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일부러라도 스탑오버/레이오버 일정을 넣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지쳤다.
밤 11시까지도 밝은 6월의 헬싱키 시내에 예상보다 이른, 밤 8시에 성공적으로(?) 도착했지만 너무 피곤했다. 조그만 호스텔 침대에 커튼을 치고 누워서 '내가 여길 왜 왔지? 으아 피곤타... 낼은 또 비 예보 있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환승지 여행을 택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특히나 뚜벅이 여행에서 비 예보는 더욱 힘빠지는 일이었다.
다행히 8-9시간 가까이 자고 일어나니 다음날은 그래도 힘이 좀 났고 오전에 비가 오기 직전인 것 같은 흐린 도시를 걸어다녔다. 일생 동안 몇 편 못 봤지만, 왠지 북유럽/동유럽 영화에서 본 것 같은...그런 음울한 회색 하늘과 회색 건물들...
다른 이들의 헬싱키 여행기를 보면 대부분이 성당 순례기인데, 나는 성당 순례에 그닥 매력을 느끼진 않기 때문에 굳이 거기를 목표로 하진 않았다.
아무 것도 못 보고, 의미없는 레이오버 여행을 마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점심을 먹고 힘을 내어 길을 나섰다.
헬싱키 도시가 크지 않아서 걷다 보니, 유명한 건물들 끄트머리가 보여서, "그래 저 정도 봤음 됐지. 이젠 바다나 보자" 하고 걸으니 또 바다가 나왔다. 바다와 마주할 때쯤 마침내 회색 하늘이 푸른 하늘이 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아..
오후 1시 30분 |
언덕 위 아름다운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침과는 전혀 다른 파란 하늘과 함께.
남들 사진에서 보던 우스펜스키 대성당. 시내가 작아서 굳이 '뭘 하겠다'는 목표로 걷지 않아도 결국은 눈에 다 들어오는구나.
이렇게 갑자기 화창한 날씨...
위 사진을 찍기 10분 전 사진.
이렇게 흐렸던 하늘이 몇 분 사이 확 개어버림. 핀란드 정교회는 당신을 환영합니다??ㅎㅎ
오전에 방문했었던 교회는 루터교 교회라고 한다.
저기쯤을 걸어갈 땐 몰랐는데 사진 속엔 이미 우스펜스키 성당이 있다.
성당 근처에 도달해서 날씨가 개면서 사진이 참 예쁘게 몇 장 찍혔다.
이 각도에서 보는 건 성당의 측면이고 입장을 위해선 언덕을 올라야 하지만 가진 않았다. 성당 근처로 다가갈 때인가... 언덕에서 전차가 내려왔다. 난 사진을 찍기 위해 걷다가 길가에 멈춰선 건데, 내가 길을 건너려한다고 판단했는지 전차 안의 여자 운전사가 나를 보고 길 가운데를 지나던 전차를 세웠다.
엥?😲
헬싱키 시내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와서 교통 문화를 모른다. 보행자를 운전사가 육안으로 식별하고 차를 멈추기도 하는 시스템인가보다.
내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전차는 다시 천천히 움직여 내 앞을 가로질러 갔다. 아... 전차가 지나가기를 사람이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지나가도록 전차가 멈추기도 하는 거였구나.
도착한 당일에는 피곤해서 여길 내가 왜 왔지 했지만
지금은 헬싱키를 갔다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어,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첫인상은 '여기 살면 심심하긴 하겠다' 였지만.
원체 인구 수가 적기 때문에 조용해서 좋았던 도시.
러시아 전쟁 이전 항로로서는 서울에서 최단 시간에 유럽에 도착할 수 있는 도시였다. 북유럽답게 물가가 비싸서 실행에 옮기긴 어렵겠지만, 언젠가 많이 낯설면서도 비교적 시간이 덜 걸리는 곳에 "숨고" 싶을 때 헬싱키에 가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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