥켈런 경도 쌍안경으로 지켜봐야만 하는 나달의 상의 탈의 시간 🤣
소리를 들어보면 중계자도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승리로 고통스러웠던 시간에 대한 기억을 망각한다.

복귀전에서 졌으면 '아..이젠 진짜 안 되나봐. 테니스를 몰랐어야 했어. 왜 괜히 이걸 봐서 이 고통을 겪냐...' 또 이러고 있었겠지.




그러나...



‘’我不后悔风雪中和你走一回。。”
눈보라 속을 너와 함께 걸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최근 본 드라마 ost에 나오는 가사인데
드라마를 안 봤으면 중국어 교재에 예시문으로 나올 법한 평범한 문장 느낌이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무슨 의미인지 딱 알 수 있는 문장이고 뭉클하기도 하다. 또한 누군가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하게 된다면 긴 시간이 지난 뒤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나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좋겠고.


나달이 올해 1월 이후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테니스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난 테니스 관련으로 트위터도 했었고, 거기서 이야기 나누는 1명도 생겼었는데 9월 이후로는 내 트위터는 거의 폐업 상태다. 그래도 그동안 알고 보는 선수들을 많이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10월 중순, 마스터스 대회 결승전 뒷부분 중계를 잠시 켰다. 

고만고만하게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이상하게 마음이 더 쓰이는 선수가 있다는 걸 나도 모르게 알게 된다. 거의 마지막 부분 중계를 켰기 때문에 잠시나마 그 누군가를 응원했었는데, 그 선수가 대회 우승에 단 2포인트 남겨뒀다가 역전패를 하고 말았다. 괜히 봐서 마음 아파. 😖 이날의 충격 때문인지 내가 종종 보고 있는 이 선수 팬 트위터가 있었는데 그분은 이날 이후 계정 닫음.🥺

경기를 한 30분은 봤나 싶은데 '와... 그동안 "이 짓"을 어떻게 해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주 매대회 승패의 결과가 나오는 테니스의 냉혹함. 졌을 땐 결코 울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흑흑 울게 만들었던 그 예측불허 승리의 순간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가슴 아픈 패배들... 
우와 대체 난 이 기복을 어떻게 10년 이상 견뎌 온 거지?? 
이제 나 다시 스포츠 팬으로 못 돌아가겠다...라는 느낌이 왔다. 


지난 15년, 부상이 잦았던 나달을 내내 지켜보기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중한 기억이다. 내가 2등 인생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결국 나달도 역대 2위권 기록을 남길 듯 하지만 我不后悔风雪中和你走一回.
너와 함께 그 바람과 눈을 맞으며 걸었던 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아. 즐거웠던 순간에 대한 기억들은 분명히 고통스런 시간을 견디는 힘이 됐었다.
아마도... 이젠 이런 류의 눈보라를 맞으러 다시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팬 초창기일 때 네이버 블로그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 떠오른다. 스포츠 선수 응원하는 일이 얼마나 이타적인 일이냐고. 나에게 딱히 돌아오는 이익이 없는데도 남의 성취를 위해 이토록 응원하는 행위.

지금도 기억나는 고통스러운 패배의 순간이 많지만
내가 남의 행복을 이렇게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됐고, 그 현장에서 너무 감동했었기에 절대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15년이다.











그런가요?



16년 이상 응원해 온 선수가 내년 은퇴를 예고하고 부상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 요즘 "운동선수를 팬질하는 일은 반려동물 키우는 일과 같다." 라는 생각을 한다. 십수년 내에 절대 피할 수 없는 ‘끝’이 점점 다가오는 일. 60세 70세가 되어도 현역일 수 있는 배우나 가수, 작가를 좋아하는 것이랑은 성질이 뭔가 다르다. 


처음에는 우승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은데, 몇 년전부터 요상하게 아들 키우는 엄마의 마음이 되어... 우리 아들만 서울대 가기를 바라는(역대 최고의 기록 세우기) 학부형처럼 안달하기 시작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작년에 우리 아들 서울대 보내서 참 행복했는데, 며칠 전 남의 아들이 앞질러서 하버드 가게 되니 기분이 매우 언짢다. "남의 아들"이 역대 최고의 우승 기록을 세우고 기뻐하는 사진도 지금 제대로 못 쳐다본다. ㅎㅎㅎ (algorithm인지 뭔지 싫어요.🤢 예전에는 테니스 관련 like 취소하면 사진 하나도 안 보였는데 이제는 안 보려고 해도 다 보여요. 흑흑)

그러다 오늘 트위터에 올라온, 어느 영상 캡처 보고 나도 뼈맞음. 🤧






"운동선수들은 감정적으로 소년기에 정체돼 있어요"
"그보다 유치한 건 운동 경기를 보는 성인들이고요."

운동선수 응원하는 일은 기간이 유한한 반려동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이 대사에서 말하는, 운동선수란 것도 '영원히 자라지 않는 어린 자식 같아서 더 마음이 쓰인다'는 반려동물 느낌.🐈‍⬛🦮

그리고
남의 아들 잘 나가는 거 도저히 못 봐주겠는 "유치한 성인"도 바로 내 모습이고.🤭




一场被预设的奇迹

 


과연... 나달이 예전처럼 팔팔 뛰어다닐 수 있을까를 예측하기 어려워진 요즘,

내가 파리에 가서 정말로 봤어야 했던 경기는 16강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구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구할 수도 있었던 표.



결국은 파리까지 와서 호텔에서 TV로 본 16강전.

 


물론 훨씬 더 무게감 있는 경기인 4강전 - 결승전을 직관하는 행운은 가졌으나, '행복감'은 느꼈지만 뭔가 경기 후 '짜릿함'은 결국 느끼지 못했다.

4강전 1세트는 최고의 승부 중 하나였지만 상대 선수의 큰 부상으로 2세트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고, 그 2세트에서 나달의 경기력은 오락가락했다. 심지어 그날은 나달의 생일이어서 경기장에서 관중들과 생일 축하를 하는 체험까지 잔뜩 기대하고 경기장에 갔었지만, 목발을 짚고 절뚝이며 경기장을 빠져나간 상대 선수는 생각보다도 더 내 맘을 아프게 했고 아무도 생일 축하 따위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결승전은 전력 차이가 커서 - 한쪽 드로에 우승 후보 4명이 다 몰려있었으니... 반대 드로에서 결승전에 온 선수는 [상대적인] 약체, Ruud 미안👋🏻 -  사실 긴장감은 덜 했다. 

나달-조코비치 8강전 나이트 세션 표는 뭐 애초에 못 구할 표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거고, 적어도 16강전은 봤어야 해.


롤랑가로스 표는 3월과 5월에 공식 예매가 열리는데, 16강전 입장권에는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에 '하나만 걸려라' 하고 5-6장 정도를 미리 몽땅 구입 해놓기란 어렵다. (구입 장수 제한도 있다) 그리고 16강전은 나중에 resale 표로도 잘 안 나왔다. 표를 구입하는 5월 초에는 내가 응원하는 선수가 대회 개막 뒤 월수금일 경기를 하게 될 지, 화목토월 경기를 하게 될 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미리 살 때는 운을 믿고 사두는 수 밖에.

16강전 경기는 second week 일요일-월요일에 걸쳐서 열리게 되는데, 장소도 메인 코트인 필립 샤트리에 코트, 그보다 작은 수잔 렁글렌 코트 두 개로 나뉘어진다. (8강전부터는 그나마 필립 샤트리에에서만 열려서 경우의 수는 줄어든다) 필립 샤트리에 코트는 그마저도 데이 세션 - 나이트 세션이 나뉘게 되므로, 16강전이 벌어질 장소/시간 경우의 수가 여러 가지가 된다. 내가 응원하는 선수가 데이 세션에 경기할 지, 나이트 세션에 경기할 지는 그 경기 전날이 되어야만 알 수 있다.

그래서 결국 16강전(=4회전) 표는 유일하게 손에 넣지 못한 채 출발했고 (3회전 2장, 8강전 데이 세션, 4강전, 결승전 표는 이미 가진 채로 출국) 16강전 전날인 토요일 오후에야 나달의 일요일 경기는 필립 샤트리에 코트 데이 세션으로 배정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갖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계속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지만 엄청난 경쟁에 밀려 당최 나에게 순서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선수에 비해 팬층이 있는 조코비치 경기가 같은 날 수잔 렁글렌 코트로 배정되었기 때문에 '아마도' 조코비치 팬들이 미리 사뒀던 필립 샤트리에 표를 내놓아서 빈 자리가 나오는 것으로 짐작했다.  

표가 아예 안 보이면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말겠는데, 빈 자리는 하나씩 나오는데 그 다음 단계인 좌석 지정 단계로 넘어가면 "이미 팔렸습니다" 같은 문구만 나왔다. 표를 못 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새로고침을 하다 보면 빈 자리 한 개씩은 계속 보였다. 하지만 늘 내 화면 터치는 늦었다. 스마트폰보다는 PC로 하는 걸 권장한다고 하던데, 호텔의 고물 PC 역시 너무 느렸고 공용 컴퓨터에서 저지르는 범죄 예방용??인지... 할 수 있는 게 너무 제한되어 있었다. 

