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재력의 차이를 느꼈을 때.



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로 대기 시간 거의 없이 수천명 순서를 뚫고 들어가 예매에 성공했던 롤랑가로스 결승전.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낡은 폰으로 대기 순서가 뚫렸는지는 의문이다. ✌

가장 저렴한 category 3을 구입하니 맨꼭대기 자리였다. 입장해보니 내 좌측에는 중노년쯤으로 짐작되는 커플이 앉았었고, 우측 사람은 이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상식이 끝나도 계속 남아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은데 비해서 경기 종료 후 엄청 일찍 나가버린 것만 기억난다. 희미하게 남자로 기억되는데 그것조차 확실치는 않고, 그 옆에는 RAFA가 써진 티셔츠를 입고 혼자 온 처자가 있어서 경기 종료 후 가벼운 축하를 나누다가 시상식이 끝나갈 때쯤 서로의 인생 사진을 남겨주고 헤어졌다. 얼굴 들어간 사진 남기는 걸 주저했던 나를 사진 찍도록 부추겼던 그분, 지금 생각하니 새삼 고맙다. 






내가 앉은 쪽의 반대편에는 VIP석이나 기자석, 방송 중계 부스 등이 보였다. 파란 원 안에 중계석이 있다. 그래서 시상식도 저쪽 방향을 향해 진행되기 때문에 내 쪽에서는 우승자 뒷모습 밖에 안 보인다. 😰
중계석을 찍으려던 것은 아니고, 경기장 상단 롤랑가로스 로고를 남겨놓으려고 내 갤럭시 저가 기종 폰 카메라 줌으로 당겨서 찍었더니 결과물은 이 정도.






그런데...
내옆의 아줌마는 본인 폰으로 줌을 당겨 저 중계석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식별하고 계신 거 아닌가 👀 

나도 흘끔흘끔 그 아줌마의 폰 화면을 훔쳐보면서 기술력에 감탄했다. 이렇게 큰 경기장의 반대편에 앉은 사람 얼굴이 보이다니😲. 롤랑가로스 메인코트인 필립 샤트리에 코트는 스포츠 스타디엄으로서는 수용 인원이 그렇게 많은 곳이 아니지만, 테니스 코트로서는 선수들 뒷공간이 가장 넓은, 세로로 긴 코트 중 하나로 알려진 큰 경기장이다. 놀람과 동시에 같은 꼭대기자리에서 빈부격차를 느꼈다 🤣. 나는 저런 폰 언제 사보지? 난 대부분 출시 2년 정도 지난 모델만을 저렴하게 구입해서 써왔으니...


1세트가 끝난 시점이었나... 경기장 한 켠에 자리잡은 관악단이 어떤 노래 연주를 시작했고 옆자리 그 커플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가... 예를 들면 española ~ española~ 이런 식으로 스페인어임이 확실한 노래였다. '이 옆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인가?!?' 그러면서 나는 오후 3시가 되도록 점심을 먹지 못해 매점에서 사둔 샌드위치를 베어물었고, 말 한마디 없던 옆자리 아줌마가 갑자기 Bon Appétit 라고 하신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당황했는데 내 입에서는 갑자기 "Gracias~" 가 먼저 튀어나왔다. 그리고 우물쭈물 "thank you"라고 했다. 그분에게 내 답인사는 접수가 안 되는 듯 했다. 스페인 사람은 아닌가봐. 난 그저 우물거리는 무례한 사람, 혹은 대화하기 싫어하는 동양인 됨.ㅎㅎ gracias 정도를 모를 것 같지는 않지만 아마 파리에 있는 동양인 입에서 thank you도 아니고 merci도 아니고 제3의 언어가 튀어나온다고 기대를 안 했으면 들리지도 않았을 듯했다. gracias했을 때 반응이 '으응?' 정도라서... 
그냥 merci하면 되는데 왜 gracias 먼저 나왔는지? ㅋㅋ 스페인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튼, zoom 기능이 엄청 향상된 최신폰 이야기를 보다가 갑자기 이날의 일화들이 떠올라 끄적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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