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 수행의 성지 😁 - 헬싱키 더 야드 호스텔 The Yard Hostel Helsinki




외국의 호스텔 방문은 네번째인데 그중 가장 독특한 느낌을 준 곳이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완전한 비대면 체크인/아웃.

Booking.com을 통해 8인실 예약을 하는 그 순간부터 매우 활달하고 친절한 말투의 안내 메일이 마구마구 날아온다.
예약이 끝나고 한동안 잠잠하다가 숙박할 즈음이 되면 또 하루에 몇 개씩 공지가 날아온다.
이메일의 그 활달한 말투 탓에 뭐라도 다 들어줄 것 같은 친절한 직원이 있을 줄 알았는데
호스텔에 들어서서 나가기까지 단 한마디도 안 해도 되는 곳이다.😁

더 야드 호스텔은 헬싱키 공항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헬싱키역에서 도보 10분이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해있고, 시내 어디로든 도보로 관광이 가능한 좋은 숙소였다.
사실 구글지도 같은 지도앱에서는 도보 시간을 훨씬 짧게 안내하지만
공항에서는 오는 기차가 헬싱키역 승강장에서 굉장히 먼 곳에서 서는 경우가 많고 옆 출구를 통해 역사를 통하지 않고도 역 밖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역앞 광장에 서게 되면 방향이 매우 헷갈린다. 
아마 처음 오는 사람들은 기차역에서부터 5-6분 내에 이 호스텔에 도착하기 쉽진 않을 듯. 
하지만 조금만 돌아다니보면 금세 지리 파악이 끝날 정도로 헬싱키 중심부는 작은 편.

숙박을 하루 정도 앞두면 계속 이메일이 날아오는 이유는 이 호스텔에 들어가기 위해 두 번의 비밀번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한 번, 그리고 들어와서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오면....






유럽 영화에서 매우 많이 보던 딱 이런 구조가 나온다. ㅎㅎ
여기서 뒤돌아서면 호스텔 문이 있는데 거기서도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면 마침내 어두컴컴한 호스텔이 나온다. 음침하다는 의미는 아니고, 조명을 푸른 계열로 좀 어둡게 해놓은 실내가 나온다. 유럽 지역에서는 흔치 않게 입구 앞에 사람들이 신발을 다 벗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안내도 없어서 눈치를 스멀스멀 보면서 나도 신발을 벗고 안쪽으로 들어섰지만, 나중에 보니 내부에서 신발을 신든 말든 그건 자유인 듯 했다.



booking.com



내가 예약했을 때는 위와 같은 사진을 보았는데, 실제로 가보면 조명 분위기를 바꾸어서 푸른색 계열이고 어두컴컴한 편이다. 숙박객들과도 서로 얼굴을 자세히 볼 필요 없다는 건가 😉

위 사진 왼편에 보이는 체크인 카운터에 내 이름이 적힌 봉투가 놓여있을 뿐 직원을 만날 일이 없다. 그 봉투 안에 내 방으로 들어가는 키 카드가 있고 내 방 번호가 적힌 종이가 있다. 정말 한마디도 말할 필요없는 호스텔.








침대 번호도 배정해주던 다른 호스텔과는 달리 그냥 방 번호만 있어서 두리번거리다가 그냥 남은 침대를 내 잠자리로 정했다. 베개 커버와 시트는 새 걸로 놓여져 있고 직접 깔면 된다. 그리고 체크아웃할 때 다시 벗겨서 세탁통에 반납.
내 침대 아래로 수납함 2개가 보이는데 내 침대 윗사람과 둘이 하나씩 쓰는 거다.
내가 사물함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사물함의 존재조차 신경쓰지 않고 그냥 그 앞에 신발을 벗어둔 채로 침대에 들어가 커튼 치고 누워있었더니... 나중에 사물함을 쓰시는 윗침대 분이 내 신발을 방 한가운데로 치워놓았더라는;;;; 신발을 벗어둘 때에는 사물함의 위치를 생각해서 서로 배려해야 한다.







창밖 모습.
바로 근처에는 왁자지껄한 음식점과 펍이 있고 쇼핑몰, 길 건너에 대형백화점이 있는
시내 중심지인데 건물 안쪽 모습은 의외로 허름해보인다.

24시간이 안 되는 레이오버 체류인데다가 헬싱키 물가가 비싼 편이라 호스텔을 예약했지만
돌아오고 나서야 그래도 '내 창문'이 있는 호텔 방을 예약했더라면 북유럽의 백야를 좀 더 잘 관찰할 수 있었을텐데... 싶었다. 여기선 하늘이 거의 안 보였다. 밤 11시에 노을이 지는 곳인데 그걸 제대로 못봐서 아쉽다.