경기 스케줄이 발표된 시간엔 한국은 이미 늦은 밤이었기에 결국 프랑스에 사는 친구에게 PC로 해달라고 부탁을 해봤지만, 그 친구도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간 터라 시간을 많이 뺏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착한 친구가 10여 분은 매달려줬다.) 이미 구입한 결승전 표보다 더 비싼 자리를 구입할 각오도 했지만 자리가 나와야 말이지...🙇

몇 번이나 도전한 끝에 경기 당일 아침, 롤랑 가로스 구역 내에 입장할 수 있는 38유로 짜리 입장권은 겨우겨우 손에 넣었으나... (약 51,600원), 그날이 내가 파리에 체류한 날 중에 가장 쌀쌀한 날씨였고, 추운 날 스타디엄에 들어가 앉지 못하고 외부 구역만 혼자 떠돌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아 결국 resale로 다시 내놓고 가지 않았다. 나~중에 수수료 4유로를 빼고 34유로만 환불되는데, 씨티카드가 1유로 = 1309원이라는 본 적도 없는 최저 환율을 적용해서 적게 환불해줘서 열만 더 받게 됐다.👺 표를 구입할 때 병행해서 사용했던 다른 카드사는 환불 당시 더 올라있던 환율을 적용해서 더 많이 환불해줬는데 씨티카드는 대체 무슨 계산법인지 모르겠다.  


원하던 4강전, 결승 다 보고 행복하게 마무리 된 여행이었지만

'짜릿한' 경기는 현장에서 결국 못 본 게 아쉽다. 특히나 롤랑가로스 이후로 나달의 경기력은 여기저기 헤매는 중이라...



파리 도착 1주일 넘게 TV로만 나달 경기를 봄



몇 시간을 폰을 붙잡고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내 것이 되지 않았던 16강전 입장권... 그 표가 만약 최종 단계까지 가서 구입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짜릿했을까 싶지만, '16강전 표 짜릿하게 구할래? 나달이 우승하는 거 볼래?' 하면 당연히 후자가 낫지 ㅎㅎㅎ.

작년에 그 자리에서 은퇴하는 걸 지켜볼 마음이 있었을 정도로, 우승하는 것까지 보고 온 마당에 더 이상 미련 없이 후련해졌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 너무 폼이 확 꺾여 화끈한 경기가 없으니 미련이 다시 스멀스멀 자라난다. 33살 쯤이면 당연히 은퇴할 줄 알았던, 곧 37살 선수에게 뭘 또 기대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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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에 벌어진 일이긴 했지만 인터넷 환경이 빠른 한국에 이런 '광클' 나 대신 해달라고 부탁해 볼 친구 하나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이 날이 더 떠올랐다. 




 



 


마음을 정리해야 할 때?



올해 호주오픈 시작 전 내 마음은 "대체 뭘 바라야 할 지 모르겠다." 였다. 작년 8월부터 부진의 연속이라...

결국 오늘 나달은 부진과 부상이 겹치며 호주오픈 2회전 탈락. 
사실 경기도 제대로 못봐서 충격은 늦게 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작년 5-6월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에도 새삼 감사하는 중. 왜냐하면 그때 나는 무조건 나달이 끝까지 잘 할 것을 기대하면서 대회 "3회전"부터 결승까지 보는 일정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수백만원을 들여서 항공권, 호텔, 입장권을 예약해놓았는데, 막상 파리에 도착해보니 내가 응원하는 선수가 2회전 탈락해서 이미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였다면....? 그 절망감은 어땠을지 상상도 안 간다. 

'이렇게 잘 하는 나달을 보는 게 이제 마지막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해서 시작했던 여행이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압도적인 나달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은퇴 소문이 무성했던 당시 나달의 롤랑가로스.
솔직히는 나도 나달이 정상에서 그만 두기를 바랐었다. 누군가에게 "롤랑가로스에서 나달을 꺾은 신화적인 선수"가 될 기회를 주지 말고 그냥 우승 상태에서 은퇴하기를 바라는 얄팍한 생각.


하지만 본인은 우승에서 큰 에너지를 얻었는지 시상식장에서 "keep going" 하겠다고 했고, 전세계 팬들이 안도했었다. 


하지만 다시금 지금 생각은...
차라리 6월 그날 은퇴하는 게 나았겠다, 하는 생각도...😭

내가 그 현장에 있었으니 아쉬움도 덜 남고 
행복하게 보내 줄 수 있었을 것 같다. 
요즘은 경기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맘만 들어...





말이 쉽지.

 


나달이 은퇴해도 맘의 준비 다 되어있다고 몇 달 전에 쓰긴 했다.

요즘은 경기를 뛰고 있긴 하지만 4연패를 기록 중이고, 본인도 본인을 의심스러워하는 자신없는 모습을 보이니...

삶의 낙이 없다.


그렇다고 어느 새벽에 쓰윽~ 다른 선수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정말 33세 정도면 은퇴할 줄 알았는데 37세를 바라보는 요즘에도 아직 경기를 뛰고 있다는 사실은 감사하지만, 무엇이든 서서히 사그라져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참, 그래도 어느 정도 흥미로운 일은 있었다.

나달이 태어난 지 한 달 갓 넘긴 아들을 데리고 비행해서 이탈리아 대회에 참가 중인 게 너무 신기해서..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안부인사 겸 슬쩍 갓난아기를 동반한 출장(?) 여행이 놀랍다며 메신저로 사진도 보냈다. 

난 아이를 안 키워봤으니, 겨우 한 달 지난 아기를 비행기 태워 아빠 일터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역시나'  자신의 아기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답으로 돌아왔다. 당연한 거다. 한 달 갓 넘긴 신생아가 있는 아기 엄마가 '친구가 응원하는 테니스 선수의 육아'가 뭐가 궁금할까. 현재 세상이 자기 아이로 가득 차 있을 텐데 ㅎㅎ. 내가 대체 뭘 기대한 거야? 🤗 

남의 관심사까지 나도 같이 궁금해하기엔, 내 세상은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는 걸 절실히 또 느낀 사례.











드라마같은 순간




싫증이 빨라서😁 폰 배경화면을 거의 매일 바꾸고 있는데, 그래서 사진첩을 훑다가 사진 찍은 지 4개월 만에 알았다.

2022 롤랑가로스 결승전은 진짜 하늘이 도운 날이었다는 것을.

결승전 전날, 다음날 비 예보가 있어서 걱정했었다.
나달이 롤랑가로스에서 힘겹게 넘긴 경기는 대부분 비가 오는 축축한 날씨였다. 바로 전날 준결승에서도 비가 많이 와서 지붕을 닫고 경기하는 바람에 양쪽 선수가 땀을 줄줄 흘려가며 힘든 경기를 했다. 심지어 익숙치 않은 경기장 상태로 인한 피로도때문이었을까...다른 선수의 부상으로 준결승이 2세트만에 끝나버리기도 했고. (경기 끝나고 나오니 파란 하늘이 펼쳐짐) 

⬇️ 결승 경기 당일 일요일 오전에 프랑스에 사는 친구가 보내줬던 현지 일기 예보.(카톡 기록된 한국 시간 오후 3:10 ->  프랑스 시간 오전 8:10) 





일요일 결승 시작 시간인 오후 3시를 전후로 뇌우 예보까지 있었다. 🌩😥 내가 보던 날씨앱에도 'thunderstorm'이라는 말이 떠서 '대체 화창한 6월에 그것도 결승전에 이게 뭔 난리야?'라는 식의 생각을 했던 게 어슴푸레 기억 난다.


남자 결승전 전날 토요일 경기에서 우승했던 이가 슈비온텍의 일요일 낮 트로피 샷.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듯한 하늘.





경기 시작 전 오후 2시, 필립 샤트리에 코트 바깥 상황...
저건 분명 비구름인데 😬






제발 비가 안 오기를, 지붕 닫지 않게 되기를 바람.





그동안 사진을 찬찬히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오늘 다시 보니, 경기 시작 전 결승날에만 있는 무용 공연(2시 50분)까지만 해도 흐렸던 날씨에서...





3시 3분, 선수들 등장과 함께 반짝반짝. 갑자기 해가 나왔다가 사라짐.
해가 나왔다가 사라지는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해가 없을 때는 코트 안에 서있는 사람들 그림자가 없지만 해가 구름을 제치고 나오면 그림자가 생기는 걸로 알 수 있다.

이제야 내가 찍은 동영상의 시간을 확인하니 현지 시간 오후 3시 6분에 찍은 영상에도 그림자가 없는데, 오후 3시 10분, 나달의 경력(?) 소개와 함께 다시 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선수 소개가 끝나고 1세트에는 다시 구름이 끼긴 했지만 2세트부터는 나달의 공 바운드에 유리하다고 알려진 반짝이는 날씨가 계속되었고, 대회 우승으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

정말 하늘이 도운 하루.
뒤늦게 타이밍이 이 정도로 극적이었던 것을 발견하면서, 혼자 감동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어렵게 떠난 여정이었는데 그날 마치 누군가가 내가 행복하도록 도와준 것처럼 느껴져서.
드라마 내용 중에...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갔다가 뒤늦게 매 순간순간마다 타인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주인공이 감동해서 우는 걸 많이 봐서 그런가, 나도 홀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결승 끝나고 호텔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오후 7시 넘어서 그제야 예보대로 강한 비가 후두둑 쏟아짐.






요즘... 종교라는 게 별 건가 하는 생각도 한다.
어떤 우연에 의해 내가 행운을 찾으면, 인과 관계가 없는 그 시간과 그 조화에 인과 관계가 있었다고 믿어버리는 것. 절대자를 믿지 않는 내가, 경기 시작 직전에 해가 났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무엇인지 모를 존재에 감사하게 된다는 것. 
그 테두리 바깥 사람이 보기에는 그 믿음이 '이게 뭔소리야?'싶게 매우 의문스럽다는 것 :) 


사실 남자 결승전 전날 - 여자 결승 때도 경기가 무사히 종료된 뒤에 갑자기 비가 쏟아져, 딱히 남자 결승전에 참석한 사람만이 겪었던 행운이 아닌데도 말이다. 




