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지나간 일이고 바뀌는 것도 없고
아무 생각 안 하려고 했는데
지금도 종종 작년에 파리에서 미술관 하나쯤은 다녀왔을 걸... 하고 아쉽다.
테니스 결승전이 끝나고 파리를 떠나기 전 월요일, 단 하루의 시간이 남아서 오르세 미술관까지 가보니 그날은 휴관일이었다. 😒 미술관 외부 사진만 찍고 정처없는 방황 시작. 사람이 너무 많이 줄 서있는 루브르 박물관 앞에 까진 갔으나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롤랑가로스 티켓 구입과 환불 현황 등을 따져보니 테니스 경기장에 간 날은 5일 밖에 안 됐다. '테니스' 때문에 파리에 갔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테니스를 관람한 날은 며칠 안 되는 거였다ㅎㅎ. 파리에 체류했던 게 12일 정도인데 그렇다면 나머지 7일 동안은 뭐했지?
도착 처음 며칠 간은 테니스에 더 집중했었고 경기장도 자주 갔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치고...
나중에 좀 여유가 있었던 날 중에서 미술관을 돌아볼 만한 하루를 따져보니 6월 2일 목요일이 떠올랐다. 베르사이유 다녀와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잠시 고민하기도 했었던 그날.
그날 배정 받은 호텔 방이 침대에 누우면 정면에서 파란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방이었는데
방 느낌이 좋아서 그냥 방에서 쉬기를 선택하기가 더 쉬웠는지도 모른다.
베르사이유에서 반나절 같이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던 친구가 오히려 더 내 저녁 일정을 고민해줬던 듯. ㅇㅇㅇㅇ, ㅁㅁㅁ, XXXX 가보는 건 어때?
그날 머문 호텔은 엄밀히 말하면 파리가 아닌 도시에 있는 호텔이었지만, 12호선 종점에서 매우 가까운 호텔이어서 맘만 먹으면 지하철로 20분 안에 파리 중심부 도착.
그러나 결국은 외출하는 것을 포기했고, 근처에서 쌀국수만 포장해와서 먹고는 하루가 끝났다.
위 사진을 찾으면서, 사진에 기록된 호텔 방에 입성 시간을 알아보니 이미 오후 5시.
'그래 어차피 미술관 돌아볼 시간도 없었어. 6시에 문을 닫는데 뭘 보겠어? 하고 후회를 줄이려고 했다.
그런데...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하필이면 매주 목요일은 오르세 미술관이 밤 9시 45분까지 야간 개장을 하는 날이었다. 어! 그날 정말 맘만 먹었으면 갈 수도 있었네??
또 다시 후회 시작.
아쉬운 거 또 하나는 그때 내가 주로 쓰던 신용카드 회사에서 미술관 입장 혜택을 주고 있었다. 어떤 여행사 프로그램과 제휴를 시작한 것을 기념해서 세계 유명 박물관 입장권을 단 $10에 예약해주는 이벤트였다. 당시에 이 이벤트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테니스 대회가 모두 종료된 뒤에야 '이제 미술관 가야지'하고 예약을 시도해보니, 아무리 할인가라 해도 적어도 2-3일 전에는 미리 예약을 해둬야 하는 거였다. 이틀 뒤가 출국인 나에게는 이미 물 건너간 이벤트였다. 새삼 이게 제일 아깝다. 다들 루브르는 '너무 넓고 크기만 해서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라는 말을 많이 하던데 $10로 예약하고 (정상 가격의 ½) 루브르에 입장을 했었다면, 그냥 유명한 작품만 몇 개 보거나 분위기만 익히고 나왔어도 덜 아까울 것이었기 때문에.
아니면 그 한가했던 목요일 저녁에 오르세에 가지 못했더라도, 그날 이 카드 회사 이벤트 예약 시도라도 해봤으면... 적어도 2-3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한다는 것과 오르세는 월요일이 휴관이라는 것을 더 일찍 알아내서 정신을 바짝 차렸을 텐데... 싶기도 하다. 윔블던 때문에 런던에 갔을 때는 대영박물관이랑 내셔널 갤러리 다 보고 돌아왔는데, 대체 파리 여행 때는 뭐했지?
내가 파리 여행에서 하도 테니스에만 방점을 두니까, 다들 내가 미술관을 싫어하는 줄 알고 "꼭 한 번 가봐. 실망하지 않을 거야." "루브르보다는 오르세 추천해. 가보면 맘이 달라질 거야" 등등의 말을 해줬지만, 사실 난 미술관 돌아보는 것 좋아한다. 시카고-뉴욕-보스턴, 소위 미국 3대 미술관은 다 가봤고 뉴욕에서 메트로폴리탄 / MoMA는 두 번씩 다녀왔다. 그런데 파리에선 왜 다 놓치고 왔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더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 앞에서 "좋아하는" 것은 힘을 잃어서??
하나의 핑계를 더 만들자면, 그 목요일은 트리아농 궁전을 감상한 뒤 돌아오느라 이미 15,000보 이상 걸은 뒤였다는 것. 만만치 않은 체력이 필요한 미술관 관람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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