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중국에 몇달간 살면서 진짜로 你好 한 번 안 써보고 돌아온 나.
(LA 한인타운 내에 살면 평생 영어를 안 해도 미국에 살 수 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됨)
그래도 책으로 공부하는 언어에 앞서서, 현지에서 직접 듣고 배운 건 있어서
우리는 흔히 중국 돈을 'yuan위안화' 라고 하지만 실제 발음은 '위엔'에 더 가깝다는 것 정도는 알고 돌아왔다. 그때는 '국제전화카드'라는 걸 사서 국제 전화를 했는데, 잔액 확인 번호를 누르면 자동 응답으로 "XX위엔"이라고 안내해 줬거든.
또 하나 책으로 배우기에 앞서 살면서 생활에서 체득한 것은
비밀번호는 密码mima(ATM에서 돈 찾을 때 음성 나옴)라는 거, 그리고 한국인은 "10만원 안팎"이라고 하지만 중국인은 "10만원 좌우"라고 한다는 거. 그래서 나중에 중국어를 번역한 한국어 자막을 볼 때 "5만원 좌우로 해서" 이런 자막이 나오면 그 번역은 중국인이나 조선족이 했다는 걸 알 수 있게 됐다.
최근에 중국 드라마를 3년 봤더니, 짧은 문장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어 자막없이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란 없다.😖 어찌 보면 귀가 트이는 것보다는 눈👀이 빨라져서 자막에서 한자를 읽고 일치하는 소리를 찾아내는 능력이 예전보다 나아진 느낌이다. 물론 그 중국어 자막이란 것도 끝까지 다 읽지는 못하는데, 예전에는 아예 읽기가 불가능하다고 포기했었는데 요즘은 절반 정도는 눈으로 따라간다.
그렇게 조금씩 알아듣게 되면서 한자어 몇 개의 느낌이 달라졌다.
한국도 한자를 많이 쓰기 때문에 결국엔 뿌리가 같은 단어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한국인이다 보니, 같은 단어도 중국어로 들으면 일부는 전혀 그 느낌이 안 산다. 예를 들면....
恶梦 (emeng) '으어멍'은 장난 같고 악몽이 더 무서운 꿈 같음.
目标 (mubiao) '무비아오'보다는 목표가 더 목적 의식 있게 들림.
将军 (jiangjun) "쟝쥔"보다 장군이 더 위엄있게 들림.
皇兄(huangxiong) "황숑" - 황제의 아들들이 형님을 부르는 말인데, 한국어 '숑'의 어감 때문에 궁중 언어같지가 않고 웃기게 들림.
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묘하게 중국어 단어가 더 느낌이 살아나는 게 몇 개 있다.
永远(yongyuan)
"영원"의 중국어 발음은 '용위엔'인데, 이게 애절하거나 극단적인 상황 ("넌 아마 영원히 내 마음을 모를 거야." ) 에 쓰이는 걸 많이 보다 보니, 요즘은 '영원'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보다 '용위엔'이 들릴 때마다 묘하게 더 애틋하다.
身边 (shenbian)
한국어로는 "신변 위협" "신변 보호" 등등 중립적이거나 약간 위험한 상황에서 쓰이는 게 "신변"인데 중국어에선 "곁에"라는 느낌으로 쓸 때가 많다. 그래서 이 단어 역시 "네 곁을 꼭 지킬게" "그때 니 옆에 있어주질 못했어" 이런 상황에서 많이 쓰이다 보니, 한자는 같지만 '신변'에 비해 '션비엔'이라는 단어가 들릴 땐 확실히 몽글몽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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