롤랑가로스 14회 우승을 기록한 태양왕(Le Roi de Soleil) 라파 14세.
으흐흐







나달이 US오픈 때 뉴욕에서 머무르는 호텔



Lotte New York Palace, 펜트하우스 스위트.




나달이 올해 뉴욕을 떠나면서 작별인사차 공개한 사진을 통해서 찾아본... 그가 머무르는 방.



US open은 선수들이 떠나기 전 소셜 미디어에 호텔에 대한 언급을 꼭 하는 것을 봐서는 홍보 계약이 되어있는 듯 해서, 선수들이 제값을 내고 머무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세금 제외 $15,000... 요즘 환율로 하룻밤 숙박에 2천만원😲 하는 방이다.

물론 대회 참가 테니스 선수들은 방값을 full fare로 치르지는 않겠지만 2022년 US open은 1회전 탈락해도 상금 8만 달러를 지급하므로, 대회 참가 가능 남녀 선수 256명 안에 들었다면 나달급이 아닌 무명 선수가 첫날 탈락해도 대회 상금으로 스위트룸 숙박비를 내는 게 가능하긴 하다. 🤣 

펜트하우스 스위트는 3층 구조의 총 140평 규모. 
층을 여러 개 쓰기 때문에 소음 걱정도 없으니 스위트 내부에 러닝머신도 들어가 있고 작은 부엌 시설도 있더라.
'언젠가 이런 방에 머물러 보고 싶다' 이런 꿈을 꿀 수준의 가격대가 아님. 2천만원을 어떻게든 모을 수는 있겠지만 🐜🧗‍♀️그걸 하룻밤에 그냥 쓴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인생이니까.😌





야경 너무 멋질 듯.
나달 가족들은 좋겠어... 👨‍👩‍👧‍👦

US open 기간에 나달과 같은 호텔에 머무르는 세레나 윌리엄스가 2022년 공개한 영상으로 짐작해볼 때, 그녀는 1박에 7500달러부터인 skyview suite에 머무른 듯 하다. 규모는 70평. 자국의 수퍼스타인 윌리엄스보다 나달에게 더 큰 방을 내주는 게 신기하네. 





한없이 심각했던 나달



테니스는 현재 북미 하드코트 시즌 진행중.
나달은 신시내티 마스터스 첫 경기에서 패하고 현재 뉴욕으로 이동해 us오픈 준비 중이다.

8월 들어서 경기는 단 한 경기만 했지만
거의 매일 연습하는 사진은 공개중.
밝게 웃고 장난도 치며 연습하는 8월 사진들을 보니, 지난 6월 생전 처음으로 연습 장면을 지켜봤던 나달의 심각한 모습이 떠올랐다.

조코비치와의 8강전 밤경기를 앞둔 화요일... 
8강전 '낮'경기표와 4강/결승전 표만 갖고 있었던 탓에 파리까지 와서 TV로만 나달 경기를 보고 있던 나는, 이대로 가다간 집에 있는🏠 것이나 여기 온🇲🇫 것이나 차이가 없겠다는 생각에🤧 나달이 공식 연습하는 모습이라도 지켜보기로 했다. 테니스 대회를 직접 보기 위해 몇몇 나라를 가봤지만 연습 장면까지 챙겨본 것은 이때가 유일.

나달은 대회 시작 전부터 연습 경기만 해도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기에, 제시간에 갔다가는 작은 연습 코트에 입장도 못할 것 같아서 꽤 일찍 가서 거의 비어있던 연습 코트에 자리를 잡았다. 중간에 트위터를 확인하니 "왜지? 갑자기 연습 스케줄에서 나달 일정이 사라졌어! 무슨 일이야?" 하는 걸 봤다.😳 나도 공식 페이지에 가서 확인해보니 일정이 정말 사라져 있었다. '뭐야? 비공개 훈련 전환인감?!?! 여태 기다린 나는 뭐가 되지?' 하는 생각이 들어 당황했지만 조용하던 연습 코트에 방송용 카메라가 여러 대 등장하고 갑자기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여럿 들어와서 자리 정리를 하는 것을 보고 평범한 선수가 아닌 '나달'이 등장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전에 연습코트를 쓰던 선수들은 내가 앉은 쪽과 먼 쪽에서 주로 히팅 연습을 해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도 나달은 내가 앉은 쪽과 가까운 곳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내가 그린 위 화살표 아래쪽에 보이는, 이 작은 코트에 들어오지 못해 1시간 연습 시간 내내 밖에서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 얼마나 아쉬웠을까. 특히 첫번째로 입장이 짤린 사람은...
나도 도착 시간을 저울질하다가 '그래, 이왕 하기로 결심한 거 확실하게 하자.'라는 생각에 일찍 코트에 도착해서 혼자 앉아 블로그에 글을 쓰며 기다렸는데 그렇게 하길 잘했다. 

그런데 평소에 파리 시내 버스 이동을 하면서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체크하느라 항상 켜놓고 경로 확인을 해도 별로 닳지 않던 폰 배터리 사용량이 (그래서 방심했다) 블로그앱을 쓰는 동안은 뚝뚝 떨어졌다. 그날따라 보조 배터리도 가져가지 않았다.😔 정작 필요한 순간에 폰을 쓰지 못하게 될까봐, 남은 배터리가 30%대에 진입하고는 결국엔 폰을 꺼뒀다. 📴 사진도 사진이지만 나중에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도 이젠 스마트폰이 없으면 외국에선 불안하니까.

폰을 꺼둔 탓에 어느 순간 갑자기 나달이 성큼성큼 연습 코트로 걸어 들어오던 것을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다. ㅎㅎ 그게 아마 내가 앉아 있던 쪽으로 얼굴을 향한 유일한 순간이었을 텐데.

내가 사진에서 늘 보던
연습하면서 해맑게 웃고, 농담하고, 테니스공으로 축구하고... 그러는 모습은 하나도 없이 한 시간 가까이 심각한 모습만 이어졌다.




내가 알던 나달의 연습 장면은 이런⬆️ 것이었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경기시간이 임박해서 하는 연습은 그렇게 심각하게 하나보다. 트위터에는 '나달이 오늘 연습하는 동안 표정이 어두웠다. 느낌이 좋지 않다' 이런 글까지 등장했다.




트위터 @FadingTramlines 의 2022 us오픈 연습 사진



남들의 연습 구경 장면에서 늘 보던 사진은 ⬆️이런 거였는데 한 번도 저런 웃음은 보질 못했다. 🤔




연습을 마치고는
이쪽으로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쿨하게 손 한 번 들어주고 사라졌다.ㅋㅋ

이때 나는, 사라지는 나달을 보면서... 내가 표를 가지고 있는 금요일에 다시 볼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었다.
 




준비

 


오늘 어떤 종목의 대형 스포츠스타가 은퇴를 발표했고, 그것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니

나는 나달이 은퇴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적이 부진했던 2015년부터 은퇴설을 달고 살았으니 뭐... 그때부터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던 듯.


특히나 올해 롤랑가로스는 그의 마지막 롤랑가로스가 될 거라는 예측이 많았고 

나도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지켜보다가 결승전 마지막 두 게임 정도를 남겨둔 시점에서는

'와. 이게 나달의 마지막 서브 게임일지 몰라.'

'이게 나달의 마지막 리시브... 롤랑가로스의 마지막 게임일지 몰라.'

하는 마음에서 경건하게 지켜보았다. 


나달의 우승 후 스피치에서도 나달이 살짝 뜸들이는 시간이 있어서, 모두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롤랑가로스다' 라는 말을 할 줄 알고 긴장했지만 "keep going"하겠다는 말로 마무리지어 다들 안도했다. 





'여태까지 아무도 넘어오지 않았지만' 내가 테니스 응원 하기를 남에게 권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12월 빼고는 1년 내내 경기가 있어서 쉴 틈이 없다"인데, 그렇게 오랜 기간 '쉴 틈없이' 응원해온 선수가 막상 은퇴를 하면 매우 허전하긴 하겠지.


그런데 뭐... 그가 자기 갈 길을 간다고 가면

나도 내 갈 길을 가야 하겠지.





그리고, 나의 윔블던도 끝




 


부상을 딛고 4강전까지 힘겹게 올라간 나달이 결국 기권을 결정. 2022년 윔블던 4강전은 내일 한 경기만 열리게 되었다.

나달이 일단 복귀 목표라고 말한 8월 8일 캐나다 Rogers Cup대회까지 나도 테니스 방학.😴


2019년 7월..

그저 테니스 보는 것이랑 나달이 좋아 경기를 보는 줄 알았다가, 나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던 시간.

그때, 내 아들만 서울대 보내고 싶은 학부형의 마음이 되어 안달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아들은 서류심사에서 이미 떨어졌는데 남의 아들들만 합격 면접 보고 있는 걸 지켜보는 상황. "아무도 우승 안 하는 대회는 없나요?" 

그런 내 모습을 자각하고 그때부터 마음을 많이 다잡으려 노력했고, 여태까지 십여년간 나달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안 가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이제는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나달이 그해 또 메이저 결승전을 가게 되자 내가 오히려 너무 긴장했지만 그때 새삼 빌리진킹이 했다는 말 "pressure is privilege"가 무슨 뜻인지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내 자식이 🤣 결승전에조차 못 가서 우울했던 몇달 전에 비하면 결승을 앞두고 초조해하고 있는 지금 이 경험은 정말 privilege 아닌가?