알차게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침대 내부. 개인 조명, 파워 아웃렛, 거울, 선반...
커튼을 치면 외부와 차단된 그냥 내 공간 같아서 편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인 셈이라서 피로 누적으로 피곤해서 그냥 계속 누워있기만 했다.
물론 커튼이 소리까지 차단할 수는 없다. 태국 사람으로 보이는 내 윗층 침대분은 코를 많이 골더라는 :) 




물건 정리할 힘도 없어서 그냥 발치에 다 쌓아뒀다. ㅎㅎ 키가 작은 게 다행이네.
해가 지지 않는 북유럽 백야를 맘껏 체험하고 싶었지만, 근처 식당에서 밥 먹고 돌아와서 계속 누워있다가 그냥 밤 11시에 잠깐 밖에 나가서 얼마나 밝은지만 확인하는 것으로 이날 일정은 끝이 났다.

바로 건너편에 펍이 있는데 사람들이 주중 밤 11시에 시끌벅적 너무 시끄럽게 술을 마시고 있어서 의외였다. 잠시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나도 동행이 있어서 저렇게 즐겁게 웃으며 저기 앉아 왁자지껄 얘기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사람들만 그렇게 밤늦게 술마시고 논다고 하더니 여기 사람들도 놀 줄 아는 사람들이구나.


물론 호스텔 내 소파가 놓인 공용 공간에는 친교를 다지는 몇몇 사람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마주쳐도 인사를 나누지 않으며 말로만 듣던 북유럽식(?? 여행 온 사람들은 북유럽인이 아닌 경우가 더 많지만) 거리 두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체크인부터 체크아웃까지 말 한 번 안 했던 숙소. 묵언 수행의 성지라 할 만하다. 체크아웃 때도 그냥 내가 쓴 침대 시트와 키 카드만 반납하고 나오면 되므로 아무도 마주칠 일이 없다.


짐을 호스텔에 남겨두고 시내 도보 관광을 했는데 헬싱키 내에 유명한 관광지는 모두 도보로 커버 가능한 좋은 위치였다. 사실 미리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이 도시에 도착했는데, 금방 어디든 걸어갔다가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시내 중심. 그리고 호스텔 주변에 한국인에게 익숙한 프랜차이즈 가게들도 많고 바로 건너편은 대형 백화점이므로 쇼핑하기에도 좋다. 물론 북유럽의 물가를 감당할 수 있다면.👛 
여행을 할 당시에는 생각을 못해봤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주위 대형 백화점이나 그 분위기 등을 고려해볼 때 헬싱키의 '명동'에 위치한 호스텔이라고 보면 되는 듯하다.


이 호스텔을 찾아올 때 울퉁불퉁 돌바닥에 짐을 질질 끌고 오래 헤맨 느낌이라서 고생스러웠다고 생각했다. '아니 얌전히 집에 갈 걸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내가 레이오버를 택했던가...' 그날은 그저 누워있고만 싶었을 정도로. 그런데 다음날, 시내 지리를 좀 파악한 뒤에 다시 호스텔로 돌아와서, 남겨뒀던 짐을 찾아서 질질 끌고 기차역으로 가보니 어제 내가 온 길 그대로 가게 되는 것이었다. 난 헤맨 것이 아니었네...?? 하긴 지도앱 보고 그대로 쫓아온 것이었으니 뭐 최단거리가 아닐 리는 없는데 왜그리 힘들게 느껴졌지??

아마도, 이젠 새로운 것에 점점 적응도가 떨어지는 나이가 되어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니 좀 긴장하고 위축됐었나 보다. 그래서 유난히 헤맨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내가 제대로 전체 파악을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침대 수에 비해 샤워실이 너무 적어보이는 게 단점. 그렇다고 해서 대기가 있진 않았다. 유럽 호스텔에 단 5-6박 정도 해봤지만 그 경험으로 말하자면, 다들 잘 안 씻는다ㅎㅎ. 스태프를 줄였기 때문인지 화장실 청결도도 그리 높진 않지만 (더럽진 않지만 매우 깨끗하지도 않음) 예전 코로나가 없던 시기의 런던 호스텔도 그랬던 듯. 하룻밤에 내는 돈의 가치를 생각하면 봐줄 수 있는 수준. 그리고 사교적인 호스텔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호스텔의 알 수 없는 다소 삭막한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 외에는 위치가 매우 좋고 그럭저럭 깨끗한 편이고, 침대가 완벽하게 개인 사생활을 보장해주는 편이라 나중에도 다시 찾을 것 같은 곳이다. 북유럽 물가가 비싸기 때문인지 나이 드신 숙박객도 많이 봤다. 늙어서 가도 어색하진 않을 듯. 😁 게다가 어차피 남들에게 신경쓰는 분위기도 아닌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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