2022년, 3년전의 그 우울한 기억에서 돌고 돌아 올해는 정말 예상치 못한 선물을 많이 받았다. 드디어 맘이 편해졌다. 물론 아들 서울대 보내고 나니 이젠 또 하버드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ㅋㅋ 하지만 충분히 마음이 놓였다.


최근 대회들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결승전을 지켜보게 되기까지 지난 3년간 정말 long long way를 왔구나...생각했지만, 이제 나달이 빠지고 남은 4강 진출자의 면면 때문에 또 그 3년전 마음가짐도 또 돌아와버렸다.

"아무도 우승 안 하는 대회는 없나요?" 

ㅋㅋㅋ. 내가 원하던 게 이루어져 이미 다 내려놓았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었나. 아직도 싫은 건 있네.

하하, 그동안 다른 선수 팬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너무 잘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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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악플도 이제 그만 읽어야지.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묘한 상황인데, 악플이 달려있을 거 뻔히 알면서도 테니스 기자들의 트윗의 답글을 열어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곤 했었다. 안티들은 뭘 해도 어차피 저주를 퍼붓는다. 나도 '허허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늘 그걸 열어서 읽어보면서 자극을 받곤 했다. 앞으로는 그것도 하지 말아야지. 어차피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옳은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틀린 것이다. 


작년 12월 중순엔가 '이제 더이상 테니스에 예전같은 관심이 안 가네'라고 이 블로그에 써놓고는, 결국은 어느해보다 테니스덕에 감정의 소용돌이를 많이 겪었던 2022년 상반기... 드디어 방학이다 ㅎㅎ.


황혼기 | Nothing matters. (mori-masa.blogspot.com)  ->> 지금 다시 읽어보니 새삼 재밌네.


누군가는 정치 유투브를 보고

누군가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뤄주실 것이라 하고

누군가는 테니스를 본다.

그러면서 그 세계를 모르고 어찌 인생을 살 수 있는지 서로가 신기하다. 이렇게 좋은데 🤗. 동시에 타인들은 어떻게 저런 존재를 믿고 일희일비하면서 그 존재가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즐거운 몰입의 세계.





또 사라진 기억을 끌어오기



기껏 17시간 (경유) 비행기 타고 현지로 날아가서
호텔방에서 봐야 했던 또 하나의 경기는 나달 : 조코비치 8강전. 많은 팬들이 이번 대회 최고 경기로 꼽는 경기지만 나에게 강렬한 기억은 없고 희미한 장면들만 머리 속에 남아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밤새워 새벽 경기를 잘 보는데, 오히려 파리 현지에서 밤 11시 -12시가 되니 졸리기 시작해서 몽롱~해졌다. 이상한 일이야... 

프랑스 공중파(?) 방송사는 롤랑가로스 낮 경기만 중계하고 밤 경기는 정규 방송을 하는 탓에 😔 친구가 빌려준 아이디로 아마존 프라임 작은 화면으로 봐야 했고, 맥주는 두 캔을 사놨는데 맥주 한 캔에 이미 살짝 취했었다. 술 때문에 졸렸던 것은 아님. 나는 술을 마시면 오히려 잠을 못자는 스타일이라서... 나는 탄수화물의 힘으로 (?) 술을 먹는 편인데 (예: 쌀밥을 미리 먹고 술을 마시면 덜 취한다) 그날은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속에 맥주를 마셔서 그런가, 유난히 정신이 맑진 않았던 것 같다. 맑지 않은 정신으로 응원해서 조코비치에게 2세트를 넘겨준 거라고 굳게 믿고 🤣😂 3세트부터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냉장고가 없는 3성 호텔이라, 두번째 캔은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받고 넣어놨었나.. 뭐 그랬던 거 같다. ㅋㅋ

매우 긴장하면서 되도 않는 스페인어로 tú puedes 이런 거 주절대고 있었고, 최근에 마드리드오픈 중계보다가 관중들이 어린 알카라스에게 해주던 응원 "Sí se puede! Sí se puede!" ( yes you can)를 배워서, 위기때마다 그것도 주절주절 했던 것도 같다. 

이 경기가 끝나고 20여일이 지나도록 잊고 있었는데, 지금 되새겨 보니 짜릿한 샷이 나온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거나 박수를 치기도 해서 한밤중에 옆방 사람한테 이래도 괜찮은가 걱정했었던 기억이 어슴푸레 난다.

그날 묵었던 호텔 구조가 약간 특이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한쪽에 문이 하나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야 내 방과 내 옆방이 나왔다. 굉장히 작은 호텔인데도 이중문이 있던 방 두 개.






이렇게 102 103 두 방만을 위한 문이 따로 있는 구조여서, 괜히 옆방이 무슨 공동체(?)처럼 느껴지면서 내가 내는 소리가 더 잘 들리지나 않을지 걱정했던 거 같다. 하지만 뭐 항의 같은 건 없었다. 슬그머니 '옆방도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던 듯 하다. 옆방은 내내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 것 같기도 했지만 출입문 여닫는 소리가 났기 때문에 누군가 있다고 판단했다.

경기는 마침내 승리로 끝났고, 나의 마음 고생도 끝났다. 나는 4강전 1*2경기 모두 & 결승전 표를 사뒀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나달 경기는 어디에 배정되든 무조건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발이 아픈 나달이 대회 중간 탈락할까봐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나달 경기 표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나달 : 즈베레프 경기가 준결승 제1경기로 배정되고 나서, 미리 사둔 제2경기 표를 resale로 넘길 때 엄청 긴장했다. 혹시라도 내가 뭔가를 착각해서 제1경기를 resale로 넘기게 될까봐. 🙄 그러고 나면 절대 다시 구할 수 없지👻. 몇 번이나 확인해도 이상하리만치 안심이 안 되어서 '일단 내일 제1경기 들어가서 무사히 자리에 착석한 다음에 제2경기를 리세일로 내놓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뭐, 결국 마음 단단히 잡고 무사히 리세일로 잘 팔긴 했다. 




승리 확정 후 관중에게 인사하는 나달



아마존 프라임 생중계는 화면 캡처가 가능했는데
경기가 종료된 뒤 '다시 보기' 할 때는 화면 캡처가 되지 않았다. 위 화면은 생중계 때 캡처한 것.

프랑스 시간으로는 새벽 1시에 끝났지만, 서울은 아침이 되었기에 한국의 친구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는 톡을 좀 하고, 남은 맥주 반 캔을 더 비우고, 트위터의 테니스 관련 반응을 체크하고... 파리에 온 이래로 가장 늦은 시간에 잠들었다.

이 경기를 통해 나달도 테니스 커리어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는 길목을 닦았지만
나의 파리 여행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에서 벗어나 행복 모드로 접어드는....

정말 초조한 가운데에서도 잠도 쏟아지고 ... 현지에서 보는 게 더 졸렸던 기묘한 경험이었는데,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놓는다. 지금은 이만큼이라도 기억나지만, 몇 년이 지나 이 글을 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어??' 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여기 쓴 내용 중에도 이미 기억의 조작이 있을지 모르겠다. 꿈과 이상과 현실이 뒤죽박죽되어서?!? 



2022 롤랑가로스 나달 우승을 가능케 한 또 하나의 요인





6월 3일 라파 나달 생일날의 4강전.
이제 입장만 했을 뿐인데도 관중석에서 울려퍼지는 응원 "Rafa!! Rafa!! Rafa!!"

예전같으면 랭킹 1,2위 안에 머물러 있던 나달이 늘 나중에 입장했지만, 요즘은 나달 랭킹이 낮아져서 순위 높은 상대 선수보다 먼저 입장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 다음에 입장해야 하는 선수는 랭킹이 더 높은 선수라도 이미 Rafa!! 응원으로 가득한 경기장에 상당한 압박감을 받으며 입장하게 된다. 안그래도 뭐 필립샤트리에에서의 나달과의 대결이라면 위축되지 않을 선수는 지구상 단 한명도 없는데.... (작년만 해도 이런 식으로 쓰는 걸 경계했는데, 이건 정말 이번 2022 롤랑가로스를 보내고 나니 확신을 갖게 됐다. 위축되지 않을 선수는 없다. '아닌 척' 할 선수는 분명히 있겠지만)  


이 열광적인 응원은 나달에게 힘이 필요할 때마다 경기 중간 중간 계속 됐고

준결승전 1세트의 어떤 게임은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으로 상대 선수가 기가 눌리면서 나달이 브레이크해낸 것 같은 느낌을 주던 게임도 있었다. 관중 모두가 힘을 합쳐 한 게임을 가져오는 것 같던 그 느낌.


물론 내가 나달 경기를 처음으로 끝까지 지켜본 것이 윔블던 '결승전'이었고 - ATP 10위권 선수라 해도 평생 못 밟아보고 은퇴할 수도 있는 - 그 위치에 어릴 때부터 선 선수라서 나달에게 '언더독' 타령하면 안 되겠지만, 내가 경기를 처음 지켜보던 10여 년 전에는 페더러라는 견고한 벽이 있어서 나달은 '그의 커리어에 훼방을 놓는 존재'쯤으로 치부되며 악역 취급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그랬던 선수가 경기장 전체를 채우는 일방적인 응원을 받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감개무량했다. 이 일방적인 응원에, 다른 선수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다며 핏대를 세우는 안티들도 있던데... 그 설명엔 그저 단 한 마디만 필요하다. "He earned it." 라파도 이런 응원을 처음부터 받은 것이 절대 아니었으니까.


5월에 여행을 시작하면서 나에게도 다짐했던 말, C'est Mérité. 





 



 


경기 중 화장실 갔다 온 날




명경기가 될 뻔 했던 2022 롤랑가로스 4강전.
나달:즈베레프

무려 91분간의 1세트는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91분이었다. 보통 91분이면 3세트 경기 전체가 끝나기도 하는 시간인데 1세트에만 이 정도 소요됐다. 2011년 9월에 멈춰있었던,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은 행복했던 시간"을 거의 11년 만에야 경신했던 시간이기도 하다. "내 인생에 이런 경험도 가능하구나" 하고.






1세트는 그렇게 대단했고 즈베레프는 다 잡았던 1세트를 놓쳤다.
2세트 시작 즈베레프의 게임을 나달이 브레이크하면서 난 이제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 나달의 일방적인 공세가 시작되어 매치가 일찍 끝날 줄 알았다. 1세트를 다 잡았다가 놓친 즈베레프가 그 아쉬움에 정신력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충 치다가 말 것 같아서.




귀국한 뒤 경기를 다시 봄. 
아마 모든 사람들이 딱 이 지점 40:15 까지는 그렇게 경기가 술술 풀릴 줄 알았겠지....

하지만 멘탈 와르르 예전의 그 즈베레프도 아니었고, "자기애의 황제"인 즈베레프는 '자기와 실력을 견줄 만한' 랭킹이 높은 선수와 만날 때는 악에 받쳐 잘 싸운다(내 생각). 경기장에서 나도 잠시 깜빡했지만, 즈베레프가 자주 그렇게 허무하게 경기를 내려놓는 경우는 상대가 약체일 때다. 즈베레프는 '수준이 맞는 상대'와 경기할 때는 훨씬 열심히 한다. 꼭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 내가 열과 성의를 다 하지' 이런 느낌? 이건 내가 또 한 명의 '자기애 환자'라고 생각하는 키리오스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키리오스는 전체적인 실적에 비해 랭킹 높은 선수들과 상대 전적이 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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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2세트는 예상 밖 브레이크의 향연으로 승부 공방만 길어지고 흐름은 묘해지고 있었다. 경기장 현장에서 나도 '3시간이 되도록 2세트를 못 끝내면 이거 이 경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하고 있었다.


2세트 3:4로 밀린 상황에서 또 브레이크당하는 나달





2세트도 끝나지 않았는데 경기 시간 2시간 37분째



중계 화면을 빌리자면, ⬆️이 2세트 즈베레프 5:3 서브 게임 시작 직전에 난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원래 선수들의 end change (행해진 게임 숫자 합계 홀수) 시간 빼고는 관중 움직임이 없도록 입구에서 차단하고 있지만, 들어오진 못해도 "나가는"사람에 한해 막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애초에 나도 화장실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보다 안쪽 좌석에 있던 사람이 나가길래, 나도 서둘러 따라 나섰다. 

십수만 원을 내야 하는 필립 샤트리에 코트 좌석도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 수준 간격이기 때문에 누군가 화장실에 가면 다들 우르르 일어나거나 다리를 틀어 비켜줘야만 한다. 다른 사람 따라 나가면 그나마 덜 민폐.

내가 나가기 직전 게임을 또 나달이 브레이크 당해서 즈베레프의 5:3 '서빙 포 세트' 상황에 도달했기에, 나는 '서브 강한 즈베레프에게 이번 세트는 넘어가겠네 뭐'하고 일단 화장실에 다녀오기로 했다. 1세트 끝나고 지켜보니 많은 사람이 화장실 해결 혹은 먹을 것을 사느라 나갔고,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줄이 길어져 해야할 일을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2세트 몇 게임을 놓친 뒤에야 겨우 돌아오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행해진 게임 숫자 합계 홀수로 끝났을 때만 (선수들 엔드 체인지 시간을 틈타) 입장을 허용하기 때문에, 밖에서 화장실 줄을 서다 보면 2세트 1게임 끝났을 때는 들어오기 어렵고 한~참 시간이 흘러 2세트 3/5게임이 끝났을 때에나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전까지 ' 이 사람 벌써 집에 갔나??' 싶게 긴 시간 동안 옆자리가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한참 만에 대회 공식 음료인 '페리에' 한 병씩 들고 다들 돌아오는 거였다. 매점 이용률 높구만. 
그래서 난 인파를 피해 세트가 종료되기 전 화장실에 다녀오기로 했다. 

밖에 나가니 역시나 한창 세트 진행 중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고 호닥닥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경기장에 입장하려 기다리고 있으니 환호 속에 게임 끝나가는 중. 으응? 사실 관중 환호는 나달이 잘 해야만 나오는 건데?? 





화장실에 다녀오면 즈베레프가 5:3에서 게임을 가져가서 6:3으로 세트도 마무리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안 보는 단 한 게임 동안 더블 폴트 3개를 관중들에게 선사하며 그대로 게임을 헌납, 그저 5:4가 됐던 것이다. (물론 경기장에서는 상황을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 그 자세한 스코어는 몰랐다가 나중에 찾아보고 더블폴트 퍼레이드를 알게 됐다.)

물론 경기장에 남아있었다면 포기에 가까웠던 5:3 상황에서 5:4로 따라붙는 실황을 목격해서 열광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명장면을 놓친 게 아니라 즈베레프의 고질병인 더블 폴트 향연만 놓친 셈이니 다행이기도 했다. 

스포츠에선 선수는 물론 팬들까지 온갖 징크스와 루틴의 틀에 갇혀 사는데, 앞으로 뭔가 즈베레프가 '불필요하게' 너무 잘 한다 싶으면 난 화장실로 가야 하나 ?!?!

이 경기는 막판 즈베레프의 부상으로 2세트도 못 끝내고 종료되었다. 행실 때문에 즈베레프를 미워한 적도 있었지만 이 경기를 기점으로 '너무' 미워할 순 없게 되었다. 큰 부상에 나도 모르게 꽤나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조금이나마' 응원해줄... 게.


이 날은 경기 시작 전 갑자기 비가 쏟아졌고 roof를 덮은 채 경기가 진행됐다. 나중에 날이 개었지만 경기 중에 지붕을 다시 여는 일은 없으니, 선수 둘다 엄청난 땀을 쏟아내며 거대한 온실 속에서 사투를 벌였다. 그게 즈베레프 부상의 원인이 됐다고 생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일생에 단 한 번일지 모를, 지붕 덮인 필립 샤트리에 안에서 경기를 관람한 날이 되었다. 경기장에 (특히 상층부) 앉아 있으면 지붕 위로 타닥타닥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다. TV 중계로는 알 수 없었던 경험들.






either way around



2022년 시즌 시작 이후 20연승을 하고 있던 라파엘 나달이 인디언웰스 결승전에서 패배, 북미 하드코트 시즌을 마쳤다.
인디언웰스는 특히 그랜드슬램 대회 바로 다음 규모의 큰 1000시리즈 대회라서 7명을 만나서 이겨야 우승할 수 있는 대회이다. (상위 랭킹 32명은 1회전 부전승을 받아서 6명만 만나면 되긴 한다.) 



1000시리즈 대회는 1년에 9개가 열리는데도 십수년간 이 1000시리즈 대회급을 우승한 선수가 몇 명 되지 않을 정도로, 역시 7명을 연속 상대해 꾸준한 기량을 유지하며 모두 이기기란 쉽지 않다.

사진 속 마이크를 잡고 있는 24세 테일러 프리츠 역시 이 우승이 1000급 대회 첫 우승으로,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결승에 올라오기 직전 경기에서 발목을 접질러 뛰기도 힘든 상태였다.

나달 또한 준결승에서 공조차 제대로 날아가지 않는 태풍급 바람 속에 3세트 혈전을 벌여서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는데, 결승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걷지도 못할 줄 알았던 프리츠가 점수 차를 벌려나갔고 결국 나달이 열세를 뒤집지 못하고 패했다. 

주니어 시절에는 꽤나 잘 나가는 선수였다가 투어 레벨에 진입해서 예상치만큼 성취를 보여주지 못했던 프리츠였기에 다시 안 올 기회라는 걸 알고 고통을 안고 뛰었던 것이다. 물론 나달도 평소보다 많은 실수를 보여주며 고통과 싸우고 있었고. (너무 아쉬운 실수를 해서 나도 모르게 "으악!"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엄마가 놀라서 내 방에 들어오시기까지 했다😝) 


1세트는 프리츠가 압도했었는데, 2세트가 되니 두 선수 모두가 부상을 안고 고통 속에 비몽사몽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선수 모두 실수가 증가해서. 

그러다가, 지난 호주 오픈 결승 5세트도 어떤 식으로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결과와 반대로도 흘러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 5시간을 꼬박 채우고 6시간째에 돌입한 경기, 몰려오는 피로와 포기하지 않는 상대방의 끈기가 주는 압박감.... 당연하게 라파가 이겼겠거니 했지만, 오늘 두 선수가 고통 속에 헤매며 경기를 진행하는 것을 보니 그때 어떤 결과가 나와도 모르는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래서 비록 오늘 지더라도 그 승리가 있기에 모든 건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초반 3개월을 행복하게 살게 해준 명약💊. 사실 그 우승이 없었더라면 2022년을 무슨 재미로 살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2022년에 이미 많은 것을 이뤘기에 나달이 패배를 잘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처음 경험해보는 형태의 통증 때문에 (chest pain?) 본인도 생각이 많아져 시상식 때 우울해보여서 좀 안타까웠다.

그래도 푹 쉬고 4월에 시작하는 클레이 시즌에 좋은 일이 있길!
내 생각같아서는 몬테 카를로 or 바르셀로나 중 하나 정도는 건너뛰어도 좋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이룬 것에 감사하자 하면서도
승리의 달콤함도 알기에 욕심을 숨길 수도 없다.



테니스를 14년 보면 미신과 함께 본다.






숫자 '21'보다는 그동안 준우승만 4번 한 '호주오픈' 한 번 더 우승해보자는 게 훨씬 간절했던 결승전.

간절하면서도 사실 이길 것 같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 마음 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져도 된다 져도 된다 하면서 보았기에 1,2세트 패배끝에 3세트를 가져갔을 때 '이제 이것만으로도 됐다'라고 안도해서 마음이 더 편해졌던 듯 하다.

메이저 대회 결승 문턱도 못가보는 선수의 팬들이 들으면 호강에 겨운 소리한다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10년간 4번의 결승전에서 너무 불운해서 마음 아팠던 나달의 호주오픈, 그래도 올해는 어떤 보상은 있지 않을까 했다. 

잘 되리라 믿으면서도, 올해와 비슷하게 부상에서 복귀한 뒤 얼마 안 된 시점에 있었던 2019년 결승전이 재현될까봐 걱정이 됐다. 4강전까지 너무 파죽지세로 올라가서 결승도 해볼 만하다는 소리가 많았던 2019년이었지만, 조코비치에게 별 힘도 못 써보고 3세트만에 깔끔하게 패배했다. 그뒤 내가 기억하는 인터뷰 내용 중엔 '부상 복귀 뒤 다른 것은 몰라도 조코비치 수준의 수비에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라는 것이 있었다. 올해 2022 호주오픈도 나달의 결승전 상대자가 그 조코비치를 3세트 압살하는 수준의 "문어발🐙" 질식수비 다닐 메드베데프라서 같은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35살에 힘들게 결승에 갔는데 6-2 6-1 6-3 초라하게 퇴장하면 어쩌지?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미친듯이 공을 받아내고 보내는 2021 US오픈 우승자 다닐 메드베데프를 2022 호주오픈 우승 후보로 꼽았고, 나도 그의 수비에 지쳐 10살 많은 나달이 나가떨어질까봐 걱정은 좀 됐다. 메드베데프는 타이핑하기에 이름이 길어서 앞으로 '다닐'의 '예쁜' 러시아식 애칭 "Даня다냐"로 쓰겠다. 러시아 사람들만 그들의 '몌드볘졔프'를 다냐로 부를 뿐 Саша싸샤처럼 보편화된 애칭은 아니다(너무 다냐스럽지 않게 보여서?! 😉). 쳐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타이핑이 유난히 귀찮은 이름이라 한국에선 보통 메뎁, 영어권에서는 Meddy라고 쓴다. 


곧 26살이 되는 다냐입니다 :)



작년 US오픈 결승에서 조코비치도 공략에 실패한 다냐의 수비벽을 나달이 이번에 뚫을 가능성이 안 보이는 와중에도 다른 방향의 생각도 했다. 나달이 호주오픈에 준우승 징크스가 있다면 작년에 준우승한 다냐라고 없을 이유도 없다는 것. 내 생각에 다냐는 US오픈에서 좀 더 뛰어난 것 같았다. 2019년 라파;다냐 US오픈 결승을 보면 2세트까지 맥없이 나달에 밀리던 다냐가 3,4세트 거센 반격에 나섰었고 2021년에는 빈틈없는 모습으로 우승까지 차지했는데, 2021년 호주 오픈 결승에서는 1세트에서 경기가 안 풀리니까 침착하게 추격을 하는 게 아니라 공을 마구 치면서 스스로 붕괴하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래서 다냐가 생각보다 호주 오픈과 잘 안 맞는 게 아닐까 하는 '분석' 아닌..... '바람'을 가졌다.☺ 무적모드 US오픈과는 달리 호주오픈에선 5세트까지도 종종 끌려가고.


나의 또다른 "믿는 구석"이 뭐냐면 호주오픈 때의 나의 건강과 나달 건강이 비슷하다는 이상한 착각인데, 이번 결승전 당일날 내가 몸이 아픈 곳이 없어서 나달이 이길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을 갖게 됐다. 

이런 착각을 하게 된 것은 2014년 나달의 결승전부터이다. 결승 상대는 한손 백핸드 바브린카로, 당시 나달에게 12연패 중이었다. 한손 백핸드를 치는 선수는 상대적으로 나달에게 매우 약하다. 게다가 나달이 페더러(역시 한손 백핸드)를 만나서도 탁월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준결승을 쉽게 끝내고 결승에 올라가는 바람에 당시 거의 모두가 나달의 우승을 점쳤다. 

그 결승전 시작 전, 낮에 동창 결혼식이 있었는데, 같이 참석했던 친구 차를 타고 집앞까지 같이 왔다. 친구가 나를 내려주고 떠나는데 혼자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뒷걸음질 치다가 뒤에 있던 볼라드를 보지 못하고 걸려서 그대로 인도에 발라당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내가 인도에 그렇게 누워본 것은... 술취하지 않고서🤪 제정신으로는 유일한 날인 듯. 그래서 근육이 놀라서 불편감이 있었는데, 나달도 그날 결승 직전 연습 시간에 당한 갑작스런 허리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패배하고 말았다. 헉, 혼자서 후회했다. 친구의 차는 이미 떠나버렸는데 뭘 인사하겠다고 서 있었을까. 나도 예상치 못한 부상을 당했는데, 나달도 당했구나.....

그러다가 2017년, 나달이 또 호주오픈 결승에 가게 됐는데 그때는 준결승을 보고 나서 책상 밑에 뭔가가 떨어져서 주우러 밑에 들어갔다 나오다가 책상 밑면 쇠고리에 머리를 쾅 부딪히고 말았다. 그래서 두피에 작은 딱지가 생길 정도의 부상(?). 그 해에도 나달이 결승 5세트 가서 아쉽게 패배ㅜ.ㅜ 

2019년 인디언웰스 때도 내 한쪽 무릎이 이상하게 욱신거렸는데 나달도 무릎 통증을 이유로 (그러나 나와는 반대쪽 무릎이었던 듯 😝) 4강전에서 기권했다. 그래서 그 뒤로 묘한 혼자만의 착각/미신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다치지 않아야 나달도 잘 풀린다.... 하는 거?? 

그런데 어제 결승전날은....아침에 눈을 떴는데 몇달간 나를 괴롭히던 통증이 없었다.
그래서 아, 오늘 잘 되겠구나 하는 감이 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익숙한 그 통증이 있었다면 '아, 오늘도 안 되겠구나' 했을 거다. 그 혼자만의 생각이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미신은 이렇게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ㅎㅎㅎ

하지만 결승전 2세트까지는 나달이 끌려가는 양상.
라파 - 다냐의 결승전 1세트는 2-6로 차이가 많이 났지만 2세트는 6-7로 근소한 차이로 졌다. 그래서 그때 이미 마음이 편해졌다. 적어도 2-6 1-6 이런 식으로 격차가 크지 않고 타이브레이크까지 갔으니 처절히 싸우다가 진 것이기 때문에. 




해설자 📢 "메드베데프가 관뚜껑에 못질을 하네요"





2세트도 졌지만 우울하진 않고 그냥 이건 어쩔 수 없구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단지 첫 서브가 너무 안들어 간 게 답답했는데, 간발의 차로 벗어난 몇개만 들어갔어도 서브 에이스로 경기시간이 훨씬 단축되었을 같아서 너무 아쉬웠다. 어찌나 첫 서브가 안 들어가던지... ㅠ.ㅠ 그러면서도 오늘 신체 상태가 좋은데 5세트까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다. 

3세트 중반 해설자가 "메드베데프가 관뚜껑 덮기 직전이네요" 했을 정도로 스코어가 밀렸을 당시, 나달은 이런 때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 "Pues ya está" 그래, 이 정도면 됐다 - 였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모두가 포기했을 당시, 나달만이 포기하지 않았다.
 
롤러 코스터를 타던 끝에 5세트까지 왔고 25세 다냐보다 35세 라파의 체력/집중력이 훨씬 돋보였다. 마지막에도 고비가 있었지만 결국 우승했다. 🏆
나랑 진짜 건강 상태 일치하나봐! ㅋㅋㅋ 
내 착각은 나의 자유 :)




오늘은 발 통증이 전혀 없어서 좋았다고. 선천적인 것이라 고치지도 못하는 그 발 통증 ㅜ 



결승 하기 전에도 이기면 많이 울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 나는 5시간 반 동안 덤덤하게 봤는데도 챔피언십 포인트가 끝나자마자 진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었다. 나에게도 그런 눈물이 있을 줄은.... 

운좋게 반대편 드로가 망해서 쉬운 상대가 결승에 올라오길 바라기도 했지만, 꼭 현시점 1인자 메드베데프가 올라와야 한다는 어떤 팬의 말도 결국 맞는 말이었다. 현존 하드코트 최강자를 실력으로 끝끝내 누르고 우승했으니 뒷말 나올 일이 없다.

경기 끝나고 기억의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꺼내보지 않는 경기들도 있는데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는 경기가 또 생겨서 기쁘다. 2019년 US오픈 결승, 역시 다냐와의 경기 5세트는 진짜 몇 번을 다시 봤는지 모르겠다. 


결승전 패배 후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야유하는 관중에 대한 실망과 함께 어린 소년의 꿈이 이젠 죽어버렸다는 인터뷰를 한 다냐 메드베데프. 물론 그가 서브할 때 방해를 일삼은 관중들도 나빴지만 다냐도 경기가 안 풀릴 때 본인도 제어를 못하는 광기 + 관중이랑 꼭 맞장을 떠보려는 똘끼가 있어서 안티를 수집하는 중인 듯. 경기가 끝나면 정상인으로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난 다냐 좋아하는데...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 다냐가 2018년에 ATP tour 첫 우승하던 경기도 지켜봤었고, 그가 우승 스피치에서 그 자리에 오지 못한 아내에 대해 말한 것도 기억난다. 비자를 못받았다던가... 특히 2019년 US open Wawrinka와의 경기에서 신선한 인상을 받아서 그 후로는 늘 다냐의 경기는 범상치않다고 생각하고 즐겨보는 편이었다. 물론 나달과 붙으면 나달을 응원하지만. 😁

조코비치가 코트에서 고함 지르고 난리나는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다냐에게서 발견해서인지 자꾸 자기와 다냐를 비슷한 라인으로 묶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조코비치가 본인과 비슷하게 코트에서 라켓을 후려치는 즈베레프까지 포함해서 "이들은 코트 안팎에서 "완벽한 척"은 하지 않는 authentic 선수들"이라고 인터뷰. 아니 그런 행패가 착한 '척' 안 하는 솔직함에서 나온🤷‍♀️ 행위라면, 다른 인성 좋은 선수들은 '가식'으로 코트에서 자신을 다스리고 있다는 말?) 다냐 본인도 범생이 스타일 나달보다는 조코비치를 더 가깝게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관중에게 응원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조코비치식 감정 표출 노선에서 벗어나는 게 나아보인다. 그래도 다냐는 인터뷰 등을 너무 잘 하고 솔직해서, 다른 종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선수이다. 조코비치와 즈베레프는 인터뷰만 보면 서글서글 좋은 사람같으면서도 최근 거짓말을 한 사례가 걸려서 주위를 시끌벅적하게 만드는 느글느글한 캐릭터들인데 다냐는 거짓말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 두 명과는 다른 노선을 택하면 좋겠다.





'왜 나를 응원하지 않지?' 같은 생각 대신에 심판에게 고함치고 행패 부리는 버릇을 먼저 고쳐야 될 듯. 사람들에게 악당 캐릭터로 몰리기 딱 좋다. 국적에 관련된 악담을 퍼부은 최악의 관객들의 잘못도🤦‍♀️ 크지만, 다냐도 괴성과 손짓으로 관중 눈에 띄게 되는 자신의 경기장 태도를 고쳐나가지 않으면 관중과의 관계는 나아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다. ("Pro tip: Making dismissive hand gestures to a packed stadium isn’t the best way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 LA times, Charles McNulty) -> 3세트 막판에 다냐가 브레이크 포인트에 몰리는 과정에서 나달팬들의 환호로만 끝났을 것을 거기서 다냐가 삐딱한 표정으로 관중을 비꼬는 듯한 태도로 박수를 치자마자 야유가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실수에 환호하는 관중을 충분히 기분나쁘게 생각할 수 있지만 + 꼭 도발을 하는 것도 다냐임. 관중의 사랑은 본인이 얻는 수 밖에 없는데 늘 반대로 행동해서 아쉽다. 

사랑받는 선수들이 어떻게 처신해서 사랑받고 있는지를 참고 좀 하고... '나는 착한 척은 하지 않고 살 거야'라고 생각하기보다 그게 '척'이 아니고 진짜 사람됨됨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건가? 경기장의 반을 채울 내 팬들은 다년간의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15년 이상을 뛰어서 다수 관중의 사랑을 획득한 노장 선수에 비해, 관중이 자신들에게 응원을 해주지 않는다고 징징대는 5-6년차 '넥젠'의(여기서는 다냐를 포함하는 것이 아님) 몇몇 인터뷰 내용을 보고 질린 이번 호주오픈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온세상이 자기를 응원한다고 착각하는 거대한 자아상을 가진 선수(ni...k...🤡)도 있어 놀랐고.

나달조차도, 롤랑 가로스에서 이미 4번이나 우승한 후였던 2009년에 16강전에서 소덜링에 패해서 탈락할 때 관중들이 디펜딩 챔피언인 자신이 아닌 소덜링을 크게 응원해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관중들은 처음에는 기대하지 않았다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소덜링의 한 포인트 한 포인트에 환호가 점점 커지고 나달이 실수할 때마다 열광하며 엄청 큰 소리를 냈다. 특히 마지막 타이브레이크(12:57~)는 화질 때문에 공의 움직임이 잘 안 보이지만 관중의 엄청난 함성이 들리면 그게 소덜링의 위너/나달의 에러라고 보면 될 정도. 올해 호주오픈에서 나달이 받았던 응원을 소덜링이 받았다고 보면 된다. 당시 롤랑에서 4번이나 우승한 선수였던 나달이 상처를 입었을 만하다. 자신의 고난을 기뻐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의 그 기분이란....



메드베데프는 인터뷰에서 '관중들은 내가 (+ 넥젠이 )이기기를 원치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앞으로는 자신을 위해서만 경기를 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하지만 2009년 16강전에서 22살 나달에게도 그랬다. 관중들이 당시 페더러의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4년째 저지 중이었던 나달의 승리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저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본인보다 거대한 산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겪어가며 13년이나 더 꾸준한 경기력과 본인의 인성, 평상시 언동 등 자기 관리를 해온 결과 오늘에 이르러 관중의 사랑을 얻은 것인데 5-6년차가 프로 생활 20년의 두터운 팬층과 비슷한 응원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나도 오래전 나달이 준우승한 경기를 본 뒤에 팬이 됐듯이 다냐의 준우승 과정을 보고 이번에 분명히 팬이 더 많이 생겼을 테니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으면 좋겠다.

실력보다 인성으로 욕 많이 먹고 있는 소위 '넥젠'들을 나는 귀엽게 보려고 하는 편이었는데, 최근에 보니 다들 너무 자의식 과잉이고 성취에 비해 비대한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싶기도 하다. 얘들도 35살 되면 '요즘 것들은 투정을 많이 하네, 나때는 말이야....' 그러고 있겠지.😆


아무튼, 2012년 6시간 결승전의 쓰라린 패배 이후 
10년 만에 이번 호주 오픈은 해피 엔딩.
해피 엔딩이지만 펑펑 울 수 있어서 더 행복했던 2022년 1월 30일이었다.
지면 울지 않지만, 우승하면 눈물이 나니까.




  


#takeOn21



나달 패배에 대한 생각들.

예전에는 며칠씩 우울하고 그랬는데, 이젠 영향을 덜 받는다. 기대도 안했던 그랜드 슬램 우승 "20"이라는 숫자를 이미 채우기도 했고, 그동안의 감동으로도 충분한 14년이었으니까.


나달은 이번에 그랜드 슬램 21회 우승이라는 유일무이 대기록을 정조준 중이었는데, 그동안 나달이 누구나 기대하던 기록을 한 번에 갈아치운 적이 없어서 아마 이번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고 미리 맘을 내려놓고 있었기 때문에 어제 실망을 덜 했는지도 모르겠다.

2014년에 그 당시까지 페더러(17회) 제외 최다 슬램 우승기록이었던 샘프라스의 "14회" 우승에 도전할 때도 결승전에서 한 번 재수를 했다. (2014 호주오픈 주최측에서 그 도전을 기념하기 위해(맞나?) 먼 미국에서 대외활동 거의 없는 샘프라스까지 시상자로 모셔왔는데, 결승에서 나달 부상* 발생. 샘프라스는 다른 사람에게 트로피 줬다) 롤랑 가로스 La décima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에 다가갈 때도 2015, 2016 두 번 결승도 못가고 미끄러졌었다. 

2013년 US open 두번째 우승 이후, 나달의 모든 팬들이 가장 고대하는 기록이 된 "더블 커리어 그랜드 슬램".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호주 오픈 우승 하나만 필요했지만 2014년 이후 결승에서 3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나달의 가장 최근 호주오픈 결승이었던 2019년 결승에서도 워낙 파죽지세로 결승에 올라가는 바람에 또 주최측이 나달의 더블 그랜드 슬램이 유력하다고 보고 더블 슬램 선배들인 로드 레이버/로이 에머슨을 결승 시작 전 트로피 행사에 등장시켰으나 🤝 나달의 결승전 대패로 시상자로는 뜬금 이반 렌들이 나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그때 나달이 우승했으면 시상자로 렌들 아닌 레이버/에머슨이 나왔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21회 우승도 언젠가는 이룰 거지만, 이번 한 번 도전에 덥석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클레이 시즌의 시작과 함께 더블 폴트가 너무 많아졌는데, 중계를 보면서 '저 서브로는 올해 우승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달이니까 롤랑 때까지 반드시 고칠 거야..라고 생각했었고 실제로 로마 오픈 때는 서브 문제가 거의 없어져서 "역시..." 하고 안심했었는데, 롤랑 8강 슈와르츠만 경기부터 다시 더블 폴트로 흐름을 내주는 일이 생겼다.

서브가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은 클레이 코트이지만, 올 시즌에는 유난히 중요한 흐름을 끊어먹는 더블 폴트가 많았고 그것 때문에 게임을 내주거나 심지어 세트를 내줘서 체력 부담이 증가했다. 팬 의견들 중에 4강전에서 서비스는 큰 문제가 아니었고, 백핸드에서 밀리면서 패배했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나는 결국 더블 폴트가 큰 재앙을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백핸드가 약점인 것은 2014년 조코비치와의 롤랑 결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조코비치가 나달 백핸드 쪽으로 계속 보내기만 하면 언젠가는 에러가 나던 경기였다. 그래도 그때는 올해처럼 더블 폴트를 8개씩 하지도 않았고 나달 경험치의 우위와 함께 쨍한 낮경기이기도 했기에 이겼다. 더불어 조코비치의 백핸드 에러도 눈에 띄던 경기.

이번에 no.1 조코비치도 나달과의 롤랑 경기에서는 생각보다 엄청난 압박을 느낀다는 걸 새삼 알게 됐고, 그래서 조코비치 게임 브레이크도 많이 했는데, 나달까지도 자기 서비스 게임에서 자신감을 잃으니 기껏 뒤집어 놓고 다시 끌려갈 수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롤랑 시작 전 이번 클레이 시즌 서브 문제에 대해 나달도 심리적 문제였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올해는 계속 타이브레이크에서도 승부처에서 더블 폴트가 나오니 😰 쉽게 포인트 선물하고 난 후 심적 부담과 체력적 부담이 증가해서 계속 말아먹는 형태 ㅜㅜ

준결승전에서 90분이상 소요된 3세트가 역사상 최고의 한 세트였다는 트윗을 많이 봤는데, 나는 브레이크가 난무하면서 시간이 길어진 이 세트가 사실 둘다 늙었고 둘다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지 잘 보여준 세트였다고 생각한다. 나달은 늘 "슬램 최다 우승 기록 세워서 역대 최고 선수가 되는 것은 나에겐 그리 중요치 않다"라고 말해왔는데 (hypocrite! 라는 악플이 많이 달림😝) 대회가 끝나고 보니, 나달이 뭔가에 눌려 심적 부담이 굉장히 컸던 대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1년내내 벌어지는 테니스 대회 중에서 모든 대회를 압도할 수 있는 조코비치가 "도전자"의 자세로 이것저것 전술을 실험해가며 덤비는 단 하나의 대회라는 부담도 있을 테고.

예전에는 나달에게 드로가 무슨 소용이냐 다 패고 올라가는데...이런 식이었다면, 이제는 체력 문제 때문에 그랜드 슬램 대회 드로 배정과 경기 시간 배치가(낮 경기가 유리) 너무 중요해졌다. 롤랑 전에 나달이 랭킹 3위가 되면서 조코비치와 결승이 아닌 준결승에서 붙을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많은 팬들의 반응이 "차라리 낫다. 준결승이 부담이 더 적다" 이런 식이었다. 나도 시작 전에는 살짝 그렇게 생각했는데, 결과가 나오고 보니 결단코 최악의 상대와는 해가 쨍쨍한 낮경기로 시작하는 결승전에서 붙어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달은 클레이 코트에서 헤매는 모습은 주로 야간 경기에서 보여줬다.


또한 2020년 롤랑처럼 무실세트로 압살하면서 올라가지 않으면 8강 4강 경기에서 '그 나달'도 집중력을 잃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메이저 대회 2연속 역전패. 
'마지막 세트 가면 경험과 체력에서 앞서는 나달이 유리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것도 2019 us open이 마지막 불꽃이었던 듯. 

팬들 트위터를 보면 다들 벼라별 푸념과 징크스를 털어놓고 있던데, 그 와중에 나만 혼자 생각하는 😜 '안 좋았던 징조' 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롤랑 가로스에서 우승자가 트로피를 건네받을 때 트는 음악이 있다. 나달이 거의 매년 우승했으니 사실상 1년에 한번씩 공식적으로 들어왔던 셈인데, 가끔 유투브 재생하다가 우연히 그 음악이 들리면 눈물이 찔끔 할 정도로 혼자 감동하는 음악이다. 🥺 

그런데 올해 롤랑 가로스 측에서 나달의 13회 우승을 기념하여 동상을 세워줬는데, 그 동상 제막식에서도 잠시 그 음악을 틀었다. 항상 롤랑가로스의 마무리는 그 음악과 트로피와 함께였는데, 이번에는 대회 시작 전부터 그 음악을 트는 바람에 그때 한 번 듣고 우승없이 끝났나보다. 췟! 그 음악 아무데서나 틀지 마....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군...😒



그리고 내 방에서 와이파이를 잡아서 랩톱으로 4강전 경기를 보는데 갑자기 연결이 끊어지면서 거실에 나가 잠시 티비로 봐야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인터넷 연결 다시 시도하느라 경기를 못보는 동안 경기가 안 좋은 방향으로 기울어진 것도 아쉽다. (미신 ㅎㅎ)

작년에 너무 압도적으로 우승을 해서 "이야, 욕심 안 내려고 했는데 이거 이 정도 수준차와 경기력이면 내년에도 우승을 또 해야지 못하는 게 너무 억울하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consistency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운 나이가 된 나달. 경기 지켜보기가 안타까운 순간이 많아질 거라는 걸 이제 인정하고 담담하게 지켜봐야겠다. 

그래도 21회 이상 우승을 할 거 같긴 한데?!?!? 
ㅜ.ㅜ 



* 2014년 결승전 워밍업 과정에서의 부상. 
이 글을 다 써놓고 트위터 외국 테니스 팬들의 성실한 토론의 장을 흥미롭게 읽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2014년의 그 부상 이후로 나달이 예전의 나달이 아니라는 댓글을 봤는데, 슬프지만 맞는 말 같다. 심리적 위축이 왔다. 소위 "Clutchdal"이 힘들어진 것.

컨디션 좋게 올라온 나달이 당시 결승전에서 갑작스레 허리를 잡고 아파하면서 많은 의문을 자아냈었다. 게다가 상대방의 부상을 알고서도 경기하는 것에 대한 바브린카의 부담감 때문인지 경기가 느슨해지면서, 심지어 부상 중이라는 라파가 한 세트를 가져가기까지 하자 모든 hater들의 " 나달 멀쩡하잖아? 질 것 같으니 꾀병이지"라는 공세의 대상이 되었다. 메디컬 타임 아웃의 사용 방식에 대해서도 욕을 먹었고.

하지만 꾀병이 아니었던 그 부상 이후 2015, 2016 나달의 암흑기가 열렸고 심리적으로 밀리는, 자신감을 잃는 모습까지 보여줬었다. 그리고 그뒤로 인터뷰에서 굉장히 방어적이고 모든 부상 관련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선수가 된 듯 했다.

그 트윗을 보고 나서 2014년 호주오픈 생각하니 새삼 애석하다. 

 

I am lucky





"Just accept. I never considered myself unlucky person at all. Doesn’t matter the injuries that I had. I think I am very lucky person."





 


다른 선수 팬들은 배부른 소리한다 그럴지 모르겠지만...

라파 나달의 호주오픈 2회 우승 도전은 또 실패로 돌아갔다.


삭막한 욕설이 난무하는 테니스 포럼같은 곳에는 더이상 가지 않고

주로 트위터에서만 테니스 정보를 얻는데, 내가 보는 요즘의 열혈 나달팬 트위터러 중에는

나달의 2009년 호주 오픈 우승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주로 2010년대 이후로 팬이 된 사람들이 트위터를 하는 것 같다.

다들 그뒤로 준우승 4번의 쓰디쓴 기억들 뿐.


2021년, 선수 나이가 많아져 조금 더 조바심이 나는 이때에

또다시 거창한 목표가 무위로 돌아가고 나니,

2009년 호주 오픈 결승전을 콜롬보의 호텔 펍에 앉아서 혼자 지켜본 게 정말 잘한 일 같다.


당시 나는 티비와 인터넷 없는 집에서 살고 있었고, 테니스 경기를 보려면 호텔 펍으로 가야 했다.

3번 정도 테니스 결승전을 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도 같이 볼 친구를 찾지 못해 혼자 본 것은 그 호주오픈이 유일했다.


테니스 결승전은 우천 연기의 특수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일요일 오후에 시작하는데(2020년부로, 롤랑 가로스에까지 지붕이 설치되면서 이제 우천 연기의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짐)

내 기억으론....토요일 밤을 불태운 숙취로 인해 골골대면서 혼자 호텔 펍을 찾았다.

일요일 늦은 오후인 탓에, 펍에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때쯤이면 다들 월요병이 시작될 시기인지라...


혼자 앉아서 핫쵸코..아마도 샌드위치?? 이런 거나 시키서 먹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보통은 맥주와 함께 테니스 경기를 보지만, 숙취 때문에.

경기가 5세트까지 길어지면서, 샐러드 같은 것을 한 번 더 주문했고 아마 그때쯤엔 정말 펍에 나밖에 없었을 거다.


그래도 홀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숙소로 돌아왔던 듯.

잡힐듯 잡힐듯 호주 오픈 우승이 12년째 잡히지 않으니... 2009년의 그 경험이 더 귀해졌다. 


그리고, 요즘 하드코트에서는 여실히 젊은 선수들에 밀리는 것을 보면서

2019년 US오픈 우승도 더 소중해졌다. 당시에 집에 홀로 있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혼자 실제로 펄쩍펄쩍 뛰면서 (당시 우리집 아래층은 비어있었다.) 응원했었고 3세트로 끝날 것 같았던 경기가 5세트까지 늘어지면서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오늘도 3세트에서 끝날 것 같았는데, 결국은 젊은 선수에게 밀려 역전패하는 것을 보면서

2019년 우승이 얼마나 소중했던 건지 더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우승으로 너무 많은 안도감을 얻게 되었던 것도 새삼 더 감사하다.


경쟁심을 갖지 말아야지, 그냥 테니스를 즐겨야지 하면서 마음을 누르면서도

끝내 아쉬웠던 것들이 손에 잡혔던 날들...




  

돌이켜보니






향후 10여 년을 버티게 만든 거의 유일한 희망을 만들어 준,
운명같은 순간.
2007년 7월.


이번 달 나와 정확히 같은 마음을 가진 누군가의 트윗  ⬇️






인생에 그닥 기대하는 게 없어서
올해는 정말 이거라도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은.... 





당신도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는, 홍콩 / 심천 국경에서 중국 비자 